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6조 원 규모의 감세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편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업 기 살리기 차원에서 대체로 올바른 판단이라고 공감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법인세나 상속세 폐지 등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본지와 자유기업원이 ‘정부의 9.1. 세제개편안, 어떻게 볼 것인가’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정부의 세제 개편에 대해 일단 동감하면서도 기업 활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사회로 지난달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이번 좌담회는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 최 광 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가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사회 :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정부가 총 26조4000억 원의 감세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9.1.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최광 외국어대 경제학부 교수=감세 규모가 역대 최대인 26조 원에 달하고 대상이 16개 세목에 이른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감세의 큰 방향은 옳다고 본다. 특히 지난 10년간 지속됐던 증세 기조와 징벌적 세제를 ‘정상적 세제’로 전환하고자 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재교 인하대 법대 교수=감세는 경기진작, 경기활성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감세=경기활성화’라는 식으로 강조하다보면 국민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이번 세재개편안은 감세를 통한 경제활성화라는 목표에 부합한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국민의 세부담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면서 재정을 확대, 경제살리기에 실패함과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크게 해쳤다. 결국 국가부채 또한 빠른 속도로 늘어만 갔다. 이렇게 썼는데도 우리 경제는 살아나지 못했다. 오히려 더 침체에 빠져 세계경제성장률에도 못미치는 성장을 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국민의 세부담을 줄이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소득세, 상속 증여세, 양도소득세 인하로 민간 소비가 증가되고, 가계의 재무구조가 상대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법인세의 인하는 기업의 수익구조를 개선시키고 투자를 유도할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감세정책을 재정규모 축소 방안과 연계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감세통한 소비증진ㆍ투자유도 바람직
동유럽‘단일세’같은 간소화 절실
-법인세율 인하의 기대효과와 기업관련 세제개편안에 대한 평가 및 보완할 점이 있다면
▶이 교수=세계적으로 법인세율 인하경쟁을 하고있다. 반면 우리는 절대세율은 높지 않지만 전체 세수대비 및 GDP 대비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축에 들어간다. 세계화 속에서 아일랜드의 경우 법인세율을 45%에서 12.5%로 낮추면서 외국인 투자를 대거 유치하고 유럽의 경제강자로 떠올랐다.
▶안 교수=가진 자와 대기업을 봐주기 위한 감세라는 지적은 문제가 있다. 법인세를 인하하면 이른바 전가(shift)의 과정을 거치면서 궁극적인 혜택은 소비자와 근로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세부담을 우선 줄여주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욱 어려운 곳에 세부담 경감혜택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원장=법인세 부담을 낮추면 기업들의 투자와 수익이 늘 것이다. 대기업에 대해서도 법인세 인하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 주목할 것은 법인세 자체가 별로 좋은 세금이 아니므로 장기적으로는 폐지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법인세는 투자의 걸림돌이다.
이재교 인하대 교수
“있는자 위한 감세”지적은 정치공세
세계적 법인세율 인하경쟁 되새겨야
-중소기업 가업상속 지원확대 대책의 예상효과는 무엇이며, 앞으로 보완되어야할 부분이 있다면.
▶안 교수=지나치게 높은 상속세부담으로 폐업할 중소기업이 유지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고용확대 등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가업승계를 위해 사망이전 경영권이양에 따른 부담을 경감하는 방안도 추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 교수=세율, 한도, 기간을 정하는 것은 어차피 자의적이므로 이러한 미봉책보다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효율성 상실과 경제 활력 저하, 그리고 성장 잠재력 훼손으로 귀결되는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과세로 대체해야 한다.
▶이 교수=중소기업의 활성화에 상당히 도움이 될 내용이다. 기업이라는 유기체를 유지하면서 다음 세대에게 상속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평등의식이 강하고 상속을 ‘불로소득’이라고 보는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접근에 신중할 필요는 있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
中企가업상속 지원 고용확대 기여
사망이전 후계때도 부담 줄여줘야
-주택 양도세 부담은 완화되는 반면 세금 감면 요건 중 거주요건이 2년~3년으로 강화된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김 원장=거래세가 너무 높다. 거래세를 줄여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취득세 등록세와 더불어 양도소득세도 장기적으로 폐지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취득세와 등록세는 수수료 정도의 수준으로 줄이고 양도소득세는 폐지하고 종합소득세에 포함하여 과세하는 것이 옳다. 거주 요건도 폐지하고 1가구 1주택에 대해서는 무조건 양도세를 비과세하는 것이 공평하다.
▶최 교수=미국이나 일본 등 외국의 경우 자기가 거주하는 주택에 대해서는 양도세가 거의 없다. 우리도 거주 요건을 더 강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주택 양도와 관련한 세금은 개편안에 제시된 것보다도 훨씬 더 크게 세 부담을 내려야 한다.
▶이 교수=우리나라에는 만성적인 주택 수요초과로 부동산 폭등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 대출 규제는 그대로 두되 양도세는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
최광 한국외대 교수
美ㆍ日은 거주주택에 양도세 없어
요건은 더 강화 세부담은 더 낮게
-이번 세제개편이 이른바 ‘있는 자’들만을 위한 편향된 세제개편이라고 비판한다.
▶이 교수=세금은 본디 가진 자가 내기 마련이므로 감세로 인하여 있는 계층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현상을 지적하는 것은 무의미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 감세안의 내용이 헌법정신, 조세정의, 조세체계에 맞느냐, 경제성장과 부의 분배 등의 제반 정책에 감세안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안 교수=부가가치세율의 인하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간이과세자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부가세율인하가 가격인하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세수만 크게 줄면서 효과는 거두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최 교수=세부담을 증대시키지 않는 한 세제 개편은 세금을 내고 있는 ‘있는 자’들의 비즈니스일 수 밖에 없다. 바른 정책은 반대 의견도 설득해 나가면서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반면 부가가치세 인하는 저소득층 지원 목적이든 소비 촉진 목적이든 전혀 유효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감세가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방향인가. 세금을 걷어 정부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다.
▶안 교수=우리와 같이 소비성 지출비중이 높은 구조에서 정부지출을 확대할 경우 경제활성화의 효과는 미미하면서 재정건전성만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감세를 통해 공급여력의 증대를 기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감세와 함께 방만한 공공부문의 낭비요인을 제거하는 등 지출효율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김 원장=같은 금액을 투자한다면 민간이 정부보다 성장 촉진 효과가 크다. 정부 지출 확대는 민간 투자 감소를 의미하기 때문에 성장에 해롭다.
▶최 교수=소득 가득자 중 세금을 1원도 내지 않는 과세 미달자가 50%를 넘는 현실에서 세율 인하와 공제 인상으로 중산층과 서민층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덜어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감세가 경제활성화와 성장촉진을 가져와 결국 혜택을 받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 교수=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감세보다는 정부지출확대가 눈에 보이고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경제학적으로 이론이 없다. 그러나 정부지출확대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잠재성장률 제고에는 오히려 장해가 된다. 더욱이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미국이나 일본보다 높은 상황이니 감세가 바람직한 선택이다.
-감세와 관련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이유가 있다. 감세를 하면 반드시 따라와야 할 것은 재정지출을 줄이는 일이다. 감세를 발표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세수 부족분을 늘릴 방안을 찾는다면 감세는 의미가 없다.
▶최 교수=세출 감소가 전제되지 않은 세금인하는 국채의 발행을 통한 재원 보전을 의미하고 추가 국채 발행은 세금인하 효과를 전부 상쇄시킨다. 세출부문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이 교수=신용카드 사용확대와 현금영수증 주고받기의 정착, 부동산실거래가에 의한 양도차익산정 등 세원 양성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므로 세원확대에 의한 세수확대가 어느 정도 세수부족을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 교수=감세와 함께 지출축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존의 각종 공공사업에 대한 실효성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공공부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공공부문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공기업과 각종 산하단체에 대한 평가를 통해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이번 개편안에서 미흡한 점은 무엇인가. 추가로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최 교수=자본, 두뇌, 기술의 확보가 국제경쟁의 관건인 상황에서 공평성의 명분이나 국내 정치문제에 사로잡혀 조세정책을 추진한다면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고 말 것이다. 조세제도를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소득세제를 개혁하고 법인세를 폐지해야 한다. 또 국세와 지방세는 물론 4대 보험을 통합해 징수하는 ‘국민납부지원청’을 설립해야 한다.
▶이 교수=감세의 효과는 일반적으로 몇년 이후에 나타난다. 현 정부가 조급한 기대를 하도록 오도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된다.
▶김 원장=동유럽 국가들이 도입하고 있는 단일세(Flat Tax)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많은 잡다한 세금들은 정리하여 조세구조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정리=최정호 기자/choijh@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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