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사법처리 위기…대통령 부패 막을길 없나
김정호 원장,
정부 힘 지나치게 비대
‘특혜=뇌물’ 사전차단을
신중섭 교수,
대통령 연예인化경계
맹목적 충성 이젠 그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국 사법처리될 위기에 처했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 대통령에 이어 우리는 부패의 덫에 걸린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목도하게 됐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부패 공화국’이라는 낙인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오욕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의 부패, 과연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인가.
헤럴드경제와 자유기업원은 지난달 27일 해법을 찾기 위한 작지만 소중한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의 부패문제’를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대통령과 친인척 및 측근, 그리고 공무원들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규제 철폐와 완화 등을 통한 작은 정부, 지방자치의 확대, 엄격한 규율, 자유주의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법과 제도를 강화하는 것으로는 대통령과 주변 인물을 견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론과 시민 사회의 감시를 활성화해야 하고, 사법부를 통한 엄중한 법 적용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는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신중섭 강원대 교수, 최창규 명지대 교수, 황수연 경성대 교수가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기업과 정치와의 관계, 영원한 숙제인가. 무엇이 문제인가.
▶최 교수=부패한 나라에서는 경제성장도 되지 않는다. 부패 금액이 1억원이라면 10배 혹은 그 이상으로 나라 경제를 왜곡시킨다. 기업과 정치 간의 부패 고리는 우리 국민의 의식이 제대로 설 때까지는 계속될 것 같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부패가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야 검찰에 의해 밝혀진다는 점이다. 훌륭한 전직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현직 대통령과 친인척에 대한 비리 예방에 온 국민이 감시자가 돼야 한다.
▶김 원장=대통령이나 정부의 지나친 재량이 문제다. 기업들에 특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대가로 뇌물의 유혹이 따른다. 세무조사 과정에서의 재량권, 정부의 지급보증 등 정부의 특혜 여지를 줄여야 하고,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권한, 정치와 행정의 경제에 대한 권한을 줄여야 한다.
▶신 교수=정치와 기업인 사이의 부패는 항시 존재한다. 노력을 통해 돈거래를 줄일 수 있지만 없앨 수는 없다. 문제는 정부 권력이고, 권력을 축소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단기적으로는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잘 지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교육과 의식개혁이 중요하다.
▶황 교수=대통령이 큰 이권이 달린 프로젝트의 인ㆍ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기업이 대통령을 상대로 하는 지대 추구(rent seeking)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독점권을 민간에게 부여할 수 있는 권한을 대통령으로부터, 정부로부터 뺏는 것이다. 큰 시장, 작은 정부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직자 윤리규정이 있지만 공직자들의 부패는 여전하다. 개선 방향은?
▶김 원장=더 이상 규정을 만들 필요는 없다. 법이나 규정이 부족해서 부패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규정이 있음에도 안 지켜지는 것이 문제다. 정부의 힘을 줄이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점차 부패도 줄어들 것이다.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신 교수=공무원의 권한을 줄여야 한다. 사람이 아니라 규칙에 따라 업무가 진행되어야 하며, 모든 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윤리 규정을 만들고 그것을 어기는 사람을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규정과 처벌을 엄격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있다. 시민이든 공무원이든 ‘내가 누군데 그 따위 짓을 할까’라고 하는 자존감(self-respect)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황 교수=공직자가 부패하는 것은 부패로부터 얻는 편익이 적발되어 처벌될 때 비용보다 높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공직자는 도덕성의 편익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윤리 규정이 없어도 부패하지 않을 것이고, 비도덕적인 공직자는 도덕성으로부터 얻는 편익을 별로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 규정이 그의 행동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부패의 처벌이 편익보다 더 높도록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최 교수=기업인들이 공직자에게 청탁한 이후에 언제라도 본인이나 혹은 관계자들이 사정기관에 신고하면 그 돈의 전부 혹은 일부를 되돌려 받고 면책까지 해주는 제도를 도입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법조항이 있다면 공직자들이 뇌물을 받을 때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또 부패의 실상이 언제라도 반드시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최창규 교수,
국회ㆍ사법 견제력 강화
언론ㆍ시민 감시자 돼야
황수연 교수,
친인척 범죄 처벌 관대
法앞 평등 원칙 세워야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지자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노무현 신드롬’이라고도 불리는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나.
▶신 교수=우리 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연예인화 현상의 하나다.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면 맹목적으로 좋아한다. 이유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또 하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다. ‘노무현의 허상’에 강한 연대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의 충성심은 부패 행위와 관련 없이 계속 유지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진보, 정의’를 말할 자격을 잃었지만, 아직도 그를 노력한 대통령으로 믿는 사람들은 충성심을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황 교수=좌파들은 기업가의 돈을 좌파 정부가 써야 더 올바르게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은 노 전 대통령이 남의 돈을 쓰는 것을 크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들은 계급 또는 아군과 적군의 관점에서 사회 문제를 인식한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이 부패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쪽 편이 죄 없는 노무현 대통령을 부당하게 처벌하려 한다고 믿는다.
▶최 교수=더욱 경악케 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 참모들의 발언이다. 과연 이런 사람들이 고위직을 지낸 분들인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이런 수준의 참모들이 대통령을 그 지경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전직 대통령 정도면 그 정도는 푼돈이고 살림에 보태 쓴 정도라는 인식이다. 만약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영원히 제대로 된 나라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김 원장=이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자연스런 현상이다. 정서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잘잘못을 떠나서 좋아한다. 이미지와 실제가 맞지 않아 인지부조화가 생길 수도 있는데, 이럴 때는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무시함으로써 자신이 옳았음을 재확인하곤 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다.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그런 것이다.
-대통령과 친인척을 감시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가.
▶황 교수=우리 나라에서 대통령과 친인척 부패는 적발하기도 쉽지 않고 처벌은 관대한 경향이 있다. 처벌에서도 법 앞의 평등 원칙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범죄가 적발될 확률이 낮으면 더 높은 확률 승수(probability multiplier)를 곱한 형량을 적용해야 범죄 억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대통령과 친인척의 부패는 적발이 어려운 만큼 부패에 대해서 높은 확률 승수를 적용하여 엄히 처벌하지 않으면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최 교수=대통령은 법의 지배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잘못된 의식이 문제다. 또한 대통령이 자신이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겠다는 확고한 의식이 없으면 부패의 유혹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김 원장=2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중 우리나라는 상당히 깨끗한 나라에 속한다. 너무 비관적일 이유는 없다. 친인척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그들도 인권이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감시를 더 강화할 수는 없다. 대통령의 권한 자체를 줄이지 않으면서 친인척들을 배제시킨다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통령의 권한도 줄이고 가족주의 같은 것들이 해소되어야 하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신 교수=일차적으로 대통령의 의지가 문제다. 그러나 강한 연고주의와 가족주의, 의리 의식, 권력이 갖는 권한이 없어지지 않는 한 불가피하다. ‘민정기관의 이원화’와 같은 감시 시스템을 고안한다 하더라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의 이념이 확산되면 이런 현상은 줄어들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문제가 되는 것과 관련,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 우리 정치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좋은가.
▶최 교수=정치 시스템을 바꾼다고 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시민사회, 사정당국, 언론 등이 항상 권력을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삼권분립하에서 대통령에 대한 의회와 사법부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최근과 같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방대한 정부 예산이 집행될 때 부패에 대한 감시가 철저히 이뤄져야만 한다.
▶김 원장=의원내각제도 적당한 것 같지 않다. 국회가 식물화될 경우 국정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권한 자체를 줄이고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동안 지방 부패가 늘어날 수 있지만, 지방 간 경쟁이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자동제어장치가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신 교수=부패를 줄이기 위해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명분이 약하다. 대통령 중심제와 부패가 논리적으로 연결된 것도 아니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의 이념이 확산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황 교수=문제를 정부 대신 시장에 맡겨 처리해야 한다. 정부가 처리해야 할 문제도 분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해 대통령을 견제하고, 도지사 등 지방으로 업무를 이양하면, 추구할 지대의 크기도 줄어들고 실행되는 지대 추구도 쉽게 적발될 것이다. 추구할 지대가 없어지거나 줄어들면 부패도 자연히 소멸된다.
정리=최정호 기자/choijh@heraldm.com
<참석자>
▷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신중섭 강원대 교수
▷ 최창규 명지대 교수
▷ 황수연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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