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던 대북정책은 김정일 정권 강화에 악용되면서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남북화해협력은 정권을 초월한 대안 없는 대세임에도 남남갈등을 지속하는 건 냉전시대 패러다임으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대북포용정책이 시행된지 10년. 김정일 독재체제를 완화하고 과거 남한의 6월 항쟁과 같은 대중적 민주화 열기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북한의 낙후된 경제를 복원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많이 사라졌다.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과 ‘불바다’ 등 노골적인 남한 보수세력 견제 및 선군정치 찬양은 변합없는 북한의 태도를 재확인시켰다.
이같은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한 찬반 양론은 팽팽히 맞서고 있다.
보수진영과 탈북자를 중심으로 한 북한인권관련단체들은 악화된 인권상황과 군중심정치 강화 등을 들어 대북정책 실효성에 강한 의구심을 제기하며 전면 수정을 요구하는 반면 진보단체 등에서는 북한의 강경책은 미국의 압박때문이라며 대북정책의 폭을 넓힐 것을 주장하고 있다.
4일 서울 중구 정동 배재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북한전략포럼에서도 이같은 찬반양론이 엇갈렸다.
‘한국정부의 대북지원정책, 북 개혁·개방을 이끌었나’를 주제로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이사장 유세희)가 주최한 이날 토론회는 대북정책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우려와 기대감을 보여준 자리였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선군정치 강화와 인권상황 악화라는 점에서는 견해를 같이했으나 북한의 변화를 유인하는 추진력과 원동력에 있어서는 상이한 관점을 드러냈다.
고려대 유호열 교수는 “대북정책은 김정일 정권 강화에 악용되면서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비판적 입장을 나타낸 데 반해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남북화해협력은 정권을 초월한 대안 없는 대세”라는 점을 강조, 대북경협 확대 등을 주장했다.
유호열 “선군정치 강화에 악용된 대북포용정책”
첫번째 발제자로 나선 유 교수는 “대북지원사업은 지난 수년간 꾸준히 추진돼 상당한 성과를 보인 듯 하지만 지원 원칙이 훼손되고 파행적으로 추진됨으로써 막대한 혈세만 낭비한 채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유 교수는 “지난 10년 간의 대북정책은 봉쇄나 선의의 무관심과는 달리 적극적인 포용정책이 회생불능의 북한 경제와 강력한 선군체제를 긍정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발했다”며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치를 근거로 한 조건없는 무원칙 지원은 오히려 악용됐을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포용정책을 ‘외화내빈’으로 규정한 뒤 “지나친 낙관주의와 배려는 북한 당국과 인민들에게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을 왜곡 인식시켜주었을 뿐 아니라 북한 지도부의 냉혹한 체제수호 본능을 자극하여 핵실험과 같은 비합리적 오판을 합리화시켰고 국제사회의 압력을 희석했다”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더욱이 대북포용정책은 물고기를 잡는 법 대신 물고기만을 주는 방식이라 북한 지도부가 체제 개방과 정책 개혁을 위한 근본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그릇된 생각을 심어줬다”면서 “결국 남한의 자애로운 지원정책은 무능함으로 귀결됐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특히 북한이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무기를 개발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대북포용정책이 악용됐음을 문제삼았다. 즉 평화공존, 민족번영을 기치로 내건 대북정책은 국제사회의 압력과 제재에 의해 제한된 자원과 에너지로 군비확충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던 북한에게 부정적 방향으로 회생할 기회를 줬다는 것.
더욱이 선군정치에 의한 군사력을 강화함으로써 개혁·개방을 주도할 엘리트들의 진출이 억제되고 공세적 대남정책으로 전환되어 남남갈등을 유발시킨 배경으로 작용했던 만큼 고비용저효율의 교유협력과 대북지원사업은 건전하고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북한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이 아니었다는 게 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북한은 겉으로 보기엔 핵불능화와 북미개선 등 모양새상의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며 “북한은 선군정치와 대량살상무기를 통한 협박전술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므로 향후 대북정책은 안보적 관점에서 북핵문제의 해결과 전략적으로 연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개방의 체제 전환과정에서 경제난 타개를 위해 불가피하게 시장경제적 요소의 도입이 이뤄졌던 점을 감안할 때 일부 좌파단체들이 주장하는 등가적 상호주의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면서 “시장성과 경제성을 확보한 쌍방적 교류협력을 제도화하는 한편 보다 많은 북한사람들이 사회교류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유환 “남북경협 어떤 난관 있더라도 지속해야”
반면 고 교수는 “남북 화해협력 정책은 정권을 초월한 대안 없는 대세”라며 남북경협 확대를 주장했다.
고 교수는 “남과 북이 연결돼야 동북아 시대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전제한 뒤 “대북포용정책이 동북아지역 평화와 번영정책으로 적용범위와 외연이 확장됐지만 핵문제해결 우선주의에 따른 남북관계 정체로 동북아 시대 구상의 현실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은 한반도 평화 증진과 남북한 공동번영 및 동북아 공동번영 추구라는 점에서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보다 외연을 넓혔다”며 “특히 상호신뢰주의와 호혜주의에 입각, 북한의 태도변화를 강조하고 국민적 합의와 공론형성에 주력하면서 대북정책을 국내정치에 활용하지 않은 점에서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자 협의체인 6자회담의 틀을 마련하는 등 한반도의 긴장고조를 막고 위기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성과가 있었다”면서 “남북대화의 정례화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함과 동시에 3대 경협사업 활성화로 남북경협이 제도화했던 것도 진전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 교류협력의 병행추진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론 남북관계의 진전이 핵문제에 발목잡힘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지난 4년여 남북관계가 현상유지에 머물렀다”며 “또 대북송금 특검수사와 친북사이트 차단, 무력증강 등 남한의 변화와 미국의 대북압박정책 등은 북한의 불신을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고 교수는 북한이 외부의 압박을 피하고 강경보수정권 출현을 막기 위해 ‘반보수대연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카드로 정상회담을 사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미국의 진정성 있는 태도와 우리 정부의 민족공존 의지가 북한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남북경협의 경우 북한 주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북한을 안정적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편입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지속해야 한다는 것.
그는 “햇볕정책, 대북포용정책, 평화번영정책 등을 둘러싸고 남남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냉전시대의 남북관계 패러다임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젠 남북공존공영의 시대에 맞게 반공국가라는 냉전시대 국가 이미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21세기적 국가정체성을 확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는 자유기업원 이춘근 부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고려대 유호열 교수, 동국대 고유환 교수, 데일리NK 손광주 편집국장등이 발제자로, 세종연구소 양운철 수석연구위원과 고려대 이신화 정치외교학장,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이 토론자로 각각 참석했다.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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