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315개 '첩첩규제' 땅주인도 몰라

김정호 / 2004-02-12 / 조회: 12,239       중앙일보, E4면

지난해 말 정부가 발표한 올해 경제운용 방향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토지규제를 대폭 풀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토지규제를 제로 베이스에서 과감히 개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경제운용의 화두를 일자리 창출로 잡고, 이를 위해 기업의 투자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토지 관련 규제가 기업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전면적인 규제개혁 없이는 성장을 위한 원활한 토지공급의 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토지이용을 제한하는 법률의 수는 모두 1백12개나 된다. 또 이를 관리·운영하는 부처가 13곳으로 나뉘어 있다. 그만큼 토지이용이 까다롭고 토지를 개발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도 복잡할 수밖에 없다. 경제운용 방향에 따르면 앞으로 토지규제는 국토종합계획→광역도시계획→도시계획(도시기본계획·도시관리계획)의 3단계로 일원화된다. 또 건설교통부 장관의 도시기본계획 승인 권한 등 토지규제 관련 권한이 지방으로 대폭 이양될 예정이다.
정부는 특히 수도권 입지 제한, 농지전용 제한 등 그동안 기업들이 지적한 규제를 과감히 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와 함께 대도시권 개발제한구역 가운데 보전이 필요없는 부분은 조속히 해제해 개발 용도로 활용할 방침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부의 의욕은 좋지만 법 체제 정비의 어려움과 환경단체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토지규제 완화가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란 지적도 많다.
중복 규제=지난해 국토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땅은 필지당 평균 5.7개의 지역·지구로 지정돼 있다. 온갖 명목의 규제가 중첩돼 있다는 얘기다. 1백12개 법률에서 지정·관리하고 있는 지역·지구는 총 3백15개로 국토계획법에 의한 용도지역·용도지구·용도구역이 69개이고, 개별법에 의해 지정되는 개별구역은 2백46개에 이른다.

특히 수도권의 땅은 대부분 여러 가지 규제 대상으로 중복 지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집중 억제를 위한 규제에다 군사시설 보호, 수자원 보호 등의 명목으로 규제가 겹쳐 농사를 짓는 경우를 빼면 다른 용도로 토지를 이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원칙 없는 규제=토지이용 규제 가운데 법률로 규제 대상의 범위를 명시하거나 규제 대상을 지정하는 원칙과 기준이 있는 경우는 전체의 44%에 불과하다. 토지가 특정한 지역이나 지구로 지정되면 토지이용에 제약을 받게 되고 이는 토지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져 소유자는 재산상의 손실을 본다. 이 때문에 땅의 이용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이고 재산상 손실을 본 토지소유자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규제가 많다 보니 심지어 토지소유자가 자기 땅이 어떤 지역이나 지구로 지정돼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규제 내용이 복잡한 데다 다양한 예외 규정을 두고 있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또 지적고시가 제대로 돼있지 않아 규제 내용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현재는 토지이용계획 확인서가 규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만 여기에 포함되는 규제는 전체 3백15가지 가운데 도시관리계획·군사시설·농지·산림 등 10개 분야 33개에 불과하다. 또 일부 지역지구는 왜 그런 행위규제를 하는지 목적이 뚜렷하지 않거나 개발과 보전처럼 상반되는 내용으로 동시에 지정된 곳도 있다.
합리성 및 투명성 높여야=국토연구원 정희남 연구위원은 "우선 토지이용을 왜 규제하는지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규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기준과 원칙을 마련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위원은 또 "비슷한 규제는 통폐합하고, 개별법에 의한 규제를 국토계획법으로 흡수해 토지 규제를 단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정낙형 도시국장은 "우선 토지에 대한 규제 내용이 무엇인지 소유자가 알기 쉽도록 지적고시를 하는 등 규제의 투명화부터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상반기 중 관계 부처, 전문가 등을 중심으로 '토지규제개혁 로드맵'을 마련할 예정이다.

신혜경 전문기자 hk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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