한국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조업의 수출 부진과 지속적인 성장률 하락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한국 경제의 고용과 부가가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서비스업의 생산성 제고와 고용 창출은 어느 때 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가장 낮은 국가이다. 서비스업 경쟁력 제고에 대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2012년에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발의되었지만 아직까지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서비스업은 K-Pop으로 대표되는 문화산업 등 일부 분야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국제화를 이루었지만 대부분의 업종에서는 오히려 규제가 강화되고 경쟁력 향상은 정체되었다. 나아가 디지털 전환과 관련된 새로운 서비스 제공을 위한 제도개선에 대한 준비도 부족한 현실이다. 한국의 서비스업은 선진국 비해서 영세한 자영업자와 공공부문이 큰 비중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서비스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한국 서비스업의 구조적 특성과 사회적 인식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은 경쟁력 제고 방안과 정부 정책의 올바른 방향 설정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한국 서비스업의 구조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지원 정책은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나아가 서비스업 정책과 규제 개혁은 디지털 전환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미래 지향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서비스업의 구조와 경쟁력 강화 정책
한국 서비스업의 구조적 특성은 높은 자영업자 비중이다. 한국 자영업의 비중은 전체 고용의 약 25% 정도로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자영업 비중이 10~15% 수준임을 고려할 때 매우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체는 규모의 영세성으로 인해 생산성이 낮고 생존율이 낮다는 특징을 가진다. 결국 서비스업 사업체의 성장은 정체되고 일자리는 임금 수준이 낮고 불안정하다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정부는 규모의 영세성을 극복하고 효율성과 성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화, 프랜차이즈화 등의 정책과 다양한 지원 사업을 시행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체 자영업자 중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의 비중이 2020년에 75% 수준으로 상승하는 등 서비스업의 영세성은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관련된 노동 및 규제 정책과 올바르게 조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 창업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경쟁력이 없는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과정을 반드시 동반한다. 폐업한 자영업자는 재창업을 할 수도 있지만 다수는 임금근로자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임금근로자 일자리는 기존 소규모 사업체의 성장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도 있지만 기존 기업의 확장 또는 타업종으로의 이동을 통해서도 제공될 수 있다. 따라서 대형유통업체 등 기존 사업체의 확장을 규제하면서 소형업체의 성장과 규모화를 추구하는 정책 조합은 폐업한 자영업자의 재창업을 유발해 영세자영업의 과밀 문제를 다시 일으킨다.
또한 동종 업종이외의 업종으로 이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즉 소매, 음식점 부문에서 보건복지 등 타 업종으로 이직이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타부문의 고용 흡수력과 부문 간의 이동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서비스업 사업체의 규모화 그리고 경쟁력 강화는 그 과정에서 밀려난 자영업자의 일자리 재배치 정책이 수반될 때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2018년이후 급격하게 인상된 최저임금은 노동 정책과 기업 정책 조율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볼 수 있다. 서비스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소매, 음식숙박, 개인서비스업 등 자영업 비중이 높은 업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기업 정책과 노동 정책의 조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정책과 기업/산업정책을 조율하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서비스업에 대한 인식 전환과 수요자 중심 정책
한국에서 서비스업에 대한 인식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이다. 소비자가 동일한 물품을 동네슈퍼, 대형마트 또는 온라인에서 구매할 경우 달라지는 것은 구매방식이다. 같은 물건을 동일한 가격에 구매할 지라도 직장에서 늦게 퇴근해 오프라인 상점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 온라인 구매 서비스는 소비자에게 큰 편익을 제공할 수 있다. 소매업은 소비자의 선호와 생활 방식의 변화 따라 판매 방식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성장하는 산업이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소비자 편익을 고려하지 않고 기존 업체의 보호를 위해 유통 규제가 도입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통한 대형마트와 수퍼마켓 등에 대한 영업시간을 제한한 것이다.
소상공인과 기존 지역 상권의 보호를 위해 규제 정책은 도입될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 편익 고려되지 않고 해당 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발전에 저해가 된다면 규제 입법의 도입 취지는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현재 유통업에서 제품의 판매는 온라인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오프라인은 상품을 판매하는 기능에서 소비자에게 체험과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화하는 구매 및 소비 패턴을 고려하지 않고 전통적인 기준인 점포의 규모와 지리적 위치에 따른 업종 구분과 규제는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다. 소매업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체인화 및 온라인화 등 다양한 혁신을 통해 소비자의 수요에 부응하면서 성장해왔다. 소매업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이었지만 이제는 금융, 소프트웨어, 법률 등과 같은 고부가치 서비스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제조업과는 달리 서비스업은 기술 혁신과 소비자 수요 변화라는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발전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소비자 편익과 산업 발전이 함께 고려되는 방향으로 기존의 서비스업 규제의 내용과 방식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규제 개혁
2021년 7월 정부는 디지털 뉴딜 2.0 정책을 통해서 2025년까지 49조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가 4차 산업혁명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인공지능, 5G, 빅데이터 등 핵심기술과 디지털 인프라 확충 그리고 필수적인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 디지털 기술 관련 무형자산 투자의 기본 주체는 민간 기업이며, 기업의 투자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출시가 가능해야만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전환에 대응되는 큰 틀의 규제 개혁은 무형자산 투자 활성화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서비스 제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규제 개혁과 제도 개선은 서비스업의 디지털 전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서비스의 등장은 기존의 규제 체계에서는 불법일 수 지만, 기술의 발전은 기존 규제 자체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하기도 한다. 소비자에게 서비스 품질과 안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호텔 등급제, 운수면허 등은 리뷰시스템을 통해서 대체될 수 있다. 따라서 공유경제와 같은 디지털 기술 기반 서비스의 등장을 규제차익에 기반한 사업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존 규제의 개선이 필요한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등을 통해 신기술에 기반한 서비스에 대해 포괄적 네거티브 적용해 우선적으로 새로운 사업을 허가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신산업의 등장은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을 유발한다. 소위 타다 논쟁으로 알려진 승차공유와 기존 운수업과의 갈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부는 갈등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했지만 그 역할은 상대적으로 한정적이었다. 정부는 갈등조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해 신산업 성장과 기존 사업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즉 갈등 조정에는 반드시 기존 사업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비용이 수반된다. 하지만 신산업의 성장은 파이 자체를 키움으로써 이러한 보상비용보다 큰 편익을 가져올 수 있다. 즉 제로섬이 아닌 포지티브섬의 관점에서 정부는 피해보상을 제공하고 신규사업자와 혜택을 보는 소비자가 일부 비용을 장기적으로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는 실증적 증거에 기반한 피해 보상과 중립적 중재자로서 갈등조정을 수행해야한다.
정부의 서비스업 선진화는 금융, 정보통신, 의료 등 기존의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도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디지털 전환은 향후 서비스업의 지형을 크게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 서비스업의 규제 개혁을 통한 선진화는 의료 민영화, 대기업 규제 등에 대한 논란 속에서 진전되지 못했다. 서비스업은 디지털 전환을 통해 혁신적인 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는 한국경제가 직면한 저성장 문제의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점이 필요한 시기이다. 서비스업 선진화를 위한 정부의 미래지향적인 정책과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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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배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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