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잠수함 사업계획' 홈페이지 게재, 원자력 추진 잠수함 의혹 불러 일으켜
한국이 향후 '원자력(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 보유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새해 벽두부터 논란이 일고 있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논란은 지난 1일 출범한 방위사업청이 4일 자체 홈페이지에 사업내용을 소개하면서 2010년부터 2022년까지 모두 3조 744억 원을 들여 3척의 잠수함을 도입하는 차기 잠수함 사업(SSX)을 벌인다고 공개함으로서 불거졌다.
방위사업청은 결국, 1척 당 1조원을 상회하는 잠수함은 4000톤급 이상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론이 제기되자 해당 홈페이지에서 관련 글을 일제히 삭제했다. 이어 방위사업청은 5일 긴급 브리핑을 갖고 "실무자의 단순한 실수로 인해 관련 글이 홈페이지에 게재됐다"면서 "원자력 추진 잠수함 추진설은 전혀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밝혔다.
계속되는 국가 기밀사항 유출 논란 빚어
군 당국은 차기 잠수함 개발을 목표로 현재 개념 연구를 하고 있으나 추진 방식과 그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SSX는 현재 보유중인 209급 잠수함(KSS-I)과 2010년 전략화 목표로 현대중공업이 건조중인 214급 잠수함 사업(KSS-II)을 잇는 KSS-III(3,000톤급, 디젤동력)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보안이 생명인 무기도입 사업의 추진계획을, 그것도 가장 은밀해야 할 잠수함 관련 사업 내용을 홈페이지에 띄운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면서 "방위사업청이 더 이상 황당한 보안유출 사고에 휘말리지 않도록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군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이 최초로 폭로된 것은 지난 2004년 국내 모 신문이 보도한 '한국, 핵 추진 잠수함 개발키로'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한국이 4000톤급 원자력 추진 잠수함 '수 척'을 2012년 이후 실전 배치하는 방안을 비밀리에 적극 검토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이 기사는 국방부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이라는 것을 폭로함으로서 국가 기밀사항 유출 논란을 빚었다.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찬반 논란
현재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전략적 효용에 비해 잃는 것이 많다는 것과 현실적으로 핵확산금지협약(NPT)하에서 이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한국의 원자력 추진 잠수함 계획을 동북아 유일의 핵 잠수함 보유국가인 중국이 한반도 균형이 깨진다는 이유로 강력 저지하고 나서는 것은 물론 미국, 일본 등도 이를 좌시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특히 현재까지 군사목적의 원자력 시설이나 장비는 IAEA의 감시를 받지 않게 돼 있다. 따라서 한국형 원자력 추진 잠수함 건조는 핵무장을 하겠다는 의도로 비춰질 수도 있다. 또 핵을 공급할 수 있는 국가들은 국내법상 군사용도의 핵 물질 판매를 금지하고 있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구입하는 것도 난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춘근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우리가 아무리 방위 목적에서 군사력을 장비 한다고 하더라도 이웃 나라들이 우리들의 진심을 그대로 해석해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개발 및 장비 결정은 한반도 주변의 전략 환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후에 이루어져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원자력 잠수함 보유는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2020년, 동북아 해역 치열한 잠수함 각축장 될 것
그러나 장기적으로 중국*일본*북한 등 주변국들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하고 해양 국익 보호를 위해 한국도 지금부터 잠수함 전력 증강예산을 점진적으로 확보해나가야 한다고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군사전문가들은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국들의 잠수함 전력 증강이 최근 들어 본격화되면서 오는 2020년쯤에는 동북아 해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잠수한 각축장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총 9척의 1200톤급 잠수함을 보유한 한국 해군의 잠수함 전력은 척수로는 중국, 러시아, 북한, 일본 등 주변국의 절반에서 1/9 수준이며 총 톤 수에서는 1/4에서 무려 1/44에 불과하다.)
한반도 전 해역이 작전 반경인 중국 잠수함은 공해상에 자주 출몰하고 있어 군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잠수함 분야에서 중국은 1000t급 이상의 잠수함 69척을 보유한 아시아 최대의 잠수함 강국으로, 지난 2002년 순항미사일을 장착한 최신형 공격용 원자력 잠수함 ‘타입(Type) 093급’을 진수시켰다.
일례로 중국의 한(漢)급 원자력 잠수함은 지난 2004년 11월 일본 최남단 오키나와(沖繩)현 사키시마(先島)제도의 일본 영해를 세 시간 동안 휘저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는 비상이 걸렸다. 원자력 잠수함이 사전에 아무 통보 없이 영해에 들어왔다면 이는 공격이나 다름없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결국 일주일 뒤 중국이 일본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이 잠수함 함대의 규모와 전력, 활동범위 등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사건이 계속 발생할 게 확실시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잠수함은 69척으로 2010년까지 20척(이 가운데 3척이 원자력 추진)이 추가될 예정으로 여기에는 최첨단 장비를 갖춘 스텔스형 잠수함도 포함되어 있다.
北, 총 61척 잠수함 보유...로미오급 잠수함 자체 건조 능력 보유
북한은 한국전쟁이후 해군 전력을 복구하면서 60년대 초 구(舊)소련으로부터 1800톤 대의 위스키급 잠수함 4척을 도입, 운용하기 시작했다. 이어 73년부터 75년까지 중국으로부터 1300톤 대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도입하고 건조기술까지 이전 받아 76년부터 매년 1~2척의 로미오급 잠수함을 자체 건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
북한의 이 같은 잠수함 보유와 세력 확장은 당시만해도 수중세력이 전무했던 우리 해군에 대단히 위협이 됐고 따라서 해군은 북한의 해상 도발을 억제할 수 있는 대응 전력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기도 했다. 실제로 美 해군정보부(ONI)는 '세계로 확대되는 잠수함의 도전'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세계4위의 잠수함대국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현재 총 61척의 디젤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 잠수함에 대한 북한의 운용능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6년 강릉 앞 바다에 좌초한 북한의 간첩침투용 잠수함을 조사한 美 7함대사령관 로버트 내터 중장은 지난 1월14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스파이 잠수함을 조사하면서 북한이 매우 믿을 만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2년 전부터 원자력 잠수함 훈련 재개
한때 120여 척의 잠수함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던 러시아는 극심한 경제난으로 이빨 빠진 호랑이신세로 전락했지만 여전히 군사 대국의 저력을 유지하며 지역 영향력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8월 사상 첫 합동 군사훈련을 벌여 미국을 긴장시킨 뒤 지난 10월 인도와 사상 최대 규모의 군사 훈련을 실시해 주변국을 긴장시켰다.
이 같은 러시아의 대규모 군사훈련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한반도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결과를 보고 있다. 동시에 한반도와 대만에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출동할 미국의 항공모함을 겨냥했다는 분석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사령부를 두고 한반도 주변 해역을 관할하고 있는 태평양 함대에는 660척의 전함을 이끌며 한반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지난 91년 37번에 걸쳐 원자력 잠수함 훈련을 실시한 후 훈련횟수를 점점 줄였다가 2년 전부터 원자력 잠수함 훈련을 재개한 상태다.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원자력 잠수함을 보유한 국가인 러시아는 발틱, 북양, 흑해, 태평양 등 4개 함대를 편성해 막강한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다.
日, 전체 잠수함 전력의 70% 동해에 배치
미국과 함께 한국의 우방국가인 일본은 현대적인 잠수함을 독자적으로 설계해 건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일본은 전체 잠수함 전력의 70% 가량을 동해에 배치하고 있는데 경제력을 바탕으로 잠수함 전력 증강 경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인 잠수함 대국으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일본의 해상 자위대는 비핵(非核) 3원칙 때문에 원자력 잠수함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잠수함은 만들지도 보유할 수도 없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통상적인 잠수함 사용연한을 30년을 16년으로 규정해 사용 연한을 넘긴 잠수함을 밀봉, 창고로 퇴역시킨 뒤 새로운 잠수함을 건조해왔다.
이는 유사시가 퇴역 잠수함을 꺼내 재취역시켜 순식간에 32척으로 전력을 늘리겠다는 의도다. 평시에 잠수함을 30척 이상 보유한 나라는 미국(74척) 러시아(50척) 중국(69척)뿐이므로, 32척으로 계산할 경우 일본의 평시 잠수함 전력은 세계 4위가 된다.
16년 수명으로 16척을 운영하다 보니 해상자위대는 매년 한 척씩 새 잠수함을 발주할 수밖에 없다. 해상자위대가 사용할 잠수함은 미쓰비시(三菱)와 가와사키(川崎)중공업에서 한 척씩 교대로 수주해 2년에 걸쳐 건조하고 있다. 현재 일본이 보유한 오야시오급(2750톤) 잠수함은 독일이 내놓은 212급 잠수함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재래식 잠수함으로 알려져 있다.
방위사업청, 보안사항 너무 허술하게 다뤄
현재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핵 원자력 추진 잠수함 논란으로 주변국들이 한국의 관련연구에 촉각을 세우게 됐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외국 정보기관과 전문가들이 이미 '삼엄한 경계태세'에 돌입했으리라는 것이다.
방위사업청은 이와 관련, 긴급 해명을 통해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 원자력 추진 잠수함 개발설은 '국방개혁 2020'안 등을 놓고 안 그래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일본, 중국 등의 주변국에 대해 불필요한 경계심만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의 모 군사전문지 발행인은 "국방부가 실제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 보유계획을 검토했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7조원대의 막대한 예산을 주무르는 방위사업청이 보안 사항을 너무 허술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진정으로 원자력 잠수함을 원한다면 일본처럼 '영리한 우회로'를 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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