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주도 상생 문제없나]
대기업들 원가부담 높이고 中企 납품시장 축소 부메랑
"단기 이벤트는 효과 반감 자발적으로 해야 지속 가능"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드라이브가 지속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가 약하고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동반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장원리에 어긋나는 일방통행식 상생 강요는 결국 ‘시장의 저주‘를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시장 메카니즘을 무시한 상생 압박이 결국 대기업의 원가부담을 높이고 중소기업의 납품시장 규모를 축소시키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지적이다.
아울러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정부의 상생 드라이브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속가능한 상생이 되도록 여건을 조성해주고 유도해야 할 정부가 보여주기식 상생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이다.
◇지속 가능에 의문=정부의 거센 상생협력 압박에 직면하고 있는 대기업들 사이에선 요즘 더블딥 위기론을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다. 실적이 나빠지면 상상 압박도 자연스레 수그러들 것 아니냐는 계산에서다.
재계의 예상대로 3ㆍ4분기 기업 실적은 전분기에 비해 안 좋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4ㆍ4분기 실적 역시 더 부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2ㆍ3차를 포함해 9,000개 남짓한 협력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ㆍ4분기 8.1%와 7.1%에서 3ㆍ4분기 7%와 6.5%, 4ㆍ4분기 6.8%와 5.3%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드라이브가 대기업 이익 감소라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장애물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시장원리를 무시한 채 ‘이익 많이 낸 대기업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도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자충수인 셈이다.
상생협력의 재원 역할을 하고 있는 대기업이 어려워지면 더 이상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힘들어질 게 뻔하다.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정부가 쫓기듯 너무 서두르고 있다"며 "강압적으로 하는 상생 강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이벤트성 상생은 효과 없어=정부의 일방적인 상생협력 드라이브가 대-중소기업 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많다. 대기업 관계자는 "참여정부가 5년간 상생협력을 강권했음에도 다시 상생협력을 하라고 강요하는 건 참여정부 주도의 압박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걸 의미한다"며 "상생은 필요에 의해 자발적으로 해야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벤트성으로 상생을 강요하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이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상생대책이 중소기업에 주는 단순한 단기적인 혜택으로만 이뤄진다면 별 효과가 없다"며 "오히려 중소기업 정책은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킨다거나 영세성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 경쟁력 약화 우려=전방위적인 상생 압박이 대기업의 경쟁력만 갉아 먹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에서는 지난 99년 부도를 내고 현대차에 인수된 기아차 사례를 떠올린다. 기아차 인수후 경영진단에 참여했던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인수되기전 기아차의 부품 구매업무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며 "납품단가를 시장가격보다 올려주고 부당이득을 챙기는 관행이 결국 기아차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문제점 중 하나였다"고 회상했다.
원청업체인 대기업 입장에서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기술력, 가격경쟁력이야말로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의 혁신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추고 생산성을 높여 부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단지 협력업체들의 납품단가만 올려주는 식의 상생 강요는 결국 대기업들의 경쟁력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게 대기업들의 공통된 걱정이다.
◇시장 원리 훼손하면 역효과 불러=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 시장원리를 무시하면 중장기적으로 중소기업들이 더욱 어려워지는 결과가 생긴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 교수는 "정부가 하고 있는 방법은 대기업들로 하여금 중소기업에게 온정을 베풀라는 것"이라며 "온정을 베풀면 베풀수록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대기업들에게 종속이 돼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의 상생협력 부담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커질 경우 당장은 아니래도 점차 구매선을 국내에서 해외로 바꾸거나 내부 조달할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국내 중소기업들은 납품처 자체를 잃거나 납품물량이 줄어드는 상생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정기화 전남대 교수는 "대기업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보다 싼 가격을 유지하지 못하면 시장을 빼앗기게 된다"며 "비용절감을 위해 납품가격의 적정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강제적인 상생협력은 시장조달에 따른 장점을 줄여 대기업의 내부생산이나 해외 아웃소싱을 증가시키고 그 결과 하청 중소기업의 시장규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규진기자 sk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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