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상속세가 뜨거운 사회적 논점이 되었다. 상속세는 감정적 부하가 큰 논점이다. 거대한 부의 상속은 늘 부러움과 비판을 부르고, 상속된 재산에 대한 무거운 세금은 부의 세습을 줄여서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만든다고 흔히 여겨진다. 따라서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여느 때보다 훨씬 차분한 성찰을 요구한다.
가장 너른 뜻에서, 상속(inheritance)은 "앞 세대에서 뒤 세대로 무엇을 이전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전되는 것들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유전적 자산’이다. 앞 세대가 물려준 유전자들에 의해서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살아간다.
이런 유전적 자산에 덧붙여 이전되는 것들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문화라 부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문화가 본질적으로 유전적 자산에 부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의 생명 현상의 기본적 단위는 유전자들이고, 모든 유기체들은 유전자들의 생존과 전파를 돕기 위해 나온 ‘수레(vehicle)’들이다. 문화는 궁극적으로 유전자들의 생존과 전파를 돕는다.
문화 가운데서 핵심적인 것은 재산이다. 개인들의 생존에 도움이 되므로, 그래서 유전자들의 생존과 전파에 도움이 되므로, 애초에 재산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연히, 상속에서 ‘유전적 자산’과 재산은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재산이 상속될 때, 어느 사회에서나 혈연이 결정적 기준이 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 있다.
2. 상속 방해는 문화와 사회에 대한 근본적 위협
이처럼 상속이 이루어지는 곳은 가족이다. 유전적 자산도 문화적 자산도 가족 안에서 상속된다. 실은 바로 상속을 위해서 가족이 생겨났다. 사람이 가장 발전된 종의 자리에 오른 것은 전적으로 가족 덕분이다. 가족이 존재해야, 부모가 자식들에게 투자할 수 있다.
당연히, 가족을 통해서 부모에서 자식으로 유전적 및 문화적 자산이 상속되는 것은 보호되고 격려되어야 한다. 만일 가족을 통한 상속이 어떤 식으로든지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인류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근본적 위협이 된다.
재산의 상속에 대해 매겨지는 상속세는 가족의 상속 기능을 직접적으로 방해한다. 이것은 다른 장점들로 쉽게 덮일 수 없는 결정적 흠이다. 상속세가 지닌 장점들로 꼽히는 것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사람의 본질과 인류 사회의 성격에 대한 그른 가정들에서 나왔음이 이내 드러난다. 특히 가족의 유래와 본질에 대한 이해가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 뚜렷해진다.
상속세를 정당화하는 주장들의 핵심은 그것이 개인들의 초기 조건들에서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를 줄인다는 주장이다. 부모로부터 큰 재산을 물려받은 개인들은 그렇지 못한 개인들보다 초기 조건에서 크게 유리하며, 초기 조건에서의 그런 차이는 평등의 이상에 어긋나고 정의롭지 못하므로, 그런 차이를 줄이는 것은 옳다는 얘기다. 흔히 ‘평등한 출발점(equal starting points)’이라고 불리는 이 주장은 그럴 듯하고 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려 왔다.
평등은 소중한 이상이다. 그러나 어떤 수준을 넘으면, 그것은 다른 이상들과 맞바꾸기(trade-off) 관계를 지니게 되므로, 그것의 실현에는 현실적 제약이 있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한, 온당하고 현실적인 평등의 형태는 기회의 평등이다.
3. 상속세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비록 그럴 듯하지만, ‘평등한 출발점’은 실은 개인과 사회에 관한 얕은 이해와 그른 가정들에 바탕을 두었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는 막 태어난 사람들이 한데 모여 경주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들은 누구나 가족을 통해서 유전적 자산을 물려받고 문화적 자산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라난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 태어나고 살아가는 원자적 개인(atomistic individual)이 아니다. 그래서 인류의 진정한 사회적 단위는 가족이다.
전체주의는 이처럼 인류 사회의 기본적 단위인 가족을 부정한다. 그것은 개인과 최상위 단위 사회 ? 그것이 국가든 민족이든 ? 사이에 다른 사회적 단위들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그런 단위들을 없애려 애쓴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은 "사유 재산의 폐지(Abolition of private property)"로 집약될 수 있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보편적 방안들 가운데 하나로 "모든 상속권의 폐지 (Abolition of all right of inheritance)"를 꼽은 것도 궁극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그의 부정적 견해에서 나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양한 사회적 환경에서 다양한 생태적 틈새들을 찾아내서 살아간다. 우리는 같은 출발점에 모여서 삶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특정한 경기를 통해서 경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대개 협력하면서 살아간다. 어쩌다 뚜렷한 경쟁자가 있는 경쟁이 나오더라도, 한 사람의 경쟁 상대들은 끊임없이 바뀐다. 실은 경쟁들이 거의 언제나 시장을 통해서 이루어지므로, 사람들 사이의 경쟁은 비인격적(impersonal) 과정이다.
이렇게 보면, ‘평등한 출발점’이라는 주장은 아주 비현실적인 비유에 지나지 않음이 또렷해진다. 그것은 구호로는 멋지지만, 차분한 논의와 올바른 정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상속에서 나오는 큰 차이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 차이를 되도록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대해선 모든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차이를 줄이는 것은 삶의 본질인 유전적 상속과 인류에게 특히 중요한 문화적 상속을 어떤 형태로든 방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일차적으로는 기회의 평등이 이루어져 하고, 이차적으로는 상속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인 개인들을 돕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장치들은 상속에서의 모든 차이들이 불러온 영향을 고려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그저 눈에 보이는 재산만을 대상으로 삼아 많은 상속 재산에 무거운 세금을 매기는 것은 해만 클 뿐 차이를 그다지 줄이지 못한다.
이 일에서 가장 온당하고 현실적인 장치는 사회안전망이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모두 돕는다. 그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가난해졌는가 묻지 않고. 사회안전망은 상속한 유전적 자산이나 문화적 자산이 빈약해서 가난한 사람들도 물론 돕는다. 그리고 그렇게 돕는 과정에서 가족을 통한 상속을 방해하지 않는다.
4. 상속세의 문제점들
위에서 살핀 철학적 문제는 본질적 결함이므로, 상속세는 정당화될 수 없다. 게다가 상속세는 여러 가지 실제적 문제들을 안았다.
1) 상속세는 재산권을 가장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침해한다. 재산권에 대한 침해들 가운데 가장 심중한 것은 늘 세금이다. 게다가 부모의 삶의 목적이 자식들을 잘 키우고 보살피는 것인데, 상속세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방해한다. 그 점에서 상속세는 가장 비윤리적인 세금이다.
2) 상속세는 개인들의 일하려는 의욕을 저해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려고 열심히 일한다. 그렇게 모은 재산의 큰 부분을 사회가 세금으로 앗아가면, 일할 의욕은 당연히 줄어들 터이고, 그런 의욕 저상은 사회적으로 크게 해롭다.
3) 상속세는 사람들의 경제 행태를 크게 왜곡시킨다. 상속세의 존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세 대상인 아닌 형태로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길을 찾도록 만든다. 이런 경제 행태의 왜곡은 비효율을 뜻한다. 여기서 세금은 경제 행태에 영향을 되도록 작게 미쳐야 된다는 과세의 중요한 원칙이 나온다. 사람들의 경제 행태를 크게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상속세는 그런 원칙을 크게 어기는, 아주 좋지 않은 세금이라 할 수 있다.
4) 기업들을 어렵게 한다. 기업들의 소유자들은 상속세 때문에 경영권을 유지하기 힘들어서, 주된 소유자가 죽을 때마다, 기업은 어쩔 수 없이 흔들린다. 게다가 상속세는 유족에게서 자본을 가져가므로, 투자할 자본이 줄어들어서, 기업은 부진하게 된다.
5) 상속세는 덕성을 벌한다. 재산은 일단 절약하고 저축해야 모인다 -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은 법으로 다룰 문제며, 세금에 관한 논의와는 관련이 없다 -. 따라서 상속세는 절약과 저축을 벌하고 낭비와 소비를 포상한다. 특히 나이든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재산을 빨리 쓰도록 해서, 가장 나쁜 형태의 소비를 부추긴다.
6) 상속세는 성공을 벌한다. 큰 재산은 대체로 가치를 창출해서 사회에 공헌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 개인들이나 기업들이 큰 재산을 모으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상속세는 성공한 개인들과 기업들을 벌한다.
7) 상속세는 본질적으로 이중 과세다. 소득이 있으면, 일단 소득세가 매겨진다. 따라서 상속세는 이미 세금을 낸 재산에 다시 세금을 매기는 셈이다. 상속세에서 정당한 부분은 상속 재산을 통한 자본 이득에 대한 세금이다. 그래서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를 매기는 방안이 널리 추천된다.
8) 상속세는 세수에 비겨 관리 비용과 사회적 손실이 아주 큰 세금이다. 상속세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OECD 국가들의 평균은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경우, 1997년에 1.2 %였다. 그러나 그것에 드는 비용과 손실은 아주 크다.
위에서 든 실제적 결점들은 누진세에 의해 엄청나게 증폭된다. 널리 시행되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누진세는 근본적 문제들을 안은 제도다.
누진세의 본질적 문제는 그것의 자의성이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소득이나 재산에 비례하여 세금을 내도록 한다는 원칙을 한번 벗어나면, 세율을 산정하는 데 기준이 될 공식을 찾을 수 없다. 상속에 대한 편견이 워낙 거세므로, 상속세의 누진율은 소득세의 그것보다 늘 높고 그렇게 높은 누진율은 필연적으로 상속세가 안은 문제들을 크게 증폭시킨다.
5. 상속세 폐지방안
상속세의 문제들이 이처럼 많고 중대하므로, 근년에는 그것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졌다. 이 일에서 선구자는 캐나다인데, 여러 나라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상속세의 개혁은 대체로 아래와 같은 방안을 따른다.
1) 상속세의 폐지를 준비하는 동안 높은 세율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낮춘다.
2) 상속 재산에서 나온 자본이득에 대해 과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한다. 자본이득세는 흔히 쓰이는 대안이다.
3) 위의 잠정 조치를 통해서 준비가 이루어지면, 상속세를 폐지한다.
위의 방안을 따르면, 우리도 별다른 문제 없이 상속세 문제를 풀 수 있을 터이다. 지금 우리 세제는 아주 원시적이고 우악스럽다. 분명히 헌법에 어긋나는 규정들까지 있어서, 논리와 일관성이 부족하다. 이제 우리는 상속세의 폐지를 계기로 삼아 세제의 전반적 개혁을 꾀해야 할 것이다.
6. 상속세 폐지의 병행과제
그러나 지금 상속세의 폐지는 정치적으로 무척 어렵다. 시민들의 관심도 작고 지지는 더욱 작다.
이 현실적 문제에 관해서, 근년에 상속세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져서 곧 폐지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사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보여준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보다 소득과 재산의 분포에서 훨씬 불평등하다. 게다가 근년에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특히 가장 부유한 계층이 경제 성장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보았다.
한 추산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득 상위 1% 시민들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몫은 1980년의 8%에서 2004년의 16%로 곱절이 되었다. 같은 기간에 소득 상위 0.1% 시민들의 몫은 2%에서 7%로 세곱절 넘게 늘었다. 소득 상위 0.01% 시민들의 몫은 0.65%에서 2.87%로 네곱절 넘게 늘었다.
그래도 미국 시민들의 70% 이상이 상속세의 폐지를 지지한다. 이런 주목할 만한 현상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의 꿈(American Dream)’ 때문이다. 비록 내가 가난하게 삶을 시작해도, 열심히 일하면,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미국의 꿈’을 미국 시민의 80%가 지녔다. 바로 이런 믿음이 미국 시민들로 하여금 부자들의 돈을 세금으로 뽑아내는 대신 스스로 부자가 되려고 애쓰도록 만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선 ‘미국의 꿈’과 비슷한 무엇을 찾기 힘들다. 비록 가난하게 삶을 시작한 사람들도 열심히 배우고 애쓰면, 잘살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닌 사람들이 드물다. 그런 사회적 풍토에선, 아무리 소리 높여 상속세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것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고 외쳐도, 상속세를 폐지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 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정의로우며, 그런 구성 원리에 맞도록 사회 기구들과 정책들을 다듬어내야 모두 잘살 수 있다는 점을 시민들이 뚜렷이 인식하도록 하는 일이 상속세 폐지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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