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국민 절반 이상 ‘기업인 존경 안해’

자유기업원 / 2005-11-11 / 조회: 7,387       한경비지니스, 20-21면

기업에 대한 적대적 가치관을 뜻하는 반기업정서는 왜, 언제부터 형성된 것인가. 이 물음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공식적인 연구나 뚜렷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까닭이다.

다만 재계와 학자들은 70년대 개발 지상주의 정책 이후 30여년 동안 굵직한 경제 관련 사건이 누적되면서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반감이 조성됐다는 데 입을 모으고 있다. 또 노동운동과 소액주주운동, 재벌개혁 등의 목소리가 높아진데다 부당거래와 분식회계, 총수 중심의 경영이 사회문제화되면서 반기업정서가 심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한국의 반기업정서는 중소기업이나 공기업이 아닌 ‘총수가 있는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는 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인 ‘반부자정서’로 이어져 ‘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의 확대가 우려되고 있기도 하다.

▷ 반기업정서 실태 = 반기업정서는 각종 조사에서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 전경련이 지난해 12월 8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의 39%가 기업과 기업인에 대해 ‘호감이 가지 않는 편’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대기업과 기업 오너에 대해서는 각각 42.6%와 62.2%가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교수, 기자, NGO 등 오피니언리더의 경우 반감이 좀더 심해 각각 44.7%와 68.7%가 기업과 기업인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눈에 띄는 것은 부자에 대한 호감도. 일반 국민의 67.4%, 오피니언리더의 73.3%가 부자에 대해 기업오너보다 더 큰 ‘반감’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보다 앞선 2003년 7월 대한상의가 일반 국민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기업에 대해 60%, 기업인에 대해 67%가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현장의 경영자들이 체감하는 반기업정서는 더욱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2001년 다국적 컨설팅회사 액센추어가 세계의 반기업정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최고경영자 70%가 ‘국민들 사이에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있다’고 응답, 조사 대상 22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 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한국의 반기업정서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일련의 조사결과는 기업을 보는 국민이나 경영 일선의 기업인 모두 ‘반기업정서가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그 강도가 약해지면서 대신 ‘반부자정서’가 강해지는 추세다. 박병진 전경련 사회협력실 차장은 “2004년 하반기의 조사에선 전년에 비해 대기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하지만 기업 오너에 대한 인식이 좀더 악화되고 부자에 대한 막연한 반감도 강해지고 있어, 반기업정서가 부자 전체에 대한 적대감으로 바뀌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 반기업정서의 원인 = 반기업정서의 원인으로 가장 첫손에 꼽히는 것은 정경유착. 기업이 성장한 것은 기업의 경쟁력 덕분이 아니라 정부가 뒤를 봐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발 일변도의 정책 기조하에서 정경유착은 기업의 선택 문제가 아니었다”면서 “정치권과의 친밀도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결정됐고, 기본적인 산업정책 역시 피킹 위너스(picking winnersㆍ정부의 사업자 지정 및 지원, 또는 정부 주도의 투자조정)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또 박양균 자유기업원 팀장은 “개발 지상주의 시기에 정경유착과 특혜가 있었다 해도 기업의 성장은 순전히 경영과 경쟁력의 문제”라면서 “70~80년대 기업 순위와 지금의 순위가 확연히 다른 것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고 밝혔다.

정부의 과시성 정책 관행도 자주 거론되는 반기업정서의 원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잘못을 들춰내 기업에 책임을 전가하는 관행이 국민들로 하여금 부정적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두환 대통령의 경우 기업의 부의 축적 과정 자체를 불법으로 간주, 강제로 기업의 인수합병 및 재산 국고 환수를 단행한 바 있다. 김영삼 대통령 역시 기업 정책에 깊숙이 개입해 업종 전문화, 대기업 경제구조 개혁 등을 추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대기업의 불투명한 경영구조와 차입에 의한 과도한 사업확장이 경제위기를 불러왔다고 보고 구조개혁을 추진한 바 있다.

IMF 위기가 기업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기업 구조 개혁과도 맞물려, IMF 위기에 대한 대기업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업을 위한 변명>에서 많은 연구자의 분석을 들어 “IMF 위기는 잘못된 국가 경제정책과 후진국형 금융제도, 관료주의, 반기업 정책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았다.

근본적으로는 기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반기업정서를 불러왔다는 의견도 있다.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막연한 인식이 그것이다. 또 기업의 목표가 이윤창출이 아니라 종업원 복지, 사회봉사, 환경보호여야 한다는 시각이 적잖은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중고생 1,275명을 대상으로 경제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0%가 ‘기업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로 ‘사회기여’를 꼽았다. 반면 ‘이윤획득’은 11.8%에 불과했다. 조동근 교수는 “경제 교과서조차 기업의 이윤은 사회에 먼저 환원해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면서 “교과서에 반하는 기업은 결국 나쁜 기업으로 인식돼 굴절된 기업관을 형성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전통적인 ‘사농공상’ 관념 또한 기업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부추기는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하지만 예로부터 상인을 천시하지 않았던 도시국가들은 자유와 번영을 누렸다”면서 인식전환을 촉구한 바 있다.

한편 일반 국민들은 반기업정서의 원인을 다소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의 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55%는 반기업정서가 ‘기업 자체의 문제’라고 보았다. 기업 외부의 문제 중에서는 ‘정치권의 정치자금 요구’ ‘되풀이되는 기업인에 대한 사정’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문제 누적’ 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기업인들은 적대적 노사관계, 비판적 언론기자, 규제적 정부정책 등을 반기업정서의 요인으로 꼽아 대조를 이뤘다.

▷ NGO의 시각 = 소액주주운동, 재벌개혁운동 등으로 재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NGO측은 반기업정서에 대해 의견이 확연히 다르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지난해 5월 ‘반기업정서의 원인은 개혁을 거부하는 재벌에 있다’는 요지의 발표문을 통해 “재계는 경기회복기에 개혁의지를 실천한 적이 없었다. 경기가 좋을 때는 회복세를 망치면 안된다는 논리로, 경기가 나쁠 때는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로 개혁에 대한 요구를 언제나 묵살해 왔다. 재계는 이른바 ‘반기업정서’의 원인이 개혁을 거부하는 스스로의 수구적 태도에 있음을 자각하고, 재벌 총수 감싸기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도 ‘반기업정서는 없다’는 기고문을 통해 “기업가, 경영자, 노동자, 주주, 소비자, 그리고 국민들은 기업을 삶의 터전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다”고 전제하고 “국민들을 반기업적으로 매도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반문하고 싶다. 회사 재산을 빼돌려 자식에게 넘겨주고, 분식회계를 해서 국민과 투자자를 속이고, 정경유착으로 특혜를 받고, 비자금을 만들어 우리 사회를 부패시키고, 불법을 저지르고 외국 도피행각을 벌이는 그런 기업인마저도 사랑해 달라는 말인가”라고 주장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반기업정서의 뿌리가 재계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다고 보는 시각 자체가 문제”라고 밝히면서 “최근 삼성을 둘러싸고 다시 촉발된 반기업정서 논란의 해법은 재계가 쥐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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