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제도 이념대립 변질… 시장경제 3대축이 흔들린다
강성노조·폭력국회 등 상생원칙·다수결 무시
기업가 정신 무너지고 정부 시장개입은 커져
‘소수의 횡포가 만연하고 정부는 다시 커지고 있다. 경제적 문제조차 이념 대립으로 변질되고 다수결 원칙ㆍ시장 가격조절 등 시장경제의 룰을 외치는 목소리는 공허할 따름이다.”(A기업의 한 임원)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화됐기에 다행이지 예전처럼 국내 경제와 시스템에 의존했었다면 최근같이 시장경제의 룰이 지키지 않는 구조에서 경영활동을 제대로 이어가기 힘들었을 것이다.”(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
시장경제의 룰이 흔들리고 있다. 시장경제의 상징인 기업에 대해 비판 목소리는 커지면서 경제적 사안마저 이념 대립으로 변질되고 있다. 흔들리는 시장경제의 룰은 시장경제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경제를 지탱할 법을 만들고 민의를 수렵하고 조정해야 할 국회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일련의 국회 폭력적 모습에 대해) 우리 국회가 로마의 원형 경기장에서 보았던 야수와 검투사의 결투를 흉내내고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위협 받는 시장경제 3대축=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팀장은 “시장경제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재산권ㆍ시장가격ㆍ기업 등 3대축이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 재벌ㆍ부자 등에 대한 ‘1%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정계층에 대한 상징적 공격을 통해 시장경제 전체의 룰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용산 참사를 놓고 제도적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소수 갖은 자의 횡포로 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가격도 시장기능보다는 인위적으로 정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 정부나 이익단체 등을 중심으로 휘발유 가격에 대해 경제적으로 접근해 문제를 풀기보다는 ‘휘발유=남는 장사’로 도식화하려는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다.
시장경제의 상징인 기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기업과 기업가는 별개의 주체인데 기업가의 비도덕적 문제를 갖고 기업 전체를 비도덕적으로 몰고 가는 것이 한 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우리 기업들이 그렇게 나쁘다면 해외시장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는 등 글로벌 기업이 어떻게 됐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는 경제적 사안을 시장경제의 시각에서 보고 해석하는 게 아니라 이념적 대립으로 몰아가려는 현상 때문이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우리 사회가 경제의 원론적인 문제를 놓고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차분하게 논리전인 관점에서 문제를 뜯어보는 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무시되는 다수결, 상생의 원칙=다수결과 상생의 원칙도 무시되고 있다. 최근 일련의 강성 노조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노조 활동이란 결국 기업이 잘돼 노사가 공동으로 상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근로자 이익만 확보하려 들면 결국 근로자들의 기반인 기업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생과 다수결의 원칙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국회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투표에 의해 다수와 소수가 결정됐는데도 여전히 소수는 ‘다수의 횡포’를 주장하며 자신이 뜻이 당장 반영되지 않는다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이끌어가야 할 다수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국회의원에 부여한 것은 ‘면책특권’인데 ‘폭력특권’을 부여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비판도 들리고 있을 정도다.
한국 국회의 폭력성은 이미 세계적인 스캔들이 될 정도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반성 없이 다수결과 합의원칙을 무시한 채 삼류 정치의 행태를 계속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무너지는 기업가 정신, 커지는 정부=흔들리는 시장경제룰은 기업가 정신마저 위협하고 있다. 노부호 서강대 교수는 “국정운영이나 기업경영에 시장경제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경영자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고 강조했다. 시장경제의 룰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를 이끌 한축인 기업가 정신의 구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시장 개입은 더 커지고 있다. 참여정부 때도 규제 철폐, 이번 정부 서도 규제 철폐 등을 내세웠지만 규제의 상징인 법령은 오히려 늘어났다. 법령 숫자만 놓고 봐도 5월 말 현재 4,336건으로 참여정부 말인 2008년(4,315건)보다 증가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더 놓고 이야기하기 힘들어서 그렇지 최근 들어 투자계획ㆍ고용ㆍ인사 등 기업의 자체 계획에 대해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간섭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시장경제의 룰은 결국 국가의 부를 갉아먹게 된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적 및 자본투자가 아닌 총요소생산성이 증가해야 된다. 총요소생산성은 준법 정신, 규제 완화, 노동생산성 등 보이지 않은 경제지표를 말한다. 총요소생산성이 향상을 위해서는 효율적 정부 규제하에서 기업가의 창의적 활동이 보장되고 노사가 함께 손을 맞잡고 정치ㆍ사회 시스템이 개선되는 등 시장경제의 룰하에 경제주체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여야 한다.
차문중 한국개발연구원 부장은 “1인당 GDP가 높은 국가일수록 법 질서 수준도 높다”며 법만 잘 지켜도 매년 1%포인트 추가 성장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한국 경제는 이미 인적ㆍ물자 투자로 성장하는 데 일정 한계에 도달했다”며 “결국 남은 것은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종배 기자 ljb@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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