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A씨(35세)는 홀로 계신 부친의 사망으로 중소기업을 물려받았다. A씨가 물려받은 지분율은 50%로 비상장 주식가치는 35억원으로 평가됐다. A씨는 얼마나 상속세를 내야 할까?
공제내역에 따라 액수의 증감은 있겠지만 위와 같은 조건이면 최소 19억50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상속재산 공제액 최대 한도인 5억원을 제외하고 A씨가 물려받은 액수는 30억원이다. 상속재산이 30억원 이상이면 세율은 50%를 적용 받는다. 여기에 경영권 상속의 경우 지분이 50% 이상이면 가산세 30%가 또 붙는다.
이렇게 나온 금액만 19억5000만원이다. 여기에 회사의 경영권을 상속받음과 동시에 부속된 부동산이나 설비 등 자산을 취득하면서 다시 취득·등록세를 내야 한다. 부속된 자산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개 공장부지를 가진 중소기업의 경우 취득·등록세까지 합치면 20억원을 훌쩍 넘는다.
중소기업은 자산 규모가 수십억원 내지 많아야 100억~200억원으로 영세하다. 또한 특정 대주주가 기업을 소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상속인이 당장 현금이 없는 경우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공장이나 땅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해당 기업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일이 발생한다. 기업을 상속받기 위해 기업을 파는 아이러니가 생길 수밖에 없다.
공장부지든 기업이든 팔게 되면 자연히 일자리가 줄어든다. 상속세가 문제되는 것도 이 부분이다. 기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한 대주주에게 30%의 가산세를 물리고, 부동산이나 현금 자산을 상속하는 부자에게는 가산세가 없는 점도 문제다.
대기업으로 가면 상속세는 거의 ‘공포’ 수준에 이른다. 지난 4월 30일 기준으로 상장사 보유주식 시가총액이 3조1334억원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정직하게 상속세를 내고 정의선 기아차 사장에게 주식을 상속할 경우 상속세만 무려 2조367억원에 달한다. 자진신고시 10% 할인을 받는다 하더라도 1조7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각국 최고 세율 평균은 21% 불과
시가총액 2조1399억원인 이건희 전 삼성회장 역시 상속세만 1조원 이상 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중소기업을 비롯한 재계는 상속세 폐지 또는 개정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 4월 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를 초청한 가운데 열린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간담회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상속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서 자본이득세(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속세 폐지 논란에 불을 댕긴 이날 발표에서 손 회장은 “상속세는 미실현 이익에 과세하는 것으로,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아야 납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경영권 유지마저 위협받게 된다”며 “캐나다·호주·이탈리아 등이 이미 상속세를 폐지했고 미국도 폐지를 추진 중”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자유기업원도 거들고 나섰다. 지난 4월 22일 ‘상속세, 이래서 폐지해야 한다’는 리포트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가진 나라 중 하나”라며 “많은 경제학자가 의문을 제기해 왔던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소득세 최고 세율과 같은 35%로 낮추는 개정이라도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자유기업원은 글로벌프로퍼티가이드(GlobalProperty Guide.com)의 자료를 참고해 123개국을 조사한 결과, 58%인 71개국이 상속세가 없다고 밝혔다.
또 상속세가 있는 나라들의 최고 세율 평균은 21%에 불과하다면서 한국의 상속세율이 일본·대만·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50%)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경영권 상속시 가산세를 포함하면 65%로 단연 세계 최고라고 문제 삼았다.
상속세 폐지 또는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속세가 자본축적과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부자들의 소비를 부추김으로써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킨다고 주장한다.
또 열심히 벌고 저축해 재산을 모은 사람에게 높은 세금을 매기는 ‘부도덕한 세금’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 상속세 과세 대상자가 지극히 소수고, 조세 회피수단이 다양해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하고 있다.
실제 경제학자 중 상속세 폐지를 주장한 사람은 여럿 있다. 밀턴 프리드먼(197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의 상속세 폐지 주장에 버넌 스미스(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등 278명의 경제학자가 서명한 적도 있다.
대기업 상속 문제도 해결점 찾아야
경제학 교과서 『맨큐의 경제학』의 저자로 잘 알려진 하버드 대학의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교수도 상속세는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가장 큰 이유는 상속세가 사치스럽게 소비해 재산을 남기지 않은 사람에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저축해 재산을 계속 키운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속세 유지를 위한 논거도 만만치 않다. 전경련이나 자유기업원에서 상속세 폐지 국가로 거론하는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이탈리아·포르투갈·스웨덴 등은 소득세율이 매우 높아 상속세의 필요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스웨덴의 경우 상속세는 없지만 매년 자산의 1.5%(법인은 0.15%)를 부유세로 부과한다. 상속시점에서 세금을 걷는 것이 아니라 매년 일정 정도의 재산세를 걷는 것이다. 프랑스도 연간 소득의 0.55~1.80%에 해당하는 부유세가 부가된다. 독일 역시 최근 부유세를 부활키로 했다.
상속세 논쟁은 항상 뜨겁지만 쉽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만이라도 상속세 공포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가업 상속에 따른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가업 상속으로 인정될 경우 기본 공제가 30억원으로 늘어난다.
즉 상속받은 주식가치가 30억원을 넘지 않으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가업 상속에 따른 세금 감면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법안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가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상속하는 사람)이 해당 기업을 15년 이상 운영해야 하고, 운영기간의 80% 이상을 대표이사로 재직해야 한다. 아울러 최대주주로 상장기업은 40% 이상, 비상장기업은 5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해야 한다.
상속인(상속받는 사람)은 상속 개시일 현재 18세 이상이고 상속 개시일 2년 전부터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 재산도 전체 상속 재산이 아닌 ‘가업 상속 재산’으로 한정돼 있다. 즉 상속 재산 중 가업에 직접 사용되는 토지나 건축물, 기계장치 등 사업용 자산이나 가업에 해당하는 법인의 주식만 대상이 된다.
설령 가업 상속 공제가 이뤄졌더라도 상속인이 대표이사 등으로 종사하지 않거나 가업의 주된 업종을 변경하고 해당 가업을 1년 이상 휴업 또는 폐업할 경우, 가업용 자산의 100분의 20을 10년 이내 처분할 경우 원래대로 상속세를 내야 한다.
중소기업들은 급변하는 사업환경에서 가업 상속의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며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의 상속 문제도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의 소유지배 구조가 불안하고, 승계 때마다 총수가 감옥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북유럽의 공익재단형 지배방식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북유럽 기업들은 기업의 주식을 공익재단에 넘겨 재단을 통해 경영권을 승계하고, 재단으로 들어오는 주식 배당금은 공익적 용도로 쓰는 방식으로 안정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공익재단을 활용한 경영권 승계는 해당 기업의 주식 대다수(최소 50% 이상)를 한 가족이나 개인이 소유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 대기업 오너 일가의 지분은 적게는 1%에서 많게는 20%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점이 문제다. 수많은 소액주주가 자기 배당금을 포기하고 공익재단을 흔쾌히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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