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란 피해자가 가해자의 '고의 또는 그것에 가까운 악의'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경우, 그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손해액과는 관계없이 고액의 배상금을 가해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의 예를 보면 부과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실손해액의 2배부터 몇만 배까지 달하는 경우도 있다.
원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현행 민법상 손해배상 제도의 미비점인 손해배상의 범위 및 위자료 산정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영미법계에서 판례를 통하여 이용되는 제도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소액 다수 또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대기업이나 국가 등의 위법행위로 인한 집단적 소송 또는 공익적 소송의 실효성 확보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대기업이나 국가 등의 위법행위로 인한 다수의 피해자가 존재하고 각 피해자의 피해 규모는 작지만 전체의 피해 규모가 막대한 경우에는 기존의 민법상 손해배상제도로는 각각의 피해자가 인정받을 수 있는 손해규모보다 침해자가 그러한 가해행위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범위가 매우 큰 경우가 많다.
따라서 피해자가 피해를 입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침해자가 악의적으로 손해를 가하거나 피해자의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채 가해행위를 하는 경우 이에 대한 새로운 책임부과방법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존재한다면 침해자의 가해행위를 예방할 수 있음은 물론 이러한 예방적 기능이 대기업이나 국가 등의 행위에 내재화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회경제체제 전반에 대한 구조적 개선이 이루어지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순기능 이외에도 남소의 빈발로 인한 국가공권력의 국가질서유지기능 약화 및 기업파산으로 인한 국가경제위축이라는 역기능들이 나타나고 있다.
II.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논의 배경
우리나라는 현행법상 손해배상의 범위는 민법 제393조에 의거하여 실손해액 배상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보호법에 의한 소비자피해보상규정에서도 일부피해유형에 대해 손해배상의 구제기준을 정하고 있지만, 민법 제393조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만으로는 공권력의 남용에 의한 신체적 자유나 프라이버시의 침해와 같이 실제 손해의 배상만으로는 피해자의 구제가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비판들이 많았다. 또한 기업이 영리추구를 위해 소비자에 대해 제품 안전성을 기망하거나 수선해야 할 하자를 알면서도 방치하는 경우는 물론, 공해원인인 폐수의 불법적 방출로 인한 손해 발생의 경우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는 현대사회의 불법행위로 인해 손해가 발행한 경우에 장래 재발을 억지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제조물책임소송, 민권소송, 명예훼손관련 소송 등 현대적 불법행위 유형에서 '억지 및 예방'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형사책임원칙을 민사책임분야에 적용시키기 위한 법리적 논쟁을 거쳐야 한다.
우리 현행법상 형사책임원칙과 민사책임원칙 간에는 근본적 차이점을 안고 있다. 즉, 현행법제상 형사처벌의 경우 고의범과 과실범을 구분하고 있으며, 고의범에 대하여는 처벌이 엄격한 반면, 과실범에 대하여는 형사처벌을 면해주거나 감경해주고 있다. 그러나 민사책임의 경우 고의와 과실간에 구분없이 일괄적으로 동일한 책임을 부과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III. 입법논의방향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자 입법방식으로는 민법,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이하 ‘신문법’),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등의 개정이다.
우선 민법개정과 관련하여서는 참여연대의 안이 가장 구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민법개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에 관한 일반규정을 두는 것이 가장 현실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민법 제750조를 다음과 같이 개정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민법 제750조(불법행위의 내용) ①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② (신설)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의도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에 대해 법원은 동 행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합리적인 범위에서 ①의 범위를 넘는 손해배상 액수의 지급을 명할 수 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2004년 8월 신문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여 언론피해자의 적극적인 피해구제를 위해 미국에서 시행 중인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키로 의견을 모은 바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이 커서 법개정을 단행하지 못한 바 있다.
또한 정보통신부는 2006년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하여 기업이 개인정보를 악용하는 경우 제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개인정보의 수집, 이용 및 제공, 이용자의 권리 등 3가지 측면에 있어서 개인정보보호의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하며, 이용자의 권리 측면에서 정보의 열람·오류정정·손해배상 등이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고율의 배상이 가능한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IV. 도입의 문제점
근대법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국에서 시작된 보통법 (Common Law)상의 제도 즉 판례법에 의해서 형성된 제도로서 미국에서 그 적용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되었으며, 최근에는 2배 내지 3배 배상규정을 두는 주법이 제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밖에도 노르웨이, 브라질, 러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 판례법과 제정법을 통해 규율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륙법계 국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과도한 민사책임 부과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이 현존하고 있는 제도이다. 더욱이 제조물책임소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이 부과되는 경우 그 파장이 매우 커서 이에 대한 도입은 신중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보면 1963년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Green v. Yuba Power Product 사건에서 판례를 통하여 제조물책임에 대한 징벌적 배상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 후 1965년에 제2차불법행위법(The Restatement of 2nd Tort Law, 1965)과 1972년 소비자제조물안전법 (Consumer Product Safety Act) 등이 제정?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제조물책임소송으로 인하여 파산하는 기업들이 급증한 바 있다.
특히, 1967년 캘리포니아 항소법원이 Toole v. Richardson-Merrell 사건에서 제조업자에게 엄격책임을 부과하는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함으로써 제조물책임소송이 급증하였고, 각 기업들의 책임보험료가 급증하였을 뿐만 아니라 많은 보험사들이 기업들의 책임보험을 인수하지 않는 사태까지 발생하는 등 미국 경제 전반에 걸쳐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따라서 그 후 州법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한도를 정하는 州들이 늘어났으며, 이에는 콜로라도주, 오클라호마 주, 텍사스주 등이 해당한다.
그리고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네브라스카, 워싱턴 등 4개 주는 다른 법률에 규정이 없는 한 판례를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입법을 한 바도 있다.
심지어는 정부차원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개혁하고자 하는 안(Tort Policy Working Group, 1992)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대해 제조물책임 소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기업의 제품의 결함을 알면서 이를 개선하지 않았다는 악의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이유로 제조물책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지지하는 견해들도 많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1996년 미국의 연방대법원이 징벌적 손해액이 지나치게 과다하다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미국에서는 제조물책임소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과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따라서 1997년에는 미국법률협회 (American Law Institute; ALI)가 제3차 불법행위법 (The Restatement of 3rd Tort Law)을 제정하여 종래 제조물책임을 엄격책임법리하에서 해석하던 것을 과실책임법리로 전환시킨 바 있다.
그리고 소비자제조물안전위원회(Consumer Product Safety Commission; CPSC) 등과 같은 정부기관이 제조물책임소송의 확대를 방지하고자 하는 정책적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볼 때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악의적인 기업이윤추구행위나 국가공권력 남용으로부터의 국민의 재산과 신체의 자유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위헌성 논란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V. 결 어
우리나라는 2002년 7월 1일부터 제조물책임법이 입법이 되기는 하였으나 제조물책임 소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최근 들어 제조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급증하면서 소비자보호원에 상담이 급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소송비용 등을 감안하면 배상액보다 소송비용부담이 더 커서 굳이 소송 제기의 실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따라서 최근에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제도를 도입하고자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의 여지가 있는 제도가 될 수 있다.
더욱이 제조물책임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경우 우리 경제의 위축문제가 심각히 대두될 수도 있다.
오늘날에는 제조물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으며, 제조물 자체가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성격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국제적 거래로 인한 제조물책임의 국제적 경향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좀 더 현실성 있고 세계추세에 부응하는 입법론적인 논의와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보호라는 차원에서 지나치게 제조물책임소송제도를 통해 기업들의 경영상 주의의무를 강화시키고자 하거나 지나치게 제조물책임의 성립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제조물책임을 엄격히 묻고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배심제를 도입하고자 하는 정책은 신중히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앞에서 본 미국의 경우 제조물책임소송에서 배심원들이 참여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결국 경제를 위축시켰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안이 마련된 후 논의하여도 늦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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