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쌀 직불금 부당수령 '몸통'은 놔둘 것인가

자유기업원 / 2008-10-23 / 조회: 4,312       오마이뉴스 ,@

쌀소득등보전직접지불금(이하 쌀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보수정치권도 이를 둘러싼 정치공방에 열을 올리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공직자 4만여 명을 포함해 부당수령자로 의심되는 28만 명의 명단 공개를 전면에 내걸고 국회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 28만 명 모두를 현행법을 교묘히 이용한 부당수령자로 판단할 수는 없는 게 사실이다. 감사원의 추정 근거가 이들이 비료 구입 실적이 없고 농협 수매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위탁경영, 임대차나 사용대차, 겸업이나 관외경작 등의 경우를 고려하면 그렇게 쉽게 단정하긴 어렵다는 말이다.

보다 면밀한 조사를 통해 부당수령자임이 정확히 확인된다면 명단 공개는 물론 처벌 문제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에는 처벌에 대한 법적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에 부당수령액에 대한 회수 이외에 이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 처벌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고위 공직자나 사회지도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경우 최소한 윤리적, 도덕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

일단 쌀 직불금 부당수령자부터 조속히 가려내야

어떻게 이런 문제가 일어났을까? 우선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현행법은 쌀 직불금 지급 대상자를 '1998년 1월 1일부터 2000년 12월 31일까지 논농업에 이용된 농지에서 논농업에 종사하는 농업인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단 '농업인 등'은 참 애매한 표현이다. 농지법 시행령에서는 농업인의 범위를 1천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를 경작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등'은 이 밖의 대상도 인정할 수 있다는 여지를 두는 게 아닌가.

그리고 부정하게 등록하였거나 요건 및 기준을 갖추지 못한 경우 감액지급이나 등록제한, 그리고 회수를 규정하고 있을 뿐 처벌조항은 아예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특단이라도 내린 것처럼 부당지급된 쌀 직불금을 환수조치하라고 했는데, 그냥 법대로만 하면 되지 그렇게 생색낼 일이 아니다.

한편,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쌀 직불금을 받고자 하는 자는 해당 읍·면장에게 논농업에 이용된 농지임을 증명하는 서류, 신청인이 해당 농지의 경작자임을 증명하는 서류와 함께 등록신청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읍·면장은 이 등록신청서와 첨부서류의 내용이 사실과 일치하는지를 현지조사 등의 방법으로 확인하고, 그 확인결과를 첨부하여 시장·군수 또는 자치구의 구청장에게 등록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부당수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당수령 당사자에 대한 처벌은 물론이고, 현지조사 등을 통해 부당신청인지 아닌지를 확인했어야 할 관할 읍·면장에게도 최소한의 책임을 묻는 게 필요하다.

부당수령의 본래 목적은 부재지주의 농지 투기 합리화

문제가 커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놓았다. 정부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실경작 확인과 지급제한이다. 그런데 실경작 확인의 경우 현행법만 잘 지켰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법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중요한데, 엄격한 처벌규정은 최소한의 전제다.

정부가 이것으로 국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사태를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물론 정부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경작자가 아니라 부재지주에게 잘못 돌아간 혜택을 바로잡는 데에는 일정한 효과가 있겠지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쌀 직불금 부당수령이 양도소득세 탈루를 노린 행위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어 문제가 더욱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재지주들이 자경을 위장하여 부당하게 쌀 직불금을 타 먹은 진짜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농민이 아닌 사람이 농지를 팔 경우 양도소득의 66%가 세금으로 부과되는 반면, 자경농민의 경우에는 과세 표준에 따라 9~36%의 4단계 세율이 적용되고 여기에 농지를 8년 이상 직접 경작했다는 증빙을 하면 양도소득세가 최고 1억원까지 감면된다.

또한 현행 농지법에 따르면,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아니하는 농지로 판명될 경우 1년 이내에 해당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 이에 따르지 않으면 '농지처분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부재지주들은 자경을 입증함으로써 농지 투기 의혹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은 있으나마나?

헌법 제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2항에는 "농업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두 조항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1949년에 제정된 농지개혁법은 농지를 직접 경작하지 않는 부재지주의 농지를 모두 소작인에게 분배해 주고 농지대는 5년 연부(年賦)로 상환하도록 함으로써 부재지주를 없앴다. 그러나 농가의 농지소유 면적을 3정보(町步) 이내로 제한하고, 농지의 매매를 제한하거나 임대차 또는 위탁경영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농가의 영세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1980년 제8차 개헌에서 이를 완화하는 조항이 추가되었는데, 농지의 소작제도는 여전히 금지하되 "농업생산성의 제고(提高)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한 임대차 및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인정된다"고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소작제도와는 다르지만 현대판 부재지주가 부활할 길이 열렸다.

그러나 임대차와 위탁경영의 경우에도 농지이용증진사업 시행계획에 따른 경우가 아니면 대개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로 제한되어 있다. 그럼에도 2006년 기준으로 전체 농지 중 임대차 면적은 43%나 되고, 임차농 비율은 무려 62.5%에 달한다.

이참에 경자유전 원칙을 아예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21일자 <중앙일보> 시론에서 "농지를 빌려주는 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재검토할 필요도 있다. 경자유전이라고도 불리는 이 이념은 시대와 너무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농지도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있는 투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단세포적 발상에 불과하다.

농지에 관한 기본 이념이 머릿속에 없는 사람들

농지에 관한 기본 이념을 서술한 현행 농지법 제3조에 농지는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 환경을 보전(保全)하는 데에 필요한 기반이며 농업과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한정된 귀중한 자원이므로 소중히 보전되어야 하고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관리되어야 하며, 농지에 관한 권리의 행사에는 필요한 제한과 의무가 따른다"고 명시하고 있고, "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농지 소유 제한을 명시한 농지법 제6조에도 "농지는 자기의 농업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다. 개인 소유의 예외는 상속, 이농, 주말체험영농 등에 국한된다.

행정안전부가 전국의 필지별로 토지소유자 명단을 다 갖고 있지만 아직 공개하지는 않아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대도시 근교의 부재지주 비율이 무려 60~80%에 달한다는 추정치가 있다. 이것이 부동산 투기의 도화선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을 비롯한 대다수 국민이 짊어지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재지주가 부당하게 수령해간 쌀 직불금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이참에 부재지주 문제 자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부당수령자를 밝혀내는 것뿐만 아니라 부재지주를 일소하고 농지 투기를 근절하는 것이 이번 쌀 직불금 사태로부터 직시해야 할 분명한 과제다.

올해 초 서울시 공무원으로 재직할 당시 위장전입을 해 경기도 안성의 논밭을 산 뒤 한달만에 주소지를 서울로 옮겨 농지 투기 의혹이 드러났는데도 끄떡없이 버티던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이 결국 쌀 직불금 문제로 물러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뿌리부터 잘라야했던 것이다.

지난 2월 말 경기 김포의 절대농지 투기 의혹으로 물러난 박은경 당시 환경부 장관 내정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이라는 가증스러운 명언을 남겼다. 빈말은 아니었을 게다. 땅이 돈으로 보이는 사람들한테 그 사랑은 매우 깊었을 테니. 그렇지만 우리에겐 그 빗나간 사랑을 바로잡아줄 의무가 있다.

최광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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