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의 경제 뒤집어보기]
대·중소기업 상생방안 반대하고 DTI 규제 완화 촉구하고…
독과점 향유하려는 보수 기득권층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5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경기테크노파크에서 열린 2010년도 경기도 업무보고를 마치고 한 부품업체를 찾아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대기업의 납품단가 연동제 반대는 독과점을 배경으로 한 횡포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정부는 집권 기간 내내 보수 기득권층으로부터 ‘반시장적’이라고 공격받았다. 특히 부동산 정책은 보수층 공격의 단골 메뉴였다. 그 보수 세력이 요즘 들어 이명박 정부를 다시 반시장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그 첨병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모태인 자유기업원이다. 얼마 전에는 이명박 정부의 지난 2년간 행보가 노무현 정부와 비슷할 정도로 반시장적이라고 몰아붙이더니, 최근에는 18대 국회의 여야를 싸잡아 반시장적이라고 공격했다. ‘친기업’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걸고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을 ‘잃어버린 10년’에서 구해준 해방자로 반겼던 그들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한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 표방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시장 실패 부른다?
한 경제학자는 “요즘 경제 분야 종사자들에게 가장 모욕적인 말은 ‘반시장적’이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반시장적’의 사전적 의미는 시장경제 원리에 상충되거나 위배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지배가 확고한 요즘에는 불온한 반체체 집단이나 사상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게 됐다. 마치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것처럼 말이다. ‘수구골통’들이 진보를 공격할 때 ‘빨갱이’라는 말로 이념 공세를 펴듯이, ‘반시장적’이라도 말도 어느덧 보수가 애용하는 칼이 됐다.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으면 무조건 반시장적이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최근 사회적 화두 중 하나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심화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상생방안 마련이다. 중소기업계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의 최대 원인 중 하나로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꼽는다. 그리고 그 해결책으로 납품단가(원자재값) 연동제 도입을 내놨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부품에 들어가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납품단가에도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연동제가 반시장적이라며 반대한다.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확립을 책임지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런 주장에 동조한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그는 몇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부품 가격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결정되는데, 연동제는 공급자(중소기업)만 고려하고 수요자(대기업)는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 원자재 가격도 구입 경로·시기·물량 등에 따라 달라지는데, 연동제는 이를 무시한다. 셋째, 중소기업들이 원가절감 노력을 등한시할 수 있다. 넷째, 우리나라는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연동제는 가격을 경직적으로 만들어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연동제가 반시장적이라는 논거는 미약하다. 시장경제의 장점은 가격 기능 메커니즘을 통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이뤄지는 것이다. 시장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는 균형점에서 결정된다. 이런 균형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무수히 많은, 자유로운 경쟁 상태를 전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간 하도급 거래는 수요자 독과점 시장이다. 부품을 공급하려는 공급자(중소기업)는 상대적으로 많지만, 수요자(대기업)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 납품단가 결정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소수 대기업에 의해 좌우된다. 대기업은 자기 입맛대로 납품단가를 낮게 책정함으로써 독과점 이윤을 향유하지만, 수많은 중소기업은 적정이윤을 확보하지 못해 빈사 상태에 빠진다. 당연히 경제 전체로는 득보다 실이 크다. 정부는 이처럼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 실패’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다. 시장 실패가 명확한 상황에서 정부의 개입을 반시장적이라고 공격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시장 실패 교정하는 사회적 합의 외면
부품에 들어가는 원자재 가격은 업체별로 똑같을 수 없다. 하지만 전체 부품 원가에서 원자재 가격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동소이하다. 연동제가 중소기업의 원가절감 노력을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근거가 약하다. 부품 원가는 크게 원자재 가격과 기타 비용으로 나뉜다. 기타 비용은 인건비·제조경비·이윤 등으로 구성된다. 원자재 가격이 연동됐다고 해도, 기타 비용에서는 업체 간 원가절감 경쟁이 가능하다. 한 예로 자동차·전자·기계·조선 등에 골고루 부품을 공급하는 주물 업종의 경우 원자재의 비중은 60% 정도다. 따라서 연동제가 납품단가를 경직적으로 만들어 대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약하다.
정부가 실제 연동제를 실시한 전례도 있다. 석유 가격은 1993년까지는 정부가 직접 고시했고, 1994년부터 유가연동제를 거쳐 1997년부터 가격자유화가 됐다. 정부고시제나 유가연동제는 기본적으로는 가격결정 구조가 비슷하다. 5개 정유사의 평균 원유 도입 가격과 생산 비용에 정부가 정한 일정 마진율을 더해서 국내 판매 가격을 정했다. 정유사들의 원유 도입 가격이나 생산 비용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평균치를 적용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전기요금의 경우 내년 하반기부터 원료비연동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전기요금에서 석유·석탄·액화천연가스와 같은 원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60~70%다. 이 원료들의 가격 변동에 맞춰 전기요금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렇듯 원가연동제의 사례가 적지 않은데 중소기업이 납품하는 부품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시장적이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의 한 간부는 “중소기업들이 납품하는 부품은 석유 제품이나 전기요금에 비해 종류가 다양하고, 업체 수도 많아 좀더 복잡하겠지만 기본 시스템은 동일하다”면서 “대기업의 반대는 본질적으로 중소기업과 동반 성장하기보다는 지금처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독과점 이윤을 계속 향유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이런 대기업에 동조하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연동제의 차선책으로 제시하는 방안은 중소기업 조합이나 단체에도 개별 기업처럼 조정 협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에 대해 담합(카르텔)의 우려가 있다고 반대한다. 담합은 ‘시장경제의 공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표적인 반시장적 행위로 꼽힌다. 하지만 담합이라고 무조건 위법은 아니다. 헌법은 노동자에게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3권을 보장한다. 이는 대표적 가격 변수인 임금 결정과 관련해 노동자의 담합을 허용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개별적으로 협상할 경우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동3권은 결국 노사 간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교정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다. 중소기업 단체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을 부여하는 것도 대·중소기업 간에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시장 실패를 교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8·29 대책의 반시장성 비판한 건 오히려 개혁진영
총부채상환비율(DTI) 제도를 부분적으로 완화한 8·29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개혁적 시민단체로부터 오히려 반시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상환 능력은 도외시한 채 국민에게 빚내어 부동산을 사라고 재촉하며 투기를 조장해 정상적인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우리 금융기관의 가계대출 규모는 740조원에 이르고, 이 중에서 주택담보대출은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주택담보대출이 더욱 증가하면 가계 부실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DTI처럼 채무자의 갚을 능력(소득)을 보고 대출해주는 것은 금융의 기본이다. 금융위원회의 고위 관계자는 “2006년 이전에 DTI를 시행하지 않은 게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부동산 가격 하락은 노무현 정부 초·중반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정상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명박 정부를 반시장적이라고 비판해온 보수 진영에서는 이번 8·29 대책을 앞두고는 일제히 DTI 규제 완화를 촉구해, 스스로 반시장적 행위를 했다.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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