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이명박정부 출범 3개월-경제, 방향 잡고도 제자리걸음

자유기업원 / 2008-05-24 / 조회: 4,643       동아일보, A5면

대외악재 - 설익은 정책 조율에 ‘MB 효과’ 체감 못해

《“전반적으로 기업들의 분위기가 좋아졌다. 당장 손에 쥔 것은 없지만 적어도 정부에 대해 신경 쓸 일은 없어졌다. 지난 정부에서는 투자든 뭐든 일을 할 때 일단 ‘정부는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신경이 쓰였던 게 사실이다.”(한 대기업 부사장) 국내 기업들은 요즘 유가 및 원자재 값 폭등, 세계경제 침체 등 각종 해외발(發) 악재에 고전(苦戰)하고 있다. 그러나 분위기가 어둡지만은 않다. 상당수 기업은 서랍 속에 감춰뒀던 투자계획서를 다시 꺼내들고 있고 인수합병(M&A) 움직임도 활발하다. ‘기업가 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통령이 앞장서 기업친화적 행보를 보이면서 생긴 변화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한 시각도 남아 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방안의 온도를 높여놨지만 아직은 온도계 눈금만 올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규제완화, 공공부문 개혁 등 각종 경제 살리기 정책 발표가 쏟아졌지만 아직 피부로 체감할 단계는 아니라는 뜻이다.》

○ “경제정책의 큰 방향은 옳아”

큰 틀에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재계와 학계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특히 현 정부가 오일쇼크 이후 가장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는 대외환경에서 출발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은 “대외여건의 급속한 악화에 따라 경제운영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업친화적 정책을 통해 기업들의 투자 마인드를 고취한 것은 큰 성과”라고 말했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도 지난달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돈이 나올 분위기가 충분히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중소기업 분위기도 비슷하다. 성낙중 중소기업중앙회 전무는 “대통령이 ‘자율적 능력을 가진 대기업은 규제를 없애주면 되고 중소기업은 발전을 위해 정부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에 고무돼 있다”고 말했다.

경제계에서는 지금 분위기라면 늦어도 2010년에는 가시적 변화와 발전이 예상된다며 만약 이런 여건에서 좌파 정부가 다시 집권했다면 한국경제는 심각한 위기를 맞았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새 정부가 과거 정권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고려대 이만우(경영학) 교수는 “아직은 17대 국회여서 여당이 된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소수파인 상황”이라며 “대통령이 아무리 기업친화적 정책을 약속해도 입법이 안 되는 데다 공기업 개혁만 해도 전 정권에서 임명한 사외이사들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 “각론에서는 정교함 부족”

각론으로 들어가면 새 정부의 정책 집행 능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경제정책의 방향을 잘 잡았지만 구체적 액션을 만드는 전략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공공부문 개혁이나 규제개혁 등 주요 정책 과제가 시스템이 아니라 청와대 몇몇 인사가 주도하는 식으로 비치다 보니 추진력도 떨어지고 정교함도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정책 방향은 실용으로 잡았으면서도 참모진은 실용가가 아니라 교수 등 이론가로 주로 꾸려 세상의 흐름과 편차가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이른바 ‘광우병 괴담(怪談)’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처리 문제 등에서 노출된 현 정부의 갈등 조정능력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정부의 과잉 의욕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성신여대 강석훈(경제학) 교수는 “환율 금리 물가 등 가격 변수는 시장경제에서 손대지 말아야 할 부분인데도 새 정부가 의욕에 넘쳐 이를 통제하려다 보니 시장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며 “국민도 세계경제가 어려운 점을 다 알고 있으니 좀 더 여유를 갖고 성장잠재력 회복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국민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개혁과제 용두사미(龍頭蛇尾) 안 돼야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 미국산 쇠고기 문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주요 개혁과제가 추진력을 잃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현석 대한상공회의소 상무는 “규제완화 공공부문 개혁 등 경제개혁은 정권 초기에 확실히 밀고나가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추진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서강대 김경환(경제학) 교수는 “공공부문 개혁이나 규제완화 등을 하려면 단기적으로 나타나는 시장불안이나 저항이 예상되지만 정부는 이를 감내하고 관철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현 정부가 실용을 표방하지만 뭐가 실용인지 분명치 않아 보인다”며 “시장경제 원칙에 대해 더 분명한 이정표를 세우고 방향을 잡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승철 전경련 전무는 “지금까지 일부 실수도 있었고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아직은 평가할 단계가 아니다”며 “여대야소가 되는 18대 국회가 개원된 뒤부터가 이명박 정부의 진정한 평가기간”이라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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