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업원 윤주진 정책전문위원은 지난 20일 ‘중소기업 기술탈취 방지법’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21대 국회는 수탁기업의 기술 유출 방지와 위탁기업의 기술 탈취에 따른 손해 배상 강화를 위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의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중소기업 기술탈취 방지법’이다. 일각에서는 ‘상생협력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중소기업 상생혀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법은 정부를 비롯해 여야 6명이 발의한 법안을 함께 통합 심의하여 마련된 수정법률안으로, 2021년 7월 23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비쟁점 법안이었던만큼 반대‧기권에 비해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체계자구심사를 맡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 과정에서는 본 법안에 대한 반대와 우려 의견이 일부 제기됐다. 그 이유는 법률개정안이 신설하고자 하는 제40의 4 조항 때문이다. 이른바 '입증책임 전환’ 문제를 두고 정부와 여야 간의 공방이 진행됐다.
개정안은 기술 유용 행위를 둘러싸고 수탁기업과 위탁기업 간에 손해배상청구소송 분쟁이 발생 시, 수탁기업이 위탁기업에 의한 기술 유용을 주장하는 경우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 위탁기업이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더 일반적인 경우로 설명하자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에 의한 기술탈취를 주장할 경우 대기업이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무조건 수탁기업(중소기업)의 주장을 '진실'로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본 법안의 취지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계와 국민의힘 의원 일부는 사실상 입증책임을 대기업(위탁기업)에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중소기업의 입증책임을 일부 완화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며,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제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입증책임이 전환된 것은 아니라고 맞받아 쳤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현실적으로 원청 업체인 대기업이 구체적으로 기술 탈취를 부인하기 위해 사실관계를 제시하지 않는 한,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어렵다는 점을 들며 일정 부분에 입증에 대한 책임을 피고(위탁업체)에 분산시키는 것 정도는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388회 국회 제5차 법사위에 출석한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 조항에 대해 이런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본 법안 제40조의 4 제1항에서 '위탁기업이 이를 밝힐 수 없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는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하지 않도록 하고 있으며, 2항에서는 그 상당한 이유의 정당성을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자료 제출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 유용행위가 있었음을 수탁기업에서 주장하는 경우 이를 부인하는 위탁기업은 1차적으로 '구체적 행위태양’을 제시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된다. 인력‧자금‧경영 여건 면에서 여러 한계가 분명한 중소기업이 모든 입증책임을 떠안는 것은 사실상 기술탈취 혐의 입증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현실적 한계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입증의 부담을 일부 대기업 측에 전환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단순 '제시’로 끝나는 것인지, 제시 이후 그 사실의 타당성과 진실성을 추가로 '입증'해야 하는 것인지 그 경계선이 불분명한 것은 여전히 이 법이 갖고 있는 논란 사항이다. 소송이 개시되면, 위탁기업 제시하는 구체적 행위태양에 대해 수탁기업이 부인할 가능성이 현저히 높고, 이 경우 위탁기업은 추가로 재판부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결과 대기업의 중소기업과의 협력관계 구축과 공동 기술 개발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 법안 통과 직후인 같은 해 9월, 국내 매출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4.4%의 응답기업이 '협력사와 분쟁 급증’을 우려했고, 22.4%는 '거래를 중단할 경우 문제발생 우려로 기존 업체와만 거래’를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또, '협력사와 기술협력 저해’를 지적하는 응답도 17.9%였다. 해외 글로벌 기업의 한국 중소기업 '기피’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제시와 입증, 이 둘 간의 불분명한 차이를 명확하게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제3의 기술 전문가로 구성된 기관을 통해 위탁기업과 수탁기업 양 측이 제시한 자료를 두고 기술탈취 여부를 판단하도록 법제화하는 대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 법률 개정안이 마련되는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참고된 선례법은 바로 특허법이다. 특허법 제126조의 2 '구체적 행위태양 제시 의무' 조항을 사실상 그대로 적용한 것이 본 개정안 제40조의 4다. 법사위에 보고된 국회 소관 전문위원 체계자구검토보고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특허는 국가 공인에 의해, 개인과 기업이 발명한 기술 등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 특허는 그 내용을 공개하여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특허는 침해의 대상이 충분히 구체화될 수 있고 특허 기술을 사용한 측과 제3자가 모두 침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기술자료를 유용했다고 했을 때 이 기술자료는 내용과 범위를 수탁기업에서 비밀로 관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유용의 대상, 범위에 대해서는 위탁기업은 알 수 없으므로 먼저 수탁기업에서 특정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허 침해 분쟁에서 제시해야 할 구체적 행위태양에 비해, 기술유용행위 분쟁 과정에서 제시해야 할 구체적 행위태양이 더 광범위해질 수 있다. 입증의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2023년 6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당정 간 협의를 통해 기술 탈취 피해를 근절하기 위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3배에서 5배로 상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기술 탈취 발생 시 피해의 해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정부가 지원하는 '원스톱 기술 보호 플랫폼’도 마련할 계획이다.
지식재산권은 우리 헌법과 법률이 보호하는 소유권 중 하나로, 인간의 기술이나 사상을 권리화 한 것이다. 시장경제 질서의 기본 바탕은 소유권 제도다. 소유권, 재산권이 온전히 보장돼야만, 경제 주체의 이윤 추구 동기가 생기고 부를 축적할 수 있으며 성장 동력인 자본이 형성된다. 과정에서 경쟁과 투자, 혁신이 이뤄지고 자유로운 무역과 거래에 의해 사회적 효용이 증가한다.
다만, 특정 경제 주체를 '잠재적 가해 집단’으로 규정한 입법이 오히려 자유로운 기업간의 협력과 거래를 저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임직원에 의한 타기업 예방하고 제재할 수 있는 윤리경영 원칙을 기업이 스스로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기술탈취 혐의에 따른 사법 처벌, 기업 신뢰도 하락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이며, 주주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자구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한용 지피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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