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은 소비자가 기업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소비자를 대신해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민간단체들이 소송을 제기해 해당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위법행위를 시정하도록 하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를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50인 이상 소액 다수 소비자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 요건을 갖춘 단체가 사업자를 상대로 권익침해행위 중지를 법원에 청구하는 단체소송제를 2008년부터 도입할 예정을 가지고 입법추진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일정요건을 갖춘 단체, 즉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로는 다음의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즉, ①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에 의해 등록된 정회원 1,000명 이상인 단체일 것 ② 소비자 권익 증진 목적이 정관에 명시되어 있을 것, ③ 3년 이상 활동실적이 있어야 할 것 등이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자격을 갖춘 민간단체는 2006년 현재 재경부 등록 기준으로 1,10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볼 때 기업의 잘못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본 경우, 적은 금액의 보상이나 배상을 받기 위해 소비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단체가 대신 나서서 위법행위를 시정하고 판매를 중단하라고 법원에 청구하도록 하는 것은 소비자보호차원에서 볼 때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문제는 누가 소비자를 대신하여 소송을 제기하도록 할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법안 내용에 따르면 정치권은 민간단체에게 이를 일임하고자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는 긍정적인 면도 있을 수 있지만 부정적인 면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자칫 민간단체들이 소비자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추구에 더 관심을 갖는다면, 기업들에게 과도한 피해가 발생함은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그 비용을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입취지는 좋지만 이러한 혼란을 사전에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마련된 후 입법론적인 검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II. 소비자보호관련 현행제도 검토
방문판매업자가 사은품으로 소비자를 현혹해 물건을 비싸게 판다든지,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물건을 유통시키는 등의 행위로 인하여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현재는 소송 요건이 까다로워 소비자의 권익 보호가 어려웠다는 비판들이 있었다. 따라서 소송요건을 완화해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기업들의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을 도모하기 위해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여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정신을 못차린다고 하는 식의 주장은 지나친 편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소송을 활성화시키는 것만이 소비자권익보호가 이뤄진다고 보는 것도 자칫하면 극단적인 해결방법이 최선이라는 이야기와 동일할 수 있다.
독일의 예를 보더라도 많은 민간단체들이 직접소송을 제기하지 않고,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원과 유사한 독일 소비자보호협회에 소송이나 조치를 의뢰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소비자보호협회는 조사 후 우선 경고 등을 행하고, 그래도 시정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소송을 제기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소비자들이 소비자보호원에 고발하면, 소비자보호원이 이를 조사?심의하고 있으며, 소비자와 사업자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을 하고 있어, 이미 독일과 유사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 단체소송제도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권익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심하게 침해를 받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독일과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원이 소비자들을 대신하여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만약 법개정이 필요하다면, 소비자보호원에게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방안을 먼저 모색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여당이 발의한 법안 내용대로 별도의 소비자단체소송법을 제정하는 것 자체는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클 수도 있다.
III. 소비자단체소송법안의 문제점
1. 비교법적 문제
법안 내용에 따르면 현재 재경부에 등록된 1100여개 비영리민간 단체가 소송을 대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이 많은 민간단체들에게 준사법기관의 자격을 준다는 점이다.
금번 도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는 미국의 집단소송제도와 독일의 단체소송제도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사실 미국과 독일은 단체소송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두고 있지만 그 제도 운영은 현재 법안 내용과는 많이 다르다.
미국은 집단소송의 형태로 이를 운용하고 있으며, 이의 남발을 막기 위해 1995년과 1998년에 각각 남소를 방지하는 입법을 제정한 바 있다. 그리고 독일은 독립된 법이 아니라 부정경쟁방지법에 근거 규정을 두고,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원(1987년 소비자보호법에 의거설립)에 해당하는 민간단체인 독일 소비자보호협회가 주로 시정요구와 소송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 단체운영비는 연방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법안에 따르면 1100여개의 민간단체들에게 정부가 재정지원한다는 규정은 없고, 이들 모두가 소송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소송남발의 우려가 있다. 참고로 미국의 집단소송의 경우 90% 이상이 판결이 내려지지 않고, 중간에 화해로 끝나고 있고, 독일도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는 그 비율이 매우 낮고, 도중에 시정조치가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소비자를 대신하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 기업은 소송제기에 앞서, 또는 소송제기 후 민간단체와 화해나 합의를 할 가능성이 높아 입법취지와는 달리 소비자단체소송이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민간단체들의 운영과 관련하여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내용은 법안에 없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많은 단체들이 운영비용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기 위하여 미국처럼 일단 소송을 제기한 후 화해금을 받아내는 방법으로 운영비를 조달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결국은 민간단체의 운영비를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금번 소비자단체소송의 가장 유력한 모델인 독일의 단체소송의 경우에도 이러한 소송의 남발을 우려하여 독일 연방법원에 등록되고, 연방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소비자보호협회가 주로 단체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즉, 1개의 민간단체가 소비자단체소송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연방법원에 등록된 전국의 소비자단체들도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이며, 대신 이들은 소비자보호협회에 소송을 의뢰하고, 소비자보호협회가 그 타당성 및 법리 검토를 한 후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에 남소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독일의 단체소송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1999년 기준으로 소비자보호협회는 611건의 경고 및 이의신청을 내 이 중 313건이 해결됐고, 소송은 모두 81건을 제기해 24건에서 승소했다고 한다. 즉, 독일은 이러한 소비자보호협회가 현재의 소비자보호원에 해당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일의 소비자보호협회와 우리나라의 소비자보호원과의 차이는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법안 내용대로라면 이러한 독일의 소비자보호협회 외에도 1100여개의 민간단체에게 직접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남소가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민간단체들이 1년에 한건 씩만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1년에 1100여건이 제기된다는 계산이 된다. 더욱이 독일은 2005년 현재 약100만개의 회사가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30만개 정도 밖에 없다. 이는 기업들의 소송부담이 독일과 미국보다는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비교법적으로 볼 때 현재 여당이 도입하고자 하는 소비자단체소송제는 그 법리나 법체계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법안 내용적 문제점
소비자단체소송법안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단체소송제는 판결 효력이 해당 제품의 판매 금지나 불공정 약관 시정 등 기업의 위법 행위 금지에만 미치기 때문에 집단소송제보다 기업의 부담이 덜 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기업에게는 손해배상하라는 것보다도 제품을 판매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많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업입장에서 볼 때에 제품생산을 위해 많은 연구비와 생산비, 인건비 등을 지출하는지를 보면, 오히려 손해배상이나 화해금을 지급하는 것이 오히려 적은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제품의 판매만을 금지하는 것이 기업에게 부담이 덜할 것이라는 속단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또 법안에서는 남소의 방지를 위하여 소송허가제를 실시하고자 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소송허가제라는 것이 있어서 사전에 법원으로부터 공익을 위해 필요한 소송이라는 허가를 받게 돼 있는데, 소송 남발로 인한 피해가 클 것이라는 건 지나친 우려라는 견해들이 있다.
그러나 단체소송을 제기하기 위하여 법원에 소송허가를 신청하는 경우, 법원은 1달 정도의 짧은 기간동안 소비자피해가 발생하였는지 여부를 사실적으로 심사하고 검토하여야 하는데, 시간적으로 이를 수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법원은 허가시 법안 내용대로 피해를 보았다는 소비자가 50명 이상이 되는지, 그리고 단체소송을 제기한 민간단체가 재경부에 등록된 단체인지, 정회원 회원이 1000명 이상이 되는지, 소비자 권익 증진 목적을 정관에 명시하였는지, 그리고 3년 이상 활동실적이 있는지 등의 형식적 심사만 하고, 내용심사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법원의 허가제도가 남소를 방지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더욱이 일단 소송허가 신청이 접수되면 그 진위여부를 떠나서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거나 법원이 이를 공시하기 때문에 기업은 소비자에게 피해를 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시간도 없이 매출이 급감하고, 주가가 떨어질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소송허가제도가 남소를 막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법안 내용에 따르면 원고인 소비자단체가 패소하면 피고인 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소비자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하면 반대로 소비자 단체가 기업의 피해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당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실제로 소송이 활발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악의적으로, 또는 중대한 과실로 소송을 제기하여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민간단체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제도는 입법론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실효성은 거의 0(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우선, 대부분의 소비자단체소송은 외국의 예에서 보듯이 최종 판결까지 갈 확률은 매우 낮다. 따라서 예를 들어 10건의 단체소송 중 1건 정도만 최종판결이 나고 대부분은 기업측이 화해를 원할 것이기 때문에 민간단체가 패소할 확률은 매우 낮다.
그리고 단체소송이 제기된 경우 기업의 피해는 최소 몇십억 단위가 될 수 있는 반면에, 민간단체는 운영비도 정부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손해배상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 손해배상규정은 사실상 집행력이 없는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간단체의 손해배상책임규정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형식적 규정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IV. 결 어
현재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입법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립된 법률로 “소비자단체소송법”을 제정하는 것인 만큼 여러 가지 부작용 또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도입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입법을 추진하기 보다는 부작용 또한 신중히 고려한 후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한 후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입법시 소비자의 권익을 위한다고 제정한 법률이 오히려 소비자들의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꼼꼼히 검토한 후 입법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는 제안된 소비자단체소송법안 자체를 폐지하고 차후에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친 후 새로운 법안작성 작업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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