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가 법인세를 낮춰 극빈국에서 세계 최고 부자국가로 발돋움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법인세 인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이 주장에는 부자국가를 규정하는 경제지표가 무엇이냐 등 가치판단의 문제가 남는다.
지난달 20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유럽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 아일랜드는 세계 최고 부자나라로 올라섰습니다"라며 "법인세 인하가 전 세계에서 글로벌 기업을 끌어들인 결과입니다"라고 법인세 인하의 필요성에 대해 피력했다.
그러면서 "과중한 조세는 '경제 쇄국정책'입니다. 국경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만 과중한 조세를 계속 고집하면 글로벌 경쟁 시대에 쇄국정책은 결국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의 길 가게 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유럽재정위기의 대표적인 국가로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에 속한 국가였던 경제 최빈국 아일랜드가 현재는 경제 최고 부유국이 된 모습을 평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아일랜드의 성장에 대해선 다양한 견해들이 있어 법인세 인하가 아일랜드의 성장에 기여한 것이 맞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일랜드는 부자 국가? 1인당 GDP는 세계 1위
먼저 세계은행이 공개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GDP(국내총생산)은 2022년 5292억 4천만 달러로 전세계 국가 중 28위에 해당한다. 이는 13위인 우리나라보다 낮은 순위다. 그렇지만 아일랜드의 인구는 505만 명으로 5178만 명인 우리나라(2023년 기준) 보다 1/10가량 적은 수를 보인다.
따라서 GDP/전체인구수로 계산하는 1인당 GDP의 경우 2022년 기준 아일랜드는 10만 172달러로 세계 1위에 위치해있다. 같은 통계상 불과 12년 전까지만 해도 이에 절반인 4만 862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같은 아일랜드의 성장은 2014년을 기점으로 급속히 이뤄졌다. 2014년 GDP 8.6% 성장한 아일랜드는 다음해에는 24.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6년 성장률은 2%로 잠시 주춤했지만, 2017년 9%, 2018년 8.5%, 2019년 5.4%, 2020년 6.2%, 2021년 13.6%. 2022년 12%로 매우 높은 성장세를 보였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아일랜드의 GDP가 평균 9.6% 성장한 셈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아일랜드의 성장은 수치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2015년 24.4% GDP가 성장한 아일랜드에 대해 SNS를 통해 레프러콘 경제학(Leprechaun economics)이라고 주장했다. 레프러콘은 아일랜드의 전설 속의 요정으로 아일랜드에 실질적인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GDP가 성장한 모습이 요정과 같다는 의미로 비유됐다. 그는 "아일랜드 경제는 부분적으로 낮은 임금과 낮은 법인세율 때문에 서유럽에서 막대한 자본 유입을 끌어들였다. 이것은 GDP 성장에 도움이 되었지만 국민 소득은 뒤처졌다. 성장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라는 내용도 2017년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다.
아일랜드에 소재한 UCD GEARY 연구소 연구팀도 2017년 '켈틱 피닉스 또는 레프리콘 경제: 유럽에서의 FDI 주도 성장 모델의 정치(Celtic Phoenix or Leprechaun Economics The Politics of an FDI-led Growth Model in Europe)' 논문을 통해 "아일랜드의 경제위기 이후 경제를 회복시키는데 외국인직접투자(Foreign Direct Investment, FDI)가 주도했지만 이득을 재분배하지는 않았다"며 "아일랜드의 FDI 주도 경제 발전 모델은 분배의 문제가 있어 명확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패트릭 호노한 전 유럽중앙은행(ECB) 집행위원 겸 아일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아일랜드가 정말로 유럽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인가(Is Ireland Really the Most Prosperous Country in Europe)' 논문을 통해 아일랜드는 정말 유럽에서 가장 번영하는 나라인가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도 했다. 논문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의 지적 재산권(IP) 대규모 항공기, 선박 등의 임대 등으로 인해 GDP가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1인당 실제 개인 소비를 미국과 구매력을 평가한 지수'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인구 100만 명 이상인 25개국 중 21위에 위치했다.
법인세 낮다는 아일랜드, 사실일까
매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아일랜드의 1등 공신으로는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법인세가 꼽힌다. 아일랜드는 2003년 1월 1일부터 기존에 32%였던 법인세를 12.5%로 인하해 낮은 수준으로 시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아일랜드는 구글, 메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트위터, IBM, 인텔 등 IT 기업의 유럽 본사를 유치했고, 존슨앤존슨,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등 1700여 개에 이르는 다국적 기업들도 유치했다. 2016년에는 브랙시트 이후 영국 내에서 EU를 대상으로 활동하던 금융기업들 중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와 바클레이즈를 아일랜드로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법인세를 25%로 시행하는 독일의 경우 2016년 영국의 브랙시트 당시에 아일랜드를 제치고 대형 은행인 골드만삭스, JP 모건, 도이치뱅크를 자국 내로 이전시켰다.
아일랜드보다 법인세가 낮은 국가도 있다.
OECD 국가 38개국 중 법인세가 낮은 순으로 정렬하면 헝가리(9%), 칠레(10%), 아일랜드(12.5%) 순서다. 아일랜드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법인세를 시행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전체 국가를 대상으로 확대해서 보면 조세회피처로 불리는 미국령 사모아, 앵귈라, 바하마,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코스타리카, 피지 등의 국가들이 법인세가 더 낮다.
한편 올해 아일랜드는 2021년 10월 137개국이 합의한 글로벌 최저법인세에 따라 법인세를 15%로 인상할 예정이었지만, 미국의 이행이 불투명해지자 시행에 차질을 빗고있다.
법인세가 다국적기업의 아일랜드 투자를 이끌었나
아일랜드의 경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영미권 국가로 유럽 진출이 용이한 지리적 이점도 가지고 있다. EU 내에서 중요한 교통 허브로서 유럽 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쉬운 위치에 있는 아일랜드는 효율적인 물류 체인을 구축하고, 더 많은 고객과 회사들과 연결할 수 있는 이점으로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또한 조세특례조항을 비롯하여 다양한 투자 유인책을 통해 외국인직접투자 유입을 높였다. 아일랜드는 외국인 투자기업이 연구개발(R&D) 비용을 지출할 경우 지출액의 12.5%만큼의 법인세 공제 혜택과 더불어 25%만큼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많은 연구단지가 유치되고 여러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게다가 EU의 절반 수준이면서 세계 최저 수준인 12.5% 법인세를 20년간 유지해 투자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조세 정책을 시행중이라는 인식을 확보했다. 경제가 어려웠던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12.5%를 유지하며 전 세계 기업들에 안정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이에 유치된 다국적 기업들이 납부하는 법인세가 아일랜드 전체 세수의 2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기업원 윤주진 정책전문위원은 지난달 26일 발표한 '법인세 1% 인하' 보고서를 통해 "아일랜드의 급속 성장에는 법인세의 획기적인 인하가 주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경제학 연구들에 따르면 기업이 투자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을 깎아주는 정책을 하게되면 투자가 늘어나고 고용창출도 늘어난다는 결과들이 최근 많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도 "법인세는 글로벌 경쟁의 대표적인 조세"라며 "법인세가 높게 되면 국제 경쟁에서 떨어진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결과다. 그렇기에 법인세가 낮춰지면 상대적으로 다른나라보다 (법인세가 낮은 나라에) 투자할 여력이 많이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법인세만 가지고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자 요인 중에서 조세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사실이고 조세 경쟁에서 이겨야만 외국의 투자가 유인될 요인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학수 KDI(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일랜드는 워낙 작은 국가이기 때문에 국내 자본을 육성하기 어려워서 FDI를 끌어들이기 위해 과감한 정책을 시행했다"며 "법인세 인하는 FDI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탈세를 위한 아일랜드 투자...IM"유령같다"
아일랜드는 BEPS(Base Erosion and Profit Shifting)에 대한 지적도 있다.
BEPS는 다국적기업들이 글로벌 세부담을 줄이기 위해 국가 간 조세제약이나 세법차이 등을 악용하는 국제적 조세회피전략을 말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전략은 타국가에서 생산한 제품이나 서비스 등을 판매한 금액을 세금이 낮은 국가로 옮겨 세금을 줄이는 방식이다.
일례로 아일랜드는 '더블 아이리쉬 앤 어 더치 샌드위치 구조(Double Irish and a Dutch Sandwich)'라는 방식에 취약했다. 이같은 방식을 사용하기을 위해 기업들은 미국 등 다른 센터에서 진행된 연구개발로 벌어들인 수익을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고한다. 이를 통해 세제 혜택을 받고 실제 연구가 진행된 국가에서 냈어야 할 세금도 내지 않게 된다. 또 등록된 특허를 아일랜드에서 소유하고 있으면 중국 등 다른 국가에서 생산돼 판매되는 제품의 매출이 아일랜드의 매출로 산정돼 세금을 절약하게 된다. 이는 아일랜드에서 번 것도, 아일랜드에서 쓰지도 않는 수익이 GDP에 포함되어 수치를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세회피 성격인 투자가 아일랜드에 유입된 부분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민 연구원이 2023년 6월 발표한 '아일랜드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경 및 관련 논의'에 따르면 아일랜드는 인구구조, 투자, 경제성장 등 장기적 전망 및 급속한 경제성장의 실체에 대한 부정적 견해도 존재하기 때문에 해외 직접 투자 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IMF는 2019년 발표한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글로벌 FDI 네트워크에 없는가?(What Is Real and What Is Not in the Global FDI Network?)' 연구 논문을 통해 아일랜드로 유입되는 총 외국인직접투자의 62%가 역외 세금 탈세에 활용되는 특수목적기업(Special Purpose Entities, SPE)에 있다며 "유령같다"고 밝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일랜드 중앙통계청은 특수목적기업로의 외국인직접투자가 아일랜드 전체의 5%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학수 선임연구위원은 "법인세를 피하려는 투자는 세율이 매우 낮은 조세피난처 같은 국가로 향할 것"이라며 "일반적으로 외국인직접투자는 설비투자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목적일 뿐 조세회피를 위해서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홍기용 교수는 "조세회피 국가를 막기위해 글로벌 법인세를 만들고 있고, 법인세율이 아주 낮은 경우에 발생하는 것이다"라고 일축했다.
GDP 수치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GDP는 한 나라의 영역 내에서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일정기간 동안 생산한 재화 및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시장가격으로 평가하여 합산한 것으로 여기에는 비거주자가 제공한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에 의하여 창출된 것도 포함되어 있다.
다만 GDP는 실질적인 국민 소득이나 삶의 질 등을 평가할 수 없는 한계점이 명확하다.
UCD GEARY 연구소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아일랜드가 급속 성장하는 동안 내국인 노동자 대신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고용이 증가해 실업급여가 2008년 10억 유로에서 2012년 30억 5천만 유로로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석병훈 교수도 "1인당 GDP가 높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소득이 높다는 뜻이지만 국민 삶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소비지출 수준, 여가 활동에 사용한 시간 등의 보조지표도 활용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김학수 선임연구위원은 "1인당 GDP가 높다는 것은 생활 수준이 높다는 것을 말하지만 인구가 작은 소규모 국가인 경우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일랜드가 24.4%의 가장 높은 GDP성장률 보인 2015년 경우 9.9%의 실업률을 기록했다. 2021년에도 6.2%의 실업률로 우리나라의 실업률인 3.7%보다 높은 수치다.
따라서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약 9.6%의 GDP 연평균 성장률을 보이며 급속 성장한 아일랜드는 현재 1인당 GDP에서 세계 1위 반열에 오른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성장을 보인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장윤우 노컷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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