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강화’에 대한 이념적 해석과 정치적 해석"에 대한 <요약>
최근 우리 사회에서 중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몇 년 전에도 중도에 대한 논의가 ‘제3의 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활기를 띤 적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 일이다. ‘제3의 길’을 표방하여 오랜 야당을 청산하고 집권당이 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 정부에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기든스가 서울에 와서 강연을 하고 그의 책 <제3의 길>이 번역되었다. 노동당은 신노동당을 내걸고 보수당의 시장경제와 경쟁을 비판적으로 흡수하여 1997년 집권에 성공하였다. 블레어가 ‘바지 입은 대처’라는 별명을 얻은 이유는 그가 대처의 이념과 정책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전에 미국에서도 이념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보수인 공화당과 진보인 민주당이 중도의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해 대선에서 상대방의 가치를 흡수하여 ‘제3의 길’을 마련했다. 1992년과 1996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어젠다에 해당하는 세금 감면, 범죄 퇴치 등을 차용하고 보수의 가치인 ‘성장과 분배’를 강조하며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대하여 대통령이 되었다. 좌파 진영에 속한 클린턴과 블레어가 우파의 정책을 차용한 것이다.
▲8월 13일 쌀 가공산업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브레이크뉴스
좌파 진영만 그렇게 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는 진보 진영이 선점하고 있던 교육ㆍ빈곤ㆍ의료 문제를 이슈로 삼았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부각시켰던 문제들을 공세적으로 차용함으로써 중도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었다. ‘온정적 보수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보수도 진보 못지않게 교육ㆍ빈곤ㆍ의료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지지 기반을 확충한 것이다. 온정적 보수주의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보수의 가치를 버리지 않으면서 약자와 같은 소외 계층을 보호하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철도 아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중도 논쟁이 촉발된 것이 흥미롭다. 중도 논쟁을 촉발한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그는 6월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좌우 진보 보수라는 이념적 구분을 하는 것 아니냐. 사회적 통합이라는 것은 구호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건강해지려면 중도가 강화되어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정치적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강화’ 발언 뒤에 청와대의 설명이 뒤따랐다. 이동관 대변인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국가 정체성 등 대한민국의 중심적 가치를 지키면서 중도층을 포용하는 한편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서민을 배려하겠다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도 “법치나 대북문제에선 확고하게 원칙을 지켜나가는 동시에 대국민 소통을 활발히 하면서 서민정책을 통해 중산층을 복원하고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뒤이어 이 대통령은 골목 시장을 방문하면서 ‘서민 경제 살리기’를 외치고, 정부와 여당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 강화’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고 왜 집권 1년 반이 지나가는 지금 ‘중도 강화’가 나왔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와 우파 진영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 강화’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흘러나왔다. 철저한 진영론(陣營論)이 초래한 부정적인 결과이긴 하지만 ‘중도 강화는 사기’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하였다. 현 정부의 ‘중도 강화’는 일종의 ‘사기’라는 것이다. 우파 진영에서도 ‘중도 강화’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물론 ‘중도 강화’에 대한 긍정적인 해석도 있었다.
여기에 정치적 해석도 뒤따랐다. ‘중도 강화’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 고려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최근의 여론 조사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한다. 2008년의 촛불 정국과 2009년 조문 정국을 거치면서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는 초라하게 낮아져 20%대를 맴돌았다.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도는 정부 정책의 추진력을 떨어지게 하고 중간 평가의 성격을 지닌 보궐 선거, 2010년에 치러질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청와대의 일차적 관심사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국면 전환이 필요하여 ‘근원적 해결’과 ‘중도 강화’를 들고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중도 강화’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 대답은 국민들의 주관적인 이념 성향에서 찾아진다. 한 조사기관의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이념 성향을 중도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보(좌)나 보수(우)보다 많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진보가 27.2%, 중도가 38.9%, 보수가 28.0%이다. 따라서 중도는 정치인들에게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낮은 지지율로 고민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중도 강화’를 들고 나온 것은 수긍할 만하다.
이 보고서는 (1) ‘좌ㆍ우ㆍ중도’의 대한 이념적 특성 (2) ‘중도 강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 (3) ‘중도 강화’ 이후 나온 정부의 정책 변화를 분석하고 (4) 정책 변화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문맥에 따라 ‘보수’와 ‘우’, ‘진보’와 ‘좌’를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필자/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 이 글은 자유기업원 홈페이지(https://www.cfe.org)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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