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상영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한국사회가 과연 좌우 개념으로 해석될 만큼 처절하고 오래된 정치이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가. 혹여나 우리가 좌우 개념을 너무 얄팍하게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강남좌파, 분당우파를 둘러싼 논쟁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강남좌파는 존재와 사유가 불일치한 정직하지 못한 부류인가. 분당우파는 존재에 충실하여 야당을 지지하지 않았어야 정상인가. 아니다. 나아가 농촌 등 부유하지 못한 지역은 야당만을 지지해야 하는가. 여태까지 그러지 않았다. 좌우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 대답은 쉬워진다. 인간은 경제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주장하기도 하고,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개진하기도 한다. 결국 4ㆍ27 선거 결과는 정치에 대한 인간의 본성과 최근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고려하면 특별할 게 없다.
그럼 좌우 개념은 어디에서 기원하였을까.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왕정(앙시앵 레짐)을 무너뜨리고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보수 성향인 왕당파는 의장석을 중심으로 우측에, 개혁 성향인 공화파는 좌측에 자리했던 데서 유래한다. 빨간색은 1871년 파리코뮌 이래 좌파를 의미했지만, 로마 이후 줄곧 왕과 귀족의 상징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를 나타내는 프랑스 삼색기에서 빨간색은 박애를 의미한다. 하지만 러시아 붉은광장에는 붉은색이 없고 러시아어로 붉은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이란 뜻이며, 중국 홍성기의 붉은색은 복을 나타내는 중국 전통색이다.
한국의 좌우 및 색깔논쟁의 배경이 궁금해진다. 한국은 민주화에 성공하였지만 프랑스나 영국처럼 전통적인 시민혁명 과정은 거치지 않았다. 시민사회나 부르주아의 역사적 성장 과정이 결여된 채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을 겪어 좌우 개념이 대립적이고 표피적인 형태로 이식되었다. 현재까지 권위주의 정권을 비판하면 좌파 빨갱이로 낙인찍혔던 것이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부시의 재선을 막기 위해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거액을 기부하기까지 한 조지 소로스는 '좌빨'이다. 대북정책에서도 대화와 타협 노선으로 선회한 부시 2기 정부는 좌파로 불려야 한다. 한ㆍ미 동맹을 약화시켰다고 비판하던 일부 언론들은 미군부대 토양오염 복구 비용을 한국 정부가 부담하기로 하자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이 비판은 민족주의적 시민단체가 할 일이다. 보수언론을 자처한다면 한반도 안보를 위하여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한 미군 측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칭찬했어야 정상이다. FTA를 봐도 그렇다. FTA는 안보조약보다 더 깊숙한 경제동맹이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왜 서로 입장이 변했는지 소위 좌우 개념에서 보면 혼란스럽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좌우이념에 기초한 해명이 가능하다면 한국 정치는 더 발전적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을 좌우로 구분하여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렴과 공헌이 우파의 조건이라면, 희생과 단결은 좌파의 조건이다. 한국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는 좌우이념의 역사적ㆍ정신적 토양이 빈곤하다. 서구의 좌우 개념이 한국에 와서 난파되었다.
물론 이념정치가 정착되었던 나라에서도 이념은 약화 추세에 있다.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의 득표 합계가 1950년대에는 90%를 넘었지만 2010년에는 60%를 하회하고 있다.
친서민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 2기의 한나라당은 반시장적이고 한국에는 중도우파 정당도 없다는 자유기업원의 분석은 또 다른 극단이다. 제대로 된 보수와 우파는 시장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안다. 미국의 '따뜻한 보수' 노선과 빌 게이츠 등이 제안한 기부캠페인(The Giving Pledge)은 미국 보수우파가 갖는 건강성이다. 정파 이익을 위한 이념공세가 아닌 정책적 차별성에 기초한 좌우이념 경쟁은 한국의 정책논쟁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 약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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