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CFE 뷰포인트]북한 핵실험과 대응 방안은?

자유기업원 / 2009-06-02 / 조회: 3,315       한국재경신문

북한은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으며, 연이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러한 북한의 무력시위로 인해 한반도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핵무기 개발을 저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임을 알 수 있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북한의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안전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오전 9시 54분 함북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핵실험을 했다. 이날 아침 북한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면서 조문(弔文)을 전달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처음부터 북한이 예의를 갖출 것이라는 것은 기대난망(期待難望)이었지만, 조전(弔電)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다시 그들의 기만성과 폭력성을 무엇으로 형언할 수 있겠는가? 이어서 핵실험을 자축하듯 미사일 축포를 그들의 시간표에 따라 쏘아 올렸다. 북한은 4월5일에도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장거리미사일을 태평양 상공으로 날려 보낸 전력도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

북한의 핵개발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일성은 남한의 무력통일은 오직 핵무기 밖에 없다는 복심을 숨기고 구소련을 귀찮게 했다. 김일성의 핵무기에 대한 오랜 집착은 1985년 소련으로부터 5MW 실험용 원자로를 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때 북한은 핵무기비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그러나 북한은 핵개발 의혹이 불거지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1992년 NPT를 탈퇴했다. 이때부터 북한은 핵개발이라는 히든카드를 가지고 국제사회를 농락하면서 시간벌기와 보상의 크기를 조절했다.

북한은 1992년에 체결한 ‘한반도비핵화선언’을 휴지 처리했고, 1994년 체결한 제네바합의는 전리품을 챙기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북한은 1991년 1차 핵 위기 이후 46억불 상당의 200MW경수로를 전리품으로 챙겼고,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식량도 지원받았다. 이런 경제적 보상은 체제유지와 경제난 극복에 사용되었고 핵무기 개발자금으로 활용했다. 다시 말해 핵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금은 핵개발 자금으로 둔갑했다. 이런 북한의 행태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신행위’와 다름이 없지만 핵개발 열차는 발진했다. 바로 북한의 교묘한 협상전략에 말려들어 국제사회가 사기를 당한 꼴이 됐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리고 1991년 구소련의 붕괴는 핵개발을 가속시킨 또 다른 요인이다. 북한은 구소련의 붕괴로 생계가 곤란한 소련의 핵개발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평양으로 대거 유치했다. 바로 구소련의 붕괴가 북한의 핵무기의 기술을 한 단계 더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북한의 협상전략은 상대방제압하기(outmaneuvering)이다. 이 전략은 스스로 벼랑 끝에 서서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과격한 발언을 통해 상대의 심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자국의 이익에 유리하도록 협상의제를 조작하거나,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무리한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상대 국가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협상전략에서 북한체제나 정책은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상대방의 변화만을 가져왔다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북한은 지속적 요구와 상대국가의 더 큰 양보를 통해 보상과 시간을 버는 성과(?)를 얻었다.

이런 북한의 협상전략은 드디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이서 지난 5월 2차 핵실험이라는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왔다. 꿈을 현실로 바꾸는 계획은 지속되고 있다.

북한 핵은 대남용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본격화한 시기는 1990년대 초반부터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한다. 이 시기 북한은 남북한 간의 엄청난 경제력 격차라는 체제내적 충격과 사회주의권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충격에 시달리고 있었다. 특히 남북한 경제력 격차의 확대는 재래식 무기경쟁으로 영원히 군사적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자각은 자연히 핵무기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핵무장이 재래식 무기개발 비용보다 저렴할 뿐만 아니라 단순에 군사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매력 때문에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핵개발에 집착했고 무기체계의 본격적 전환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 소련이 수교할 당시 세바르드나제 소련외상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영남 당시 외상은 ‘한소 수교를 하면 우리는 핵보유국으로 간다’라고 공언했다. 이는 북한이 세계사적 격변의 시기에 개혁과 개방이라는 순방향으로 전진보다는 핵개발이라는 역주행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증거 중의 하나이다.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처럼 북한은 핵개발에 일관되고 지속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데 북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의 햇볕정책과 포용정책은 오히려 북핵을 옹호하는 어이없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군 군산복합체의 음모론이다’, ‘북한 핵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협상용이다’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AD 1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남한의 친북세력들은 ‘북한은 핵을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2002년 이후 제2차 북핵 위기가 발생되자 이들은 ‘북한은 미국의 핵공격에 대비하여 자위력을 제고한 것이다’라고 북한을 적극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는 2006년 제1차 핵실험 이후 김대중 전대통령도 ‘북한 핵은 미국책임이다’라면서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북한은 핵개발과 관련해서 국제사회와 약속을 수차례 위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을 동의 반복하는 친북세력들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하여야 하는가?

북한이 자위력을 높이기 위해 핵개발을 하였다면 북한의 핵개발로 남한의 자위력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도 북핵문제의 심각성을 경시해 온 측면이 있었다. 우리가 최대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는 국제적 사안이라는 논리를 만들어 우리 스스로 북핵의 위험성을 무시했고, 남북관계 개선 내지 발전이라는 명분 때문에 북핵문제는 늘 뒷전이었다. 또한 북핵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능력은 과소평가하고 미국 때문에 핵을 만든다는 북한의 선전선동전략에 속아 북핵의 심각성을 무시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핵의 최대 피해자는 남한이다. 북한은 1998년 9월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한 후 동년 12월 5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사일의 표적이 ‘서울, 동경, 워싱턴’임을 천명했다. 이 기사는 북한 핵이 근본적으로 남한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미사일이 핵무기의 이동수단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미협상론은 북핵의 본질적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가희 광적이었다. 1990년대 초반 수백만 명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일 때에도 핵보유라는 절대절명의 목표를 향해 달려왔고, 북한은 어떤 보상으로도 핵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협상론은 어떤 명분도 실리도 없다.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본다면 북핵은 협상용이 아니라 오래된 꿈이며, 핵보유를 통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남한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무기라는 사실은 명백한 사실이다.

대북정책 기조 바꿔야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교역을 통한 평화’ (peace through trade)였다. 정부의 교역을 통한 평화정책은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으로 파탄 났음에도 협상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북한의 핵전략은 한미를 철저히 분리하는 양면전략을 추진해 왔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는 시간을 버는 지연전술이었다. 북한은 2007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2.13합의를 도출하였지만 합의문에는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조항을 빼는데 성공함으로써 ‘현재의 핵’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보너스도 챙겼다.

한편 남한과의 협상에서는 ‘민족은 평화다’라는 슬로건을 통해 남한의 대북지원을 민족적 의무로 인식시킴으로써 핵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남남갈등을 유발시켰다. 이런 북한의 핵전략은 평화라는 명목으로 핵개발 자금을 조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남한정부는 어떤 정책기조의 변화도 강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화정책을 유지하는데 급급해서 안보정책을 포기하는 우를 범했다.

오마바 정부 출범과 함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은 그 강도를 높여가면서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북한은 지난 4월 5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곧바로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이라는 강수를 던졌다. 북한은 핵기술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핵보유 국가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자랑이라도 하듯이 계획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있다.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 우리는 생존을 위해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이런 북한의 행태에 대해 우리정부는 그저 우물쭈물 하고 어떤 과단성도 없었다. 만약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겠다고 천명했지만 막상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수많은 핑계거리로 뒤로 미루는 안보전략의 부재를 보여주더니, 2차 핵실험 이후 마지못해 PSI에 참여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PSI 참여카드를 만지작거린 이유는 개성공단에 억류근로자가 걸림돌로 작용했지만 종합적 전략․전술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 바로 남북간의 급격하게 변화된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북한의 핵보유가 수면아래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의 1998년 패러다임을 핵보유가 현실화된 2008년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이 정석인데도 계속 악수만 두었다.

우선 북한의 핵위협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여야 한다.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교류․협력정책의 전면적 쇄신이 필요하다. 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선언 이후 17년 동안 국제사회와 남한을 철저하게 무시했고 앞으로도 비핵화라는 약속을 지킬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사실과 함께, 3-4년 내 핵무기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는 문제의 심각성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북한 핵의 실전배치는 한반도 파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여야 한다. 핵무기에는 핵무기밖에 대처방법이 없다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미군의 핵우산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가동될 수 있는 한미동맹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6월중에 개최되는 한미정상회담을 잘 활용하여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북교류․협력의 행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여야 한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목적에서 개성공단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황색바람의 차단막으로서 공단을 개발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그리고 개성공단은 북한이 배타적으로 행정사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남한근로자를 인질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여야 한다.

따라서 공단개발은 남한 단독개발에서 국제공동 컨소시엄으로 개발방식을 전환하던지, 아니면 남북한의 행정력이 공동으로 미칠 수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개발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입주기업과 노동자들이 안심하고 일을 할 수 있다. 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은 폐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저자소개: 조영기 교수는 건국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교수와 한반도선진화재단 교육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현대북한경제론’ 외 다수가 있다.

조영기 /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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