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커버스토리] 좌파인물 15인 선정의 ‘억지와 위선’?

자유기업원 / 2010-01-28 / 조회: 2,147       위클리경향

ㆍ“이분법적 사상 잣대로 재단”… 선정 인사들 “언급할 가치 없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사상이 무엇인가를 정립할 필요성을 느끼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히려 뒤틀리고 비겁한 시대 역행적 인식과 사고체계가 우리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만든 역동적이고도 빛나는 현실과 달리 우리의 인식과 논리체계를 지배해온 것은, 통칭하여 ‘좌파 사상’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지난해 11월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의 ‘친북행위 인명사전’ 편찬 기자회견장에서 선정 기준을 두고 보수단체 인사들끼리 설전을 벌이고 있다. <억지와 위선>저자 가운데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과 김성욱씨는 이 단체의 집행위원이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억지와 위선-좌파인물 15인의 사상과 활동>의 머리말에 ‘저자일동’ 이름으로 올린 책 발간의 취지다. 공격은 무차별적이다. 선정한 인물 가운데에서는 왜 그가 좌파로 거론돼야 하는지 고개가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인물들도 있다. 게다가 이들이 15인의 사상과 과거 행적을 파헤치겠다고 밝힌 키워드는 ‘억지와 위선’이다. 이들은 15인으로부터 어떤 억지와 위선을 발견해 냈을까.

첫 번째 선정 인물부터 파격적인 주장이다. 책은 리영희 한양대 명예교수에게 ‘한국 친북좌파 사상의 대부’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면서 첫머리에 내세웠다. 책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모택동 체제에 대한 공개적인 존경을 표시할 수 없었지만, 리영희 교수는 모택동주의자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간다.

리영희 교수는 김일성주의자?
“김일성과 김정일 체제에 대한 애절한 동경을 가지고 있는” 리 교수는 “한국사회가 가야 할 방향과 모델이 항상 사회주의와 북한”으로 생각하고 있는 김일성주의자라고 책은 단정짓는다. 해당 부분을 기술한 저자는 “그래서 리 교수가 이름도 북한식 표현인 리(李)를 고집하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작고한 음악가 윤이상씨에게 걸린 혐의는 더 무시무시하다. “북한의 조종을 받아 활동한 북한 문화공작원”이다. 특히 북한에서 윤이상이 높게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과 김일성과의 면담 등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으면서 “윤이상은 김일성에게 충성”했다고 강변했다. 이 글의 저자는 결론적으로 “윤이상이 세계적 음악가로 평가받는다면 그만큼 그는 대한민국에 더 위험한 존재이며, 보수집권세력마저 윤이상을 추모하는 것은 자해행위이며 국가적 자살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른 인물평도 엇비슷하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창작과 비평>을 통해 좌파 세력에게 각종 통일논리를 제공해 왔으며, 통일에 관한 그의 주장은 양비론으로 위장한 전체주의 북한의 옹호다.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은 환경운동의 외피를 걸친 반미운동가다. 박원순 변호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서는 가혹한 비판을 하는 데 비해 북한에 너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의 잣대에 따르면 철학자 김용옥도 친북좌파다. 저자는 “도올의 북한 인식은 레토릭의 차이는 있지만 좌파세력의 대북인식과 놀랍도록 흡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지능적으로 대한민국을 허무는 좌파지식인’이다.

책에 실린 인물평의 잣대는 미세한 편차가 있다.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평가의 잣대는 이념이라기보다는 ‘처세술’이다. 책에 따르면 영화계의 신좌파로 선정된 박찬욱의 영화는 한국적인 것은 없이 문화사대주의로 연명하며, 박찬욱은 이런 약점을 스타캐스팅으로 뛰어넘는 마케팅의 귀재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으로 설 곳이 없었던 신해철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비겁자 정서’에 기댄 신비주의 전략이다. 책은 7명이 나눠 저술했다. 리영희·백낙청·송두율·서중석은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윤이상·박원순·최열은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 한홍구·김용옥은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유시민·진중권은 변희재 실크로드CEO포럼 회장, 박찬욱·신해철은 이문원 주간 미디어워치 편집장이 각각 맡았다.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한 글은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 장하준 교수에 대해서는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이 각각 맡아 기술하고 있다.


<억지와 위선- 좌파인물 15인의 사상과 활동> 표지.

비평의 대상이 된 쪽의 반응은 어떨까. 대부분 “언급할 가치도 없다”는 반응이다. 환경재단 홍혜란 사무처장은 “신문 보도를 접하고 최열 이사장에게 책을 한 권 사다 드렸는데 지금까지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면서 “환경연합 등의 활동은 이미 자체적인 조직의 강령과 평가가 있으니 딱히 반론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도서출판 창비의 염종선 편집장은 “진지하게 대응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논쟁은 얼마든지 가능하겠지만 내용을 보면 그야말로 색깔론 뒤집어씌우기이기 때문에 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현재 ‘리영희 평전’을 집필하고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전 대한매일 주필)은 “리 선생의 저서들은 반공의 렌즈로 왜곡돼 있던 중국이나 북한사회주의의 실상을 명증한 시선으로 밝혀 준 것이지 본인이 사회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자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리영희는 사회주의 지성이 아닌 비판적 지성이라고 보는 게 옳다”면서 “이들이 들이댄 잣대는 중세시대의 마녀사냥과 같은 도그마로서 반지성 행위가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재단법인 통영국제음악제의 이용민 사무국장은 “윤이상 선생은 우리와는 달리 교류가 있었던 동·서독 분단 국가에 거주하면서 어느 쪽을 편들 생각이 아니라 한반도 자체를 조국으로 생각했다”면서 “그 과정에서 독재정권 시절 남쪽의 실정법을 어겼다는 것이 더도 덜도 말고 있었던 정확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음악가로서 윤이상이 세계적인 인물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데 그것까지 폄하하고 폄훼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중세 마녀사냥 잣대와 뭐가 다른가”
리영희·백낙청 등을 맡아 쓴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은 “우리사회의 대표지성이라면 북한체제에 대해서도 보편적 논리를 가지고 발언했어야 하지 않나”라고 되묻고 “인터넷만 뒤져 보더라도 모두 그 사람들의 말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들은 ‘좌파인사’ 15인의 ‘속내’를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이를테면 “리영희의 대한민국 비판의 근저에는 한국이 사회주의로 가지 않았거나 북한과 같은 체제를 만들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김 원장은 “그것은 해석인 건 맞다”고 말했다. 책이 나온 배경도 궁금하다. 책의 공동저자인 김 원장과 김성욱 한국자유연합 대표는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을 편찬하겠다고 밝힌 국가정상추진위원회(위원장 고영주 변호사)의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김 원장은 “국가정상추진위원회는 범법 사실 위주로 다룰 것이고, 자세한 진행 경과는 잘 모른다”면서 “그쪽 일과 이번에 낸 책은 별개”라고 말했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박사는 “진보 진영에서 보수인사를 비판한 적은 있지만 보수적 철학을 지녔다는 것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의 경우와는 다르다”면서 “덮어놓고 이분법적 사상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출판사에 따르면 이 책은 12월 발간된 이래 총 1만부가 팔렸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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