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집단의 본질: 지대추구자
이익집단(interest group)이란 특정 이익 혹은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권과 정책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집단을 말한다. 이익집단은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이익집단이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들의 다양한 선호를 반영하는 역할을 한다는 긍정론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수의 이익집단이 절대 다수의 이해관계 또는 공익(public interest)과는 무관하고 심지어 다수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 실현을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다.
선거에서 득표 극대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치인들은 로비를 통해 강력하게 조직된 이익집단과 쉽게 결탁하여 정치체제의 독과점 현상을 가져오고, 결국 정치시장을 왜곡시켜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정부의 정상적인 개입을 왜곡시킨다. 여기에 조직화되지 못한 시민들로부터 정치인 자신들만의 사익을 취하게 되어 결국 정부정책이 다수의 비용으로 소수의 편익을 발생시키는 원인이 된다. 분산된 납세자의 비용이 이익집단의 편익을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셈이다.
시장실패만큼이나 정부실패를 경계하는 공공선택론자들은 정부로부터 인위적으로 창출된 비생산적 수익이나 특혜를 지대(rent)라고 규정하고, 정책과정을 통해 특별한 생산적 기여 없이 지대를 취하려는 사람을 지대추구자라고 부른다. 따라서 이익집단이 집단의 자원을 동원하여 정부가 창출한 특권을 얻거나 혹은 인허가 등 규제나 차별적인 정책을 통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은 지대추구행위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지대추구사회로 추락하는 한국
한국은 지금 각종 이익집단에 의해 ‘지대추구사회(rent-seeking society)’로 추락하고 있다. 이익집단에 의한 지대추구의 가장 큰 문제는 ‘원칙’에 의한 정치를 훼손하고 ‘이해관계’에 의한 정치로 타락하게 되어 국민 전체가 아니라 일부 소수집단을 위한 정부정책의 양산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에를 들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최저임금의 강제인상은 혜택을 받는 소수를 위해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가 시장에서 쫓겨나고 자본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영세업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공공부문을 비롯한 비정규직의 강제적 정규직 전환은 청년층을 비롯한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의 노력과 사기를 원천적으로 말살시키고 노동시장을 더욱 경직적으로 만들고 있다. 특정 분야의 특정 집단을 위한 정부의 각종 보조금과 특정 산업에 포획된 규제정책 그리고 육성 혹은 진흥이라는 이름의 각종 정부사업은 일반국민 전체가 아니라 오직 일부만을 위한 차별적 성격의 정책이라는 이유에서 근본적으로 원칙이 아닌 이익을 위한 정치를 조장하기 쉽다.
나아가 세계화와 개방화 시대에 뒤떨어진 각종 전근대적인 규제와 제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스크린쿼터제는 1960년대 소위 ‘유치산업보호’라는 이름으로 의무적으로 국산영화를 상영하도록 하는 국산영화 의무상영제로 출발하여 아직까지 영화산업 관계자라는 이익집단에 의한 지대추구행위의 결과로 남아있다. 하지만 국내 영화산업은 더 이상 유치산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세계 영화제에서 괄목할 성과를 거두는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차별적 보호법은 더 이상 존재이유를 찾기 어렵다. 소수를 위한 차별적 제도는 법을 지대추구의 수단으로 변질 시키고 편향된(biased) 사회적 선택을 조장하게 한다.
정책, 입법 제한 등을 통한 지대 추구 여지 봉쇄
한국 사회에서 정치권에 대한 이익집단의 역기능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익집단들이 지대를 추구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부가 원칙도 규칙도 없는 불필요한 지대 자체를 창출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부득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
만일 특정 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보장하거나 일부 산업부문에만 특혜를 주고 지원하는 경우 이익집단의 지대를 얻기 위한 노력(지대추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전자는 주로 정부가 규제라는 정책수단을 통해 개입하고, 후자는 정부보조금, 지원/육성사업, 특혜법 등 각종 차별적 법과 제도를 통해 나타난다.
첫째, 각종 인허가와 같은 규제는 진입규제의 성격이 강하고 경쟁을 가로막기 때문에 사실상 정부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게 인위적인 지대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주체의 혁신을 위한 노력에 저해가 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 불필요한 규제는 사전에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신설을 억제하고 기존의 불합리한 규제는 반드시 사후평가를 통해 정비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불합리한 규제가 생성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천 중에 하나는 정치권에서 만들어지는 각종 의원입법 규제이다. 의원입법은 현재 규제입법 프로세스에서 치명적인 허술한 구멍(loophole)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입법을 통한 규제의 경우 입법안 작성에서부터 규제개혁위원회 등 각종 규제심사 절차를 거쳐 최종 결정될 때까지 복잡하고 까다로운 단계를 거치는 반면, 의원입법규제는 별다른 심사과정 없이 법안 작성 후 의원 10명의 동의를 받으면 바로 제정되는 현실이다. 그 결과 20대 국회(2016~2020년)의 경우 의원입법이 정부입법의 거의 20배에 육박하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향후 의원입법규제에 대한 ‘규제영향평가’를 조속히 도입하고 국회를 통한 정부의 우회입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제도를 강구해야 한다.
다음으로 정부가 특정 산업 발전의 기반 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여 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육성, 진흥, 보호 등의 법과 제도를 재정비하고 불합리한 기준으로 정책대상을 한정하는 차별적 정책을 없애야 한다. 이는 정책대상의 분야를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미래 산업변화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하고, 대상선정에서 탈락한 산업들의 소외감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산업 내 규제를 혁신하고자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샌드박스제도는 정보통신·산업·금융·지역특구의 4개 분야에 한정되면서 일정 틀 안에서의 자유로운 산업 활동을 장려하는 기존 취지에 역행하고 있으며, 오히려 산업 성장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
둘째, 만일 정부에 의한 지대창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지대추구행위에 따르는 비용 자체를 높이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익집단의 구성원들 역시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하기 때문에 지대추구활동에 수반되는 비용이 그것으로 기대되는 편익보다 클 경우 지대추구를 위한 노력과 활동을 자제할 것이다. 지대추구행위의 비용을 높이기 위한 대책 가운데 하나는 정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의 정책과정을 쉽게 파악할 수 없도록 하여 이익집단의 로비활동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지대추구의 기대비용을 높임으로써 지대추구의 경향을 감소시킬 수 있다. 정책결정 구조와 과정이 단순하고 집중되어 있을 때보다 복잡하고 분산되어 있을 때 이익집단의 지대추구행위가 더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명목적으로만 운영되고 있는 ‘일몰제(sunset)’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독점권을 통해 특별한 지대를 향유하는 집단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의무적으로 그 이익을 환원하도록 제도화함으로써 지대추구의 유인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법과 제도를 지대추구의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각종 차별적 성격의 입법을 제한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입법권을 쥐고 있는 의회(그리고 정치권)가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의회권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 한국은 국가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하는 헌법적 장치가 부실하다고 지적받는다. 이로 인해 선거 때마다 정치권은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시민의 사적영역을 보호하지 못하고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을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정부가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포획된 규제와 각종 차별법을 통해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규제권력을 제한하는 장치를 헌법에 도입해야 한다. 나아가 궁극적으로 이익집단의 지대추구행위를 생산적인 활동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유인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참고문헌>
김성준, 공공선택론. 박영사. 2020.
민경국. 국가란 무엇인가. 북앤피플. 2018.
J. Buchanan. & Congleton, R., Politics by Principle, Not Interest: Toward Nondiscriminatory Democracy. The Collected Works of James M. Buchanan. Liberty Fund, Inc. 2003.
김성준 /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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