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침탈 방지책, 피고에 입증 부담 떠넘긴다는 평가
자유기업원 "윤리 경영 원칙 확립해 사전 예방 필요"
매일일보 = 박규빈 기자 |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 방지를 목적으로 관련 법률이 강화된지 2년이 지났다. 그러나 기술 유용 행위가 있었음을 수탁 기업이 주장할 경우 '제시'와 '입증'의 불분명한 경계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방책이 필요하고, 반 시장적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윤리 원칙을 강화해 기업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국회는 2021년 7월 23일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중소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을 대기업들이 무단 침탈할 수 없도록 함이 입법 취지로, 소위 '상생협력법'으로 통한다.
이는 △비밀 유지 계약 △기술 유용 행위의 구체적 범위 산정 △징벌적 손해 배상제 도입 △기술 유용혐의 유무에 대한 1차적 입증 책임 분산 △소송 과정 상 자료 제출 불응 시 제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같은 해 9월 28일 국내 매출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중 24.4%는 '협력사와의 분쟁 급증'을, 22.4%는 '거래를 중단할 경우 기존 업체와만 거래'를 우려했다. 아울러 '협력사와의 기술 협력 저해'를 언급한 비율도 17.9%에 달했다.
현재 상생협력법은 기술 유용과 관련해 수탁 기업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낼 경우 위탁 기업이 구체적 행위 태양을 '제시'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사실상 대기업들이 스스로 기술 침해를 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으로, 그렇지 못할 경우 수탁 기업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겠다는 법리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집권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다. 재계는 대기업들이 입증 책임을 일방적으로 져야 하는 셈이라며 반발한다. 하지만 당정은 "중소기업들의 입증 책임을 일부 완화하는 것일 뿐, 구체적인 부분까지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김형두 법원행정처장은 "원래 민사 소송에선 원고가 입증 책임을 지게 돼있는 것이 대원칙인데, 이 경우는 대기업이 다른 방식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식으로 밝히라고 하는 꼴"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이 같은 의견을 반영해 상생협력법 제40조의 4 제1항에서 '위탁 기업이 이를 밝힐 수 없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구체적 행위 태양을 제시하지 않도록 해 방어권을 보장했다.
윤주진 자유기업원 정책전문위원은 "기술 침탈 사실이 없음을 제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인지, 이후 그 사실의 타당성과 진실성을 추가로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경계선이 불분명한 것은 여전히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이어 "소송이 개시되면 위탁 기업들이 제시하는 구체적 행위 태양에 대해 수탁 기업이 부인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 대기업들은 추가로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제시'와 '입증' 간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정 간 협의를 통해 기술 탈취에 따른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 배상액을 현행 3배에서 5배로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한 피해 해결 과정까지 정부 당국이 지원하는 '원스톱 기술 보호 플랫폼'도 마련하겠다고도 했다.
윤 위원은 "특정 경제 주체를 '잠재적 가해 집단'으로 규정한 입법이 오히려 기업 간의 자유로운 협력과 거래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기술 탈취 혐의에 따른 사법 처리와 기업 신뢰도 하락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와 주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윤리 경영 원칙을 기업이 스스로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규빈 매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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