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을 받은 AIG가 임직원들에게 1억6천50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면서 AIG의 모럴해저드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시장경제는 자유와 책임과 무차별의 원칙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자생적으로 질서가 회복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부가 구제금융을 통해 개입하면 시장경제가 갖는 처벌 메커니즘이 수행하는 역할을 차단시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을 왜곡시키고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고사시킬 수 있다.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보험회사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은 임직원들에게 1억6천500만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시민들은 모럴해저드에 빠진 임직원들의 오만하고(arrogant) 부도덕하고(immoral) 탐욕스런(greedy)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고액의 보너스 잔치가 시민들의 감정을 건드리자, 미 하원은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국책모기지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직원들에게 지급했던 보너스도 회수하도록 요구하였다. 보너스 파문에 더해, AIG가 여타 금융회사들과 파생상품 등을 매개로 복잡한 거래를 해오면서 지금까지 투입된 1천7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의 상당부분이 거래 투자은행에 보험금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도 알려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처럼 미 하원은 연방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회사들이 지급한 보너스에 90%의 세율로 중과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시민들의 여론에 호응하였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부당한 인센티브가 궁극적으로 은행조직의 건전성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금융감독당국이 금융기관 임직원의 보너스 규정을 미리 검토할 것을 요구하였다. 보너스 중과세 입법조치에 대해 금융기관의 종사자들은 ‘반미주의적 조치‘, ‘매카시식 마녀사냥‘이라며 반발하고 나섰고, 씨티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보너스 중과세로 재능 있는 임직원들을 잃게 되어 금융시스템을 안정화 시키려는 노력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연식고초(鳶食枯草)와 사유재산제도의 위기
옛날 전라도 어느 지방에 부자가 살았는데. 찾아오는 과객마다 후하게 대접하여 재워 보냈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주인에게 손해를 입혔다. 어느 날 행색이 초라한 과객이 하룻밤 자고나서 다음날 새벽 주인에게 인사하고 떠났는데 두 시간 뒤 다시 찾아와, 주인의 버선과 바뀐 것을 뒤늦게 알고 되돌려주려고 왔다고 하였다. 주인은 하찮은 버선 한 짝 때문에 먼 길을 도로 돌아온 것이 고마워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과객은 못이기는 체 그 집에 주저앉았다. 과객은 성의를 다하여 그 집일을 도왔다.
이럭저럭 몇 달이 지나 주인은 과객에게 수만 냥을 내어주며 남원에 가서 논 몇 백석지기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과객이 돌아오지 않자 과객이 쓰던 방을 뒤져보니 책상 서랍위에 ‘연식고초(鳶食枯草)’라고 쓴 쪽지가 나왔다. 주인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마을 훈장한테 쪽지를 보였더니, 훈장은 그 자에게 사기를 당했다면서,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초여름에 꿩이 새끼를 치려고 밀밭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솔개(鳶) 한 마리가 꿩 옆에서 마른 풀을 쪼아 먹길래(食枯草), 꿩이 경계하면서 왜 마른 풀을 먹느냐고 물으니까, 솔개는 남을 헤칠 수 없어 생명이 있는 푸른 풀을 먹지 않고 마른 풀이나 먹고 산다고 대답했다.
꿩이 배고픔을 참고 알을 지키고 있으려니 솔개가 “알을 잘 보아줄 터이니 안심하고 다녀오시오”하고 말하자, 꿩은 그 말에 솔깃하여 솔개에게 알을 맡기고 자리를 떴다. 급하게 이것저것 주워 먹고 자리로 돌아오니 솔개는 간 데 없고, 알은 모두 깨져 빈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이를 두고 연식고초(鳶食枯草)란 ‘솔개가 마른 풀을 먹는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환심을 사서 신임을 얻은 후 해를 입히는 배임행각을 일컫는 때 사용하는 고사다(「지혜」에서).
국내에 잘 알려진 GE의 전 회장 잭 웰치와 ABB의 전 회장 바네빅도 모럴해저드를 벗어나지 못한 최고경영자였다. 잭 웰치는 자신이 퇴임할 때 매년 연금 8만 6천 달러를 받고 ‘GE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와 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제공받을 수 있도록 계약하였다. 그는 연금보다 GE의 서비스와 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남용하였는데 13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혼을 요구한 부인 제인은 그에게 공동재산의 절반에 상당하는 5억 달러를 위자료를 요구하였다. 그녀는 법정에서 남편이 유용한 사실들 낱낱이 고해, 웰치는 GE로부터 받는 자신의 특권의 일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ABB의 바네빅은 1996년 회장직을 그만두고 감사위원회 의장직을 맡으면서 연금 1억 프랑과 보너스 4억 8천만 프랑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자신이 회장직에 있을 때 사인하였다. ABB가 뉴욕증시에 상장하면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바네빅은 퇴직금의 일부를 반환했지만 ABB의 지주회사 대표인 스웨덴의 야곱 발렌베리는 그를 해고하고 말았다(「사기꾼의 경제」에서).
주인(대주주)과 머슴(경영자)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 주인이 없는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은 자신의 재산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여 주인의 호주머니를 갈취한다.
이처럼 주인(대주주)과 머슴(경영자)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 주인이 없는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은 자신의 재산이라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자신들만의 잔치를 벌여 주인의 호주머니를 갈취한다. 국내에서도 그 동안 출자총액제한이나 상호출자제한 및 특정업종진출제한 등으로 주인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을 가하는 바람에 머슴들의 모럴해저드가 문제로 불거져 나왔다. 그 결과 비난 여론이 일어나자, 국내 금융기관의 임원들이 자신들의 보수를 20~30% 삭감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근래 정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금융기관의 임직원들의 모럴해저드로 빚어진 일련의 사태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인 사유재산제도, 계약자유의 원칙 및 영리자유의 원칙이 무너져가는 현실을 목격하게 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구제금융 옳은 일인가?
금융위기에 대해 정부가 천문학적인 숫자의 구제금융을 쏟아 붓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일까? 주류경제학은 거래상대방이 어떤 성향을 가진 인간인지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전제로 하여 분석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의도하여 계획을 세워 행동하지만, 그가 예상한대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가 확실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간다. 어떤 경우에는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주지만, 또 어떤 경우엔 실패를 안겨다준다. 다행히 경쟁은 실패에서 오는 손실을 피할 수 있도록 사람들로 하여금 학습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학습과정을 통해 부단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여 종전의 잘못된 지식을 수정 내지 개선하거나 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지식으로 당초의 지식을 바꾼다.
시장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은 학습과정을 통해 부단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여 종전의 잘못된 지식을 수정 내지 개선하거나 또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지식으로 당초의 지식을 바꾼다. 따라서 시장과정은 지식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부가 구제금융을 통해 개입하면 개인들에게 학습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과업을 방해하여 사람들의 잘못된 지식을 수정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존재하는 경쟁의 역할을 어느 지식을 피할 것인지를 발견하기 위한 절차로 이해하고자 하였다. 경쟁은 KIKO와 같은 선물이나 ELS와 같은 파생상품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부가 개입하여 경쟁이 낳을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도록 한다면, 경쟁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에 따라 열악한 형질의 상품을 발견하여 퇴출시킬 수 있을 기회를 박탈한다. 이처럼 발견하는 과정으로서 경쟁이 갖는 묘미는 KIKO나 ELS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도록 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유야 어떠하든 KIKO나 ELS에 투자하여 손해를 입은 경제주체들을 구제하는 정부의 조치로 경쟁의 결과를 알 수 있도록 만들게 된다면 경쟁을 불필요하도록 소멸시키고 말 것이다.
시장의 소멸과 영리 자유의 위기
자본주의 시장은 혁신, 선별 그리고 확산이라는 진화과정을 반복한다. 새로운 파생상품이나 스톡옵션제도가 등장하면 이에 대한 선별과정이 일어나고 성공적인 것은 확산되는 과정을 밟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변형된 스톡옵션과 같은 새로운 혁신과정이 또다시 일어난다.
시장은 주류경제학이 믿는 것처럼 균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 좌절과 희망의 끊임없는 과정이다. 여기서 선별과정은 언제나 소극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주류경제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최선의 것이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하이에크의 진화이론처럼 현실에 부합하지 않은 상품이나 제도를 도태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등장해서는 안 되거나 도태시켜야 할 상품이나 제도가 온존하는 토양을 제공하여 비효율적인 유기체까지 생존하도록 만든다.
시장경제는 자유와 책임과 무차별의 원칙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자생적으로 질서가 회복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론에 떠밀린 정부가 구제를 능사로 삼는 파퓰리즘의 정책을 구사한다면 시장경제가 갖는 처벌메커니즘이 수행하는 역할을 차단시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을 점차 소멸시켜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고사시킬까 염려된다.
더 나아가 시장은 정부의 간섭이 없다고 해도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내는 자생적 유기체이다. 이러한 질서형성이 가능한 까닭은 시장공간에서 잘못된 지식을 이용하거나 잘못된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들 처벌하는 메커니즘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류경제학에서는 시장경제를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역할만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므로 시장의 처벌메커니즘을 과소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시장이 갖는 자생적 질서능력에 회의를 보낸다. 대표적인 예로 1930년대의 공황은 시장의 자생적 질서에 의지하지 않고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하어 일어났다고 경제사학자들은 해석한다. 1920년대 내내 현저히 증대된 통화 공급으로 인하여 불황이 생겨났는데에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돈줄을 막지 않고 보호무역을 비롯하여 각종 간섭정책을 실시하는 바람에 공황이 심화되었다고 한다. 근래 일어난 경제위기를 대처하는 각국 정부의 행동방식이 193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는 것 같다.
오스트리아 학파가 주장하듯이 1930년대 공황의 근원이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의 간섭 때문에 일어났다. 그리고 시장경제는 자유와 책임과 무차별의 원칙을 실천하기만 한다면, 시간이 다소 걸릴지라도, 자생적으로 질서가 회복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론에 떠밀린 정부가 조급한 마음에서 ‘우는 아이 젖 주는 식’으로 구제를 능사로 삼는 파퓰리즘의 정책을 구사한다면 시장경제가 갖는 처벌메커니즘이 수행하는 역할을 차단시켜,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시장을 점차 소멸시켜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고사시킬까 염려된다. 시장을 남용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시장이 처벌하려고 자생적으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발생시켰는데에도 불구하고, 금융위기를 맞이하여 신자유주의가 먹혀들지 않는다느니 국가의 경제개입을 정당화하는 케인즈주의가 살아났다느니 하는 따위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금번의 금융위기는 사유재산과 경쟁과 그리고 시장이 살아있다는 강력한 증표를 보여준 고마운 축복으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저자소개: 유동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시장경제문화론」,「신제도주의경제학」,「경제진화론」,「소비자 경제심리의 법칙」등이 있다.
유동운 /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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