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국민여러분…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저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를 운영할 영광스러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며, 이 벅찬 소명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완수해 나갈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5년 전인 2003년 2월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제16대 대통령 취임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그는 한반도가 동북아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면서 특히 경제부문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각 분야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야 한다”면서 “시장과 제도를 세계기준에 맞게 공정하고 투명하게 개혁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 투자하고 싶은 나라로 만들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이어 “소득격차를 비롯한 계층간 격차를 좁히기 위해 교육과 세제 등의 개선을 강구하겠다”며 “노사화합과 협력의 문화를 이루도록 노사 여러분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노 대통령에게 신성한 한 표를 기꺼이 줬던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취임식을 지켜보면서 벅찬 감동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5년… 기대가 너무 컸었기 때문일까. 노정부 5년간 실적, 특히 경제성적표를 놓고 보면 참담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노 정부 5년(2003~2007년)동안 경제성장률은 평균 4.4%. 외환위기 여파로 집권 첫해(1998년) 성장률이 마이너스(―)6.9%로 곤두박질쳤었던 김대중 정부 5년 평균과 같고, 김영삼 정부(평균 7.1%)와 비교하면 2.7%포인트나 뚝 떨어졌다. 민간소비 증가율 역시 평균 6.9%(김영삼 정부) → 3.9%(김대중 정부) → 2.1%(노무현 정부)로 하향세다. 취임사에서 약속한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은 고사하고 성장세가 그만큼 훼손된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집권 첫해인 2003년 7839건이었던 기업규제가 2006년 8084건으로 오히려 증가했다.(자유기업원 보고서) 어디 그뿐인가. “투자하고 싶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설비투자 증가율은 8.6%(김영삼 정부) → 5.3%(김대중 정부) → 4.7%(노무현 정부)로 계속 내리막 길이다.
‘성장’을 희생해 ‘분배’만은 개선했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소득의 계층간 양극화나 소득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소득5분위 배율과 지니계수는 지난 5년간 단 한차례의 개선도 없이 계속 악화됐다.(통계청 ‘가계수지동향’) 서울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각종 부동산 대책을 남발했지만 집권 5년간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아파트값 상승률(81%)은 강북(39%)의 배에 달했다.
‘떠나는 이’를 향해 너무 야멸차게 대한다고 할 것 같아 무안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노 정부 5년 경제실적을 이처럼 복기(復棋)하는 이유는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될 ‘패착’을 경계하기 위해서다. 시장을 무시하는 비대한 정부가 몰고올 결과는 무엇인지, 앞서가는 자를 격려하기보다 발목을 잡는 한풀이식 평등정책의 결말이 어떤지 똑똑히 봐야 한다.
9일 후면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 많은 희망의 메시지가 선을 보이고, 미사여구도 적지않게 동원될 것이다. ‘친(親)시장·친기업’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전임 정부와는 많이 다를 것 같기는 하지만 지켜볼 일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메아리로 그칠지, 과감한 실천으로 이어질지…. 이명박 정부가 끝나는 5년 후에는 제발, 마음에서 우러나는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길 고대한다.
김병직 /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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