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문인 복거일씨는 14일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광화문문화포럼(회장 남시욱) 주최 초청강연을 그렇게 시작했다. 주제는 '한국 문화계의 좌편향 실상'. 강연 내용은 지난해 12월 자신이 대표로 있는 문화미래포럼에서 주최한 심포지엄 '자유주의, 전체주의, 그리고 예술'에서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전 배포한 강연 원고와 실제 강연에서 말한 발언을 종합해 요지를 정리하면, "한국 예술가들은 대부분 좌파적 성향을 보인다" "이념적으로는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호의적이며, 정치적으로는 우리 사회에 대해선 호되게 비판하지만 북한 체제에 대해선 너그럽다" "특히 북한 주민들의 인권 문제에 대해 '침묵의 결탁'을 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우리 사회의 안정과 번영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이 같은 좌편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햇볕정책'의 문제점을 널리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창동의 단편소설 <소지>는 역사왜곡의 전형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먼저 좌파성향 문인들에 의한 '역사왜곡'을 개탄하면서 소설가 이창동(전 문화부장관)씨의 단편소설 <소지>를 그 전형적인 예로 지목했다.
"작품의 줄거리는 좌익으로 활동한 사람이 전쟁이 일어나자 정당한 절차 없이 처형된다는 것이다. 그의 전력은 그가 '보도연맹'에 가입했다는 진술에서만 알 수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보도연맹'은 암호와 같을 터이고, 자연히 독자들은 선량한 시민이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부당하게 처형됐다고 해석할 것이다."
그는 "그렇지만 그 작품에는 그 소설이 시대적 배경이 되고 있는 좌익에 의한 '대구폭동'의 잔인성도, 그것에 대한 우익의 필연적 반응도 들어있지 않다"면서 "이런 역사적 왜곡을 지적한 이가 없었"던 문단의 현실 역시 좌편향으로 비판했다.
그는 또 자신이 80년대 좌파적 문화예술계에서 '냉대'를 당했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당시 젊은 작가들과 좌담회를 하면 6ㆍ25전쟁 대신 '조국해방전쟁'이란 표현을 써야 했다. 그래야 좌담회에 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지적하면 냉대를 받고,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풍토였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작가들은 대부분 개인들의 삶을, 특히 개인들의 마음을 다루기 때문에 체제에 대해 유난히 비우호적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 뒤 덧붙여 그 이유의 하나를 '빈곤한 작가들의 삶'에서 찾기도 했다.
"작가들 대부분 사회적 경험이 없고, 사회적 빈곤층을 이루고 있다. 저도 이름이 알려진 작가지만 여전히 빈곤하다. 빈곤하니까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또 경제적ㆍ정치적 기구에 들어가 사회를 제대로 바라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사회를 이해할 수 없는 괴물로 생각한다. 이해하지 못하니까 두려워하고, 두려우니까 파괴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작가 역시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결정한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결정론'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그는 조정래씨의 <태백산맥>도 역사 왜곡의 한 사례로 비판했는데, 100쇄 이상 출간함으로써 세속적인 의미에서 '돈방석'에 앉은 그 작가가 한결같은 신념으로 글을 써내고 있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화정책은 늘 실패한다?
그는 또한 "뮤지컬 <요덕스토리>(북한 수용소 실태를 고발했다는 작품)가 탈북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면서 남북 민족작가대회 등을 열면서도 정작 북한의 인권 문제 등에 대해선 조용한 문화예술계에 대해 '침묵의 결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이어 그 비판의 화살을 '햇볕정책'으로 돌렸다.
그는 우선 "햇볕정책은 유화정책"인데 "유화정책은 늘 실패한다"고 단정했다. 왜? "그것이 상대의 공격성을 부추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자신의 공격적 태도가 이익을 얻어내는데, 왜 공격적 태도를 버리겠느냐"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큰 지원과 양보를 해도, 북한 정권은 우리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것이고, 겉으로 무슨 얘기를 해도, 속으로는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려고 애쓸 것이다. 실제로 북한 정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남한의 적화뿐이다."
그는 강연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에 "어느 사회에서나 가장 문제되는 건 무임승차자들"이라면서 행동에 소극적인(?) 보수인사들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목소리로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 우리 사회에는 좌익보다 우익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하려면 호응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차하면 미국으로 도망갈 수 있는 패스포트를 장만해놓았기 때문"에 "누군가 나가겠지 하면서 해외로 골프 치러 간다"고 한탄했다.
이 대목에서 그는 "특히 가장 큰 무임승차자"인 재벌그룹에 대한 그동안의 불만도 털어놓았다.
"나 같은 우익 논객들의 행동이 그들에게 훨씬 많은 이익이 될 텐데, 한둘을 빼놓고는 이 일에 전혀 도움을 안준다. 세무조사를 핑계대면서 우리 온라인 사이트에 배너 광고 하나 안준다. 오히려 보험용으로 좌파사이트엔 배너 광고를 줘서 그곳에는 배너 광고가 넘쳐난다. 자기 살을 뜯어먹을 늑대는 키우면서, '늑대 온다'고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은 당장 이익이 없다고 외면하는 꼴이다."
한편 그는 강연 전 날 한 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선 "좌파 정권이 거푸 들어서면서 모든 공적 기구들은 사회주의 이념을 퍼뜨리는 통로가 됐"다고 주장했고, 또 같은 날 자유기업원에 기고한 글에선 교복파동의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공동구매안에 대해 "소비자들인 학생들의 판단을 무시하는 사회주의적 처방을 대중 매체들이 한결같이 추천한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사회주의의 위세와 해독이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의 눈에는 우리 사회가 도처에 '사회주의'란 늑대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으로 비치는 듯싶다. 이날 강연의 사회자는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용기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소개했다. 그 '용기'가 두렵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대부분은 그가 마지막 예로 든 '늑대와 양치기소년'의 우화가 어떻게 끝나는지를 알고 있다.
천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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