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한국 경제와 관련해 온통 우울한 얘기들만 들려옵니다. 분명 긍정적인 부분들도 있을 텐데, 부정적인 부분에 온통 가려져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A> 기업체를 돌아다니다 보면 정말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현대중공업의 세계 조선시장 점유율은 25% 선이지만 선박시장 점유율은 무려 35%나 됩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배 세 척 중 한 척이 현대중공업이 만든 배란 얘기지요. 대한항공은 이미 2004년부터 화물운송부문에서 루프트한자를 누르고 세계 1위로 올라섰고요, 삼성전자 반도체는 지금까지도 대단했지만 앞날은 더 밝아 보입니다.
Q2> 전반적으로 기업들 체질이 한층 굳건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기업 체질은 훨씬 굳건해졌음에도 왜 경제는 자꾸 어려워지고 있는 걸까요.
A> 지금과 같은 기업 체질이라면 주가가 현재보다 훨씬 높아야 합니다. 90년대에 1000이던 주가가 지금 1300인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치예요. 이처럼 기업 체질에 걸맞은 주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정부가 기업을 제대로 뒷받침해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기업을 도와주는 정부, 기업에 훼방 놓는 정부, 이도저도 아닌 정부, 그 중 기업에 훼방 놓는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다’, 뭐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Q3> 기업에 훼방 놓는 정부라, 의미가 깊은 얘기인 듯싶습니다.
A> 우리나라 5인 이상 기업 수는 50만개입니다. 우리 인구의 2배인 일본은 200만개가 넘고, 6배인 미국은 360만개에 달합니다. 우리는 일본, 미국에 비해 기업 수가 월등히 적은 거지요. 기업 수를 더 늘릴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친기업 정책을 펴줘야 합니다. 세계 최고 경쟁력 국가임을 자랑하는 스위스는 “스위스의 국가 경쟁력은 곧 기업 경쟁력이다. 기업을 키우는 게 우리 목표”라고 공공연히 얘기합니다. 그 결과 700만 인구를 지닌 스위스에 세계적인 대기업이 무려 12개나 됩니다. 4700만 인구의 대한민국에도 세계적인 기업이 12개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거지요. 스위스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적어도 80개는 돼야 합니다. 얼마나 갈 길이 멉니까. 멀리 스위스까지 언급하지 말고 국내 상황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겁니까. 2300만명의 북한 동포를 먹여 살릴 문제가 눈앞에 닥치는데 그들까지 흡수하려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기업을 더 키워야 합니다. 그런데 온갖 규제로 정부가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으니 큰 문제라는 거지요.
Q4> 결국 친기업 정책을 펴고 규제를 풀라,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겠군요.
A> 가장 대표적인 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자총액제한제도입니다. 모든 기업에게 ‘출총제’라는 동일한 잣대를 갖다 대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입니다. 세계 1등 기업은 그 기업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1등하는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한국에 일자리도 많이 만들고 국민을 잘 살게 하고 한국 경제를 좋게 하는 것이지,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는 규정을 정하는 게 아닙니다.
Q5>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총제의 핵심은 ‘모든 출자를 막자는 게 아니라, 지배구조 왜곡을 가져오는 동그라미형 순환출자를 막자’는 것 아닙니까. 이조차도 필요가 없다는 얘긴가요?
A> 세계 경제는 말그대로 전쟁입니다. 이렇게 전쟁 같은 글로벌 시장에서 1위를 하고 있다면 그게 바로 정답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면 잭 니클라우스도, 타이거 우즈도 모두 정답입니다. 니클라우스식은 틀렸고, 우즈식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지요. 지분 4%를 가지고 40% 영향력을 행사하니 안 된다고 그러는데, 그래서 다 해체시켜 놓으면 다음엔 어떻게 할 겁니까. 엑슨모빌사 1년 매출액이 3000억달러예요. 우리나라 경제 전체 규모 8000억달러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10대 그룹 계열사를 다 합쳐도 GE 계열사 수에 못 미치고요. 더 키워도 모자랄 판에 더 줄이자는 게 말이 됩니까. 이런 상황에서 FTA를 한다고 문 열어놓으면 한국 기업들 다 망하거나, 외국에 팔려나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Q6> 요즘 ‘스웨덴식 복지’에 대해서도 왈가왈부 얘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스웨덴은 그래도 독일보다는 나은 경우입니다. 독일이 고(高)복지에 노동시장은 경직된 국가라면, 스웨덴은 고복지이긴 해도 노동시장은 유연한 국가거든요. 그런 스웨덴이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복지 개념이 ‘일 안하는 사람도 최저생활을보호해 준다’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할 수 있어요. 반면 독일은 아직까지 방향을 틀지 못하고 있다 보니, 유럽 최고의 환자국가가 돼버렸습니다.
소득 규모가 두 국가에 훨씬 못 미치는 한국이 이들 방식을 따라가는 것은 소위 ‘복지의 과소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능력을 상실한 사람만이 아닌 멀쩡한 사람에게도 최저 생활을 보호해 주는 식의 유럽식 고복지는 아직 성장 단계인 우리 경제 형편과 맞지 않다는 거지요. 한국적 상황에 맞는 고복지는 ‘많이 걷어서 골고루 분배한다’가 아니라 ‘기회, 특히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
Q7>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진정한 개념의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일단 경제 회생이 선행돼야 하겠군요.
A> 당연하지요. 브라질에는 ‘길거리 아이들’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부모도 없고 집도 없고 보호기관도 없어 그냥 길에서 사는 아이들이지요. 이들이 사회문제화 되자 정부에서 경찰에게 지시해 이들을 소탕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가 망가지면 사회 구성원들 생활이 이렇게 비참해집니다.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Q8> 그럼 우리 경제가 턴어라운드 희망을 갖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A> 물론입니다. 골드만삭스가 2025년 한국이 세계 3대 경제대국이 될 거라 예측했 듯, 우리 경제는 엄청난 저력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물꼬를 틀어준다면 충분히 회생할 수 있습니다.
Q9> 제대로 된 방향이라는 게 도대체 무얼 얘기하는 것인지요.
A> 일단 비전이 있어야지요. ‘나라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해 전 국민을 아울러 한 길로 갈 수 있게 만드는 비전이요. 미국은 1700년대 이래 ‘생명, 자유, 행복’이라는 비전을 갖고 꾸준히 이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게 지금의 미국을 만든 원동력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 것인가. 제 나름의 생각은 일단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자’라는 겁니다. 물가를 감안했을 때 현재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달러 정도 됩니다. OECD 평균은 3만달러, 미국은 4만달러, 세계 1위 룩셈부르크는 6만달러예요. 1단계로 OEDC 평균을 따라잡고, 그 다음 미국, 그 다음 룩셈부르크를 따라잡아야 합니다. 비전이 세워졌으면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올바른 정책들이 뒷받침돼야겠지요. 위에서 강조한 대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대담 : 노성호 부장 / 정리: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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