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미래’ 출판기념회
민주화 선봉에 섰던 이들 모여 한국의 민주주의 진단
안병직(75) 서울대 명예교수(시대정신 이사장)가 펴낸 ‘보수가 이끌다-한국 민주주의의 기원과 미래’ (시대정신 펴냄) 출판기념회를 기해 60,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과거 저명한 좌파 이론가였으니 지금은 신우파 운동을 대변하는 안병직 교수의 증언이 담긴 신간의 서평을 통해 한국민주주의의 발전에 보수 세력이 과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심도 깊게 진단하는 자리였다.
이날 안 이사장은 몸이 불편한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으며, 공동 필자 가운데 김세중 연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시대정신 발행인),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가 참석했다. 서평 발표자로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부영 민주·평화·복지포럼 상임대표,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참여했다.
이 밖에 김석우 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 원장,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소장, 나성린 국회의원, 라종일 전 우석대 총장, 이성권 시민사회비서관,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최강식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 등 100여명의 인사들이 출판기념회를 지켜봤다.
책에서 ‘증언’ 편을 통해 박정희 시대였던 1960~70년대 겪었던 좌익민주화운동의 이면을 폭로한 안 교수는 “표면적으로는 민주화를 내걸었지만 당시 좌익의 핵심 사상은 북한과 같은 인민민주주의나 신민주주의였다. 이는 민주주의 실현과는 관계가 없고 비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길인 인민혁명을 추구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안 교수는 “우리 사회에 종북 좌파의 뿌리가 깊다”며 “인민혁명당, 통일혁명당 등 대표적 간첩사건에 대한 수사기관의 발표 내용은 대개 사실이었다”고 고백했다.
안 교수는 “좌파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좌파의 존재는 존중했다”면서 “그러나 진보 쪽에선 보수와 진보의 대결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서평을 맡은 이들 중 진보 진영 인사들은 보수와 진보,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대화를 통해 화해와 상생을 이루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하면서도 지난날 보수 세력이 권위주의와 독재라는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고, 진보 세력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담론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먼저 김세중 교수는 출판기념회의 인사말을 통해 “일각에서 민주화운동을 한 분들이 주로 민주주의를 해온 것으로 인식돼 있다”면서 “그런 면도 인정하지만 보수 세력이 우리나라에 민주주가 도입부터 이를 지켜냈고, 오늘날까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가 펼쳐지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던 점이 무시되어왔던 측면을 밝혀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책을 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저자 대표로 서평을 맡은 김주성 교수는 “민주화운동이 불붙었던 박정희 시대를 되돌아볼 때 누가 대통령이 됐어도 민주주의를 실행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권위주의를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군사 권위주의 속에서 자본주의를 완성시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87년 민주화가 달성됐다”고 평했다.
더불어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안 교수가 이끄는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학자들과 백낙청 교수가 이끄는 ‘착장과 비평’ 학자들이 만난 한 모임에서 시작됐다”며 “이제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지나온 역사와 개척할 미래에 대해 마음을 열고 합칠 때”라고 강조했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우리는 지난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만 되면 매사가 다 잘 풀릴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민주화가 된 이후에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게 됐다”며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고민사항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이 책의 집필진은 오늘의 우리 민주주의가 빠져 있는 그 같은 기능 장애를 보다 본격적인 공화주의적, 다원주의적, 규범적 처방으로 치유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극좌 흐름은 1960년대와 70년대 민주화운동을 자기들 쪽으로 끌어가려 했지만 결국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안병직 선생은 증언했다”며 “이제 민주화 운동을 대한민국의 민주화로 가져가려는 입장에서 더 이상 반 대한민국 혁명에 대해 침묵해서도 안 되고 못 본체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부영 민주평화복지포럼 상임대표는 “사실 지금의 진보나 보수나 주도적 역할을 하는 분들은 같이 민주화운운동을 했던 형제와도 같은 사이 아니냐. 그런데 논쟁하는 걸 보면 두 진영은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논쟁을 벌인다”며 “이념·계층·세대·지역 등으로 나뉘어 너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더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권위주의와 독재에 대한 보수의 침묵에는 불편한 게 사실”이라며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보편적 복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권위주의가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낳았다지만, 민주화를 이룬 다른 국가들도 다 그랬던 건 아니다. 더구나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분들이 친위 쿠데타를 미화하는 건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이 화해를 이룰 수 있는 논거가 이 책에 제시되어 있다는 점은 뜻 깊다”면서도 “하지만 산업화·보수세력이 주류로 자리했던 역사 속에서 명명백백히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했던 점은 인정하지 않고 ‘화해’를 말하면 피해자의 입장에선 거북하지 않겠느냐”며 선을 그었다.
그는 “2008년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거리정치의 과대 팽창, 참여 민주주의의 과잉은 민주주의의 왜곡이자 폐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거대 국가에 대응하는 시민사회의 자구적 응전이란 점도 간과할 수 없다”며 “특히 현 정권에서 지배층 스스로 병역, 납세 등에 대한 구설로 국가와 정치공동체, 공공선의 존재를 무력화시키고 시민들에게만 공적시민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책은 보수와 진보가 소통을 하기 위한 ‘자기성찰’이 나타나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소중한 자료라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데일리안 = 김숙현ㆍ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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