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할아버지 제발 살려주세요.” “저는 꿈이 있어서. 소고기 먹고 죽기 싫어요.” - 2008.4.29 MBC PD수첩이 방영된 다음날 청와대 홈페이지 “오늘 회식으로 차돌박이 등심을 실컷 먹었는데, 고기를 잘라주던 아주머니가 ‘미국산도 먹을 만하죠’라고 했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열심히 살면 뭐하나, 광우병 생기기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2011년 3월 말 블로그 전문 T사이트 게시판 ‘2008년 봄 2개월 넘게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광우병의 망령은 아직도 살아 숨쉰다.’
광우병 파동이 일어난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는 당시 만들어진 각종 괴담과 여론조작이 남긴 상처의 골이 깊다. 식당에선 미국산 쇠고기가 불티나게 팔리는데도 광우병 루머는 천안함 루머로 대를 잇고 있다.
광우병 파동의 진실과 그 교훈을 성찰해보는 ‘광우병 파동과 진실의 소리’ 토론회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자유기업원, 자유주의정치포럼,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당시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된 MBC PD수첩 번역 관련 감수자 정지민씨의
발표문이 대독되면서 시작됐다.
최근 교통사고를 당한 까닭에 이날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정씨는 발표문을 통해 “당시 PD수첩의 잘못된 보도를 폭로한 것은 정의나 선과는 무관하며, 단지 틀린 것을 틀렸다고 하는 단순한 일의 연장선이었다”고 밝혔다.
정씨는 “내가 가장 화가 났던 이유는, 항상 그랬듯이 인간광우병은 아닐까 하는 흥미 차원의 보도가 있었다는 단순한 내용을 마치 대단한 위험이 있는 것처럼 엉터리 이야기로 꾸며낸 그것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초기에 문서 번역을 하고 나서 허무맹랑한 방송기획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방송이 실제 맥락과는 전혀 무관한 내용의 편집과 오역자막으로 나가게 된 것을 알게 된 후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정씨는 당시 PD수첩 제작진이 미국 농무부 자료에 나온 ‘a variant of CJD(vCJD)’라는 구절에 대해 a variant of CJD가 vCJD와 같은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에 반박, 미국 농무부 자료에는 ‘CJD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vCJD라는 의미’라고 지적해 ‘a variant of CJD’가 인간 광우병이라는 오보에
맞선 인물이다.
즉 “CJD의 유형에는 sCJD, fCJD 등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에서 인간 광우병은 vCJD에 해당한다. 따라서 ‘a variant of CJD’가 인간 광우병이라고 하는 내용은 거의 오보라는 것이 보건 당국의 공식 입장으로 안다”라고 정씨는 강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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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서울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자유기업원과 자유주의포럼,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가 주최한 ´광우병 파동과 진실의 소리´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
광우병 파동은 2003년 미국의 광우병 발생으로 중단됐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2008년 4월 ‘뼈와 내장을 포함한 30개월 이상, 대부분의 특정위험 부위를 포함한 30개월 미만’으로 협상돼 체결되면서 일어났다.
체결 직후인 같은 달 29일 MBC PD수첩은 ‘긴급취재!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편을 방송하면서 논란이 확산됐고, 이어 청계광장을 중심으로 촛불시위가 발생했다.
농림부는 그해 6월 PD수첩을 대검찰청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정정 및 반론권을 얻어냈다. 그러나 정운천 전 농림부장관 등이 PD수첩 제작진 6명을 상대로 고소한 명예훼손 부분에선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무죄판결을 내렸다. 현재 관련 민·형사 사건 모두 대법원에서 마지막 판단을 기다리는 중이다.
정씨는 “주관적인 정치 견해나 호불호는 논리, 문법, 수사의 기반 위에서 개개인이 양심껏 결정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장만 하는 행태를 많이 봐왔다. 촛불시위도 어떻게 보면 그런 토양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현실에서 당연한 결과로 본다”고 했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소를 이용해 만드는
화장품, 생리대, 기저귀를 써도 광우병에 전염된다’라든지 ‘한국인 95%가 광우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갖고 있다’, ‘미국에서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는 강아지 사료로도 사용 안 한다’ 등의 광우병 10대 루머가 난무했다.
또
인터넷 포털에서는 촛불시위 기간에 정부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뒤 이를 초당 7~8회 자동클릭하게 하는 일명 ‘키보드 동전끼우기’ 기법으로 90만번 클릭하게 만든 클릭조작 사건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은 “당시 촛불시위를 유발시킨 PD수첩은 그 장르가 분명 과학 다큐멘터리였는데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의 근거 있는 자문을 빼놓음으로써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한 편집위원은 “미국에서 인간 광우병 환자로 의심받던 아네사 빈슨을
인터뷰하고 돌아온 PD수첩은 귀국 이후에 나올 예정이던 검사 결과를 확인조차 안했다”며 “당시 보상금을 노린 아네사 어머니의 일방적인 주장만 보도하면서 최소한의 양심도 저버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렇게 된 원인은 PD수첩이 황우석 교수편을 방영한 이후 교만해진데 있다고 본다”며 “취재 결과 이런 저런 원인이 있었는데도 이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소위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간 것”으로 방송을 평가했다.
아울러 “방송은 일종의 공공재산으로 그 구성원도 선량한 관리자의 역할을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자기검증이 없었다”면서 “이런 문제는 인터넷 포털에서도 여론 조작, 클릭수 조작 등으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어 앞으로 철저한 감시와 비판이 필요하다”고 한 편집위원은 말했다.
이재교
변호사(시대정신 상임
이사)는 “광우병 시위 선동자들의 거짓논리는 이명박 정부와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에게도 트라우마를 안겼다”며 “결국 국민들은 선동자에게 속고 이어 자신마저 속이려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말을 믿고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은 위험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이를 믿지 않고 정부에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어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인지부조화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이들의 광우병 시위 원인에는 정부의 졸속협상 등도 있지만 이는 미국산 쇠고기에 인간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 전제될 때 비로소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불쾌하게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분노하는 현상을 심리적 상처로 봐도 과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광우병 파동 이후 심지어 초등학교에서 쇠고기 안 먹는 경우도 있었다는데 이것이 순수한
채식주의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가 분명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속성이 있다.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은 당시의 집단 히스테리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기 싫을 것”이라면서 “오늘 만약 ‘광우병, 아직도 위험하다’란 제목으로
세미나가 열렸다면 이 공간이 보다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을 것”이라고 했다.[데일리안 = 김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