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교섭 의무’ 인정 판결, ‘노조법 개정’에 파장… 재계 “카오스”

자유기업원 / 2023-01-25 / 조회: 4,644       스카이데일리
서울행법, CJ대한통운 교섭 거부 ‘부당노동행위’ 결론 
노동계, 다발적 직접 교섭 및 노조법 2조 개정 요구 
동종 소송 이종 판결… “법제화 전 편향적 집행 문제”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직접 교섭 의무를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나오면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업자의 정의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원청 사업주와 직접 교섭을 요구해 온 노조들이 일제히 호응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노조법 2조 개선안’도 재조명 받게 됐다. 다만 아직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원청의 책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택배노조 “당연한 결과”… CJ대한통운·대리점 연합회 극렬 반발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이달 12일 CJ대한통운(원고)이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피고)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을 기각(원고 패소)했다. 앞서 중앙노동위는 2021년 6월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조(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므로 단체교섭에 응하라고 구제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번에도 법원은 하청노동자라는 이유로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뿐 아니라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번 판결은 사용자를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자’로 규정한 기존 대법원 판례와 달리,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교섭 의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보통 국내 택배업계는 택배사(원청)와 계약을 맺은 대리점(하청)이 택배기사(하청노동자)를 고용하기 때문에 택배사와 택배기사 간에는 명시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 

CJ대한통운 역시 원청이 하청업체의 일에 개입할 수 없으며 하청노동자는 하청업체와 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에 택배노조는 원청이 하청 사업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진짜 사장’이므로 하청노동자가 원청과 교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택배노조는 “당연한 결과를 기다리는 데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며 “이제 CJ대한통운은 즉각 택배 노동자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환영했다. 

CJ대한통운 측은 기존 판례를 뒤집은 판결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은 판결문을 검토해 즉각 항소할 계획이다. 또한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은 이번 판결이 전국 2000여 개 대리점의 경영권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유감을 표명했다. 

택배대리점연합은 “택배 산업의 현실과 생태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이라며 “판결에 따라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을 원할 시 요구 내용은 대리점과의 표준계약서를 통해 규정한 계약기간·배송구역·수수료율 등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당 내용을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으로 변경하면 대리점 고유의 경영권을 침해하게 된다”며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 체결한 표준계약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로 원청과 직접 교섭을 원하는 다른 노조에도 힘이 실리게 됐다. 금속노조는 법원이 금속노조 사업장에도 원청과의 교섭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속노조는 “한국 사회는 다단계 하청 구조를 만들며 원청의 책임을 지워왔으며 수없이 많은 중간 착취자를 세우며 하청노동자의 고혈을 쥐어짰다”며 “원청 자본은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거나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탄압으로 답했지만 이번 판결로 ‘진짜 사장’의 교섭 의무가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현재 비슷한 내용으로 여러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어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 판결 내용은 일치하지 않는다. 현대제철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라는 중앙노동위 판정에 불복하고 행정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13일 오전 현대제철이 제기한 소송의 1차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비슷한 내용으로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1·2심에서 금속노조가 패소했으며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외에 대우조선해양·롯데글로벌로지스 등도 원청의 교섭 의무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원에서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교섭 책임을 폭넓게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경향이 옳은 일인지를 떠나 앞으로의 판결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만 기존 판례와 배치되는 판결이니만큼 법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증가하고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 증가에 따른 갈등과 분쟁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조법 개정안 경제계 우려… 전문가 “법제화 전 법 정서 반영 아쉽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노동계가 추진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행 노조법 2조는 사용자를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로 정의한다. 민주당과 노동계는 여기에 ‘근로조건에서 사실상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미치는 자’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총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등 교섭의 대상이 형식적인 계약 관계인 대리점, 하청회사가 아닌 원청임을 확인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며 “노동계와 노동시민종교학술법률 단체들이 일관되고 줄기차게 요구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이 정당함을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와 노조의 노동조건 개선 등에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이 원청에 있음을 확인한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오늘의 판결은 현재 국회에서 공전하고 있는 노조법 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경제계는 이번 판결에 반발하는 데 더해 노조법이 개정되면 산업 현장에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쳤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하청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에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이번 판결은 아무런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데도 원·하청 간 단체교섭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기존 판례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이어 “산업현장에서는 법 해석을 둘러싼 혼란이 증가하고, 하청노조의 단체 교섭 요구 증가에 따른 갈등과 분쟁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재판에서는 근로계약 관계를 전제로 한 단체 교섭 제도의 취지를 충분히 고려해 산업현장의 혼란과 갈등을 줄여주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최승노 자유기업원장은 “노조법 개정안에 따라 사용자를 ‘근로조건에서 사실상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미치는 자’로 정의한다면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사용자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게 된다”며 “예를 들어 정부가 산업 관련 정책을 발표하면 산업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런 이유로 노조들이 너도나도 대통령에게 교섭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법 개정 전부터 하청노동자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법을 집행하는 데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전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규정 등을 보면 원사업자가 가지는 책임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며 “시대를 이루는 법 감정이 있는데 현재의 정서가 원사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진행되는 개정안이 옳은지 아닌지를 떠나 법제화 혹은 법 집행 단계에서 원사업자보다는 수급 사업자 또는 하청노동자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먼저 법제화를 한 다음에 그 법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법치주의인데 미리 결론을 정해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양준규 스카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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