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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6일 서울 국세청 강당에서 열린 공정과세 실천결의문 선포식에서 이현동 국세청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대기업의 경영권
상속 문제가 우리 사회의 핫이슈로 부각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에서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겠다며 상속 증여세법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공정위의 부당내부거래조사, 국세청
세무조사, 정부의 강요에 의한 내수가격 인하, 국민연금을 동원한 오너경영 견제 추진 등 전방위압박에 휘청거리고 있는 재계로서는 또 한번의 강한 펀치를 맞고 있는 셈이다.
경제팀 수장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국회 상임위에서 재벌의 비상장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의 편법 상속에 대해 과세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김성식 한나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9월 정기국회에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을 내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도 가세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최근 “대기업들의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계열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가 편법 증여에 이용된 의혹이 있다”면서 “대기업 오너 일가가 MRO를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법을 개정해서 과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명박 정부가
성장과 효율 등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 친서민, 공정사회, 상생, 동반성장 등 좌파적 이데올로기로 방향을 전환한 후 대기업을 옥죄는 정책이 가속화하고 있다. 대기업들의 경영권 상속 규제는 재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으로 재벌개혁의 정점이 될 수도 있다. 과거 좌파정부인 김대중 노무현정부가 추진한 재벌개혁을 보수우파정부가 충실히 승계해서 재벌들을 옥죄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기업의 부의 편법 승계 논란은 왜 일어나는가? 이는 현행 상속 증여세율이 지나치게 가혹한데서 비롯되고 있다.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나면 대주주 지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불가능하도록 돼 있는 것.
법이 대기업들로 하여금 편법과 불법 탈법상속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왜 그런가? 현행 상속세율은 최대 50%에 달한다. 1조원을 물려줄 경우 500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최대주주의 지분을 이어받을 경우 30%의 가산세가 붙는다. 대기업을 경영하는 부친으로부터 2세가 가업을 이어받으려면 무려 65%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1조원의
주식이나 부동산을 상속받으려면 무려 6500억원의 상속세를 납부해야 하는 셈이다.
대주주가 100%의 지분을 갖고 있다면 45%의 세금을 납부하고 35%의 지분으로 경영권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수년전 1조원대의 상속 증여세를 내고 경영권을 물려받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당시로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신세계의 경우 정 부회장의 모친인 이명희 회장 등 오너일가가 50% 이상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천문학적인 세금을 내고도 경영권 상속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들의 경우 오너의 지분이 대부분 10%미만인 것을 감안하면 경영권 상속세율 65%는 사실상 재계의 경영권 승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영권 승계시 주식과 부동산 등 재산의 65%를 내고 나서도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살아남을 기업은 거의 없다.
공장을 팔든가, 주식을 국가에 현물로 납부하든가, 사옥을 매각하든가, 기업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든가 해야만 무거운 상속세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과도한 상속세율은 인간의 이기심과 이윤동기가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부정하는 것이다. 오너가 피땀 흘려 번 재산을 사회와 국가에 내놓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속세율 65%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가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경영권 상속세율을 이처럼 대폭 올려놨다.
우리나라 상속세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자유기업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 123개국 중 71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좌파들이 복지천국으로 찬양하는 북유럽 스웨덴은 물론
캐나다 뉴질랜드 홍콩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라들은 상속세를 아예 없앴거나, 폐지할 예정이다.
이는 상속세를 과도하게 낼 경우 기업자산 매각은 물론 경영권이 넘어가거나, 회사가 문을 닫는 부작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주요국가 중 상속세를 유지하는 나라는 일본(50%), 미국(45%), 프랑스와 영국(각 40%)등이다. 이들 국가의 상속세에 비하면 한국은 상속세율이 가장 높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징벌적 세율이라는 게 재계의 불만이다.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도 기업을 상속한 사람이 경영을 계속하는 동안은 과세를 이연해주고, 주식을 매각하는 시점에서 비로소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높은 상속세율은 기업인의 기업하려는 의욕을 떨어뜨리고, 자본의 해외 탈출을 부추기는 측면도 없지 않다. 결과의 평등을 지독하게 강조하는 한국적 평등주의가 기업 경영권 상속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은수저 물고 태어난 아이와 나무젓가락 물고 나온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해선 안된다는 논리다. 인생의 출발선상에서 부자아이들에 비해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모래주머니를 차고 뛰게 해서는 경제민주화가 이룩될 수 없다는 논리가 팽배해 있다. 한국은 참으로 정의가 넘치는 사회다.
상속세를 없애거나 줄이자고 하면 좌파 시민단체와 야당등의 정의의 사도들이 흥분하며 결사항전한다. 이들의 넘치는 아드레날린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보수정권인 이명박정부마저 부자정권, 재벌정권이라고 비난하는 야당의 프레임에 갖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상적인 경영 상속이 어렵다보니 대기업의 탈법및 편법상속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편법 상속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태광산업이 대표적이다. 태광산업은 비상장사 활용과 계열사 몰아주기 지원으로 후계구도를 완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호진 회장이 티시스, 티알엠 등 100% 소유한 비상장사를 세운 후
증자 때 실권했다. 대신 그 지분을 당시 중학생인 아들이 인수토록 했다. 회장과 어린 나이의 2세가 100% 지분을 갖게 만든 후 태광산업 등 그룹계열사들이 일감 등을 이들 비상장사에 몰아주도록 했다. 비상장사는 외형이 커지면서 역으로 태광산업 등 모기업의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 상속을 마무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태광 만이 아니다. 대기업은 물론 상당수 중소 중견기업들이 비상장사를 동원한 편법상속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에서 대기업들만 표적으로 감시, 규제하고 있어 대기업들의 편법 상속은 쉽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중견 중소기업들은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편법 승계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대차도 정몽구 회장과 아들 정의선 부회장이 2001년 50억원을
투자해 물류업체인 글로비스를 설립한 후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수천억원의 차익을 거두면서 편법 상속의혹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값싼 이마트 피자를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조선호텔 베이커리도 이명희 회장과 2세가 주식의 40%가량을 갖고 있다. LG도 비상장사인 서브원을 통해 그룹 및 협력업체의 MRO 사업을 싹쓸이한 후 향후 3세의 경영권자금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결국 과도한 상속세율은 기업들의 편법 상속만 부추길 뿐이다. 세금없는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겠다는 정부와 여당의 공정의지는 국민적 공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기업인의 기업심을 북돋우고, 피붙이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싶은 본능과 이기심도 존중돼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돌아간다. 이를 조화시켜야 한다. 경영권을 지킬 수 없을 정도의 상속 및 증여세를 내기위해 위장 및 비상장사를 만들어야만 하는 게 한국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증오로 가득찬 상속세제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유지, 발전에도 역행한다.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사회에 귀속시키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경제와 다를 게 없다. 기업인의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사회에 귀속시키면 기업인이 피땀 흘려 일하지 않는다. 일할 의욕을 상실한다. 기업은 성장을 멈추고, 쪼그라든다. 일자리도 없어진다. 국민들의 소득이 줄어들고 빈곤의 악순환에 빠진다. 경제는 만성침체의 늪에 빠진다. 인간의 이기심과 이윤동기를 무시했던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정을 반추해야 한다.
증오와 질투심의 경제를 걷어차야 한다. 인간의 합리적인 이윤동기와 이기심을 발현시키는 발전친화적인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정부나 여당은 편법 승계의혹에 대한 단죄만 할 게 아니다. 승계가 합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 중소기업은 이미 가업상속 공제제도를 만들어 상속세 부담을 낮춰줬다. 반면 재벌이나 대기업은 엄격한 규제에 신음하고 있다. 뿌리깊은 반재벌정서도 걸림돌이다. 경영에 성공해서 기업가치가 커질수록 승계에 관한 한 승자의 저주에 빠져있는 것이다.
한국은 오너경영이 경제발전에 주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10년, 20년 앞을 내다보는 중장기 경영이 오너경영의 장점이다. 신속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것도 오너경영의 경쟁력이다. 지난 외환위기 때는 대기업의 선단식 경영의 폐단만 부각돼 30대그룹 중 16개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었다. 정부의 외환관리 실패 등이 더 큰 문제였지만, 재벌이 외환위기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몰매를 맞은 셈이다.
반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삼성 현대차 LG 등 대기업 오너경영이 빛을 발했다. 주력산업의
수출이 급증하고,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급증했다. 순익도 커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경제를 신뢰하며 한국물을 대거 사들였다. 한국이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한 요인으로 주력산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마케팅을 전개했던 대기업 경영이 꼽히고 있다.
미국식 전문경영인들의 단기수익중시 경영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너경영은 2, 3세에게까지 가업을 물려주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초기 적자를 무릅쓰고 과감한 베팅을 하면서 경쟁력을 키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해가는 게 최대 장점이다.
대기업들의 경영상속을 무조건 죄악시하는 것은 국가경제에 백해무익하다. 경제발전도 저해시킬 뿐이다. 징벌적 수준의 상속증여세율을 낮춰 대기업 오너들이 기업심을 왕성하게 발휘하도록 하는 게 국가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 대기업들 대부분은 좁은 내수시장보다는 밖에서 벌어 안을 살찌우는 수출산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앞으로 4만, 5만달러까지 도약하려면 이들의 기업심을 북돋워야 한다.
상속세를 완전히 폐지해달라는 일부의 주장은 국민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뿌리깊은 반재벌정서를 감안하면 스웨덴 뉴질랜드 캐나다식의 상속세 폐지는 격렬한 저항에 부딪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경제팀장인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상속세율 인하를 추진했다가 좌절한 것도 부자정권, 친재벌정권이라는 야당의 정치공세를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과도한 상속 및 증여세율을 낮추는 것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가산세율 30%는 없애야 한다. 기업인들이 정당하게 세금을 내고 경영권을 물려줄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탈법과 편법을 부추기는 법은 법적 타당성을 상실할 뿐이다.
미국처럼 상속 때 당장 과세하지 않고, 상속자가 주식을 팔아 현금화할 때 과세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하다. 스웨덴 발렌베리그룹처럼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기업은 고용유지및 투자확대, 중기와의 동반성장에 힘쓰는 대신 기업에는 황금주를 부여해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가능케하는 타협안도 있다.
대기업들이 일정기간 이상 경영을 이어가고, 고용 및 투자확대를 하는 경우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등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마냥 채찍질하는 것보다는 당근을 주는 게 합리적이다.
경제발전은 항상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더 우대하는 경제적 차별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상속을 막는 현행 세제는 경제평등주의를 가져와 국가경제를 정체의 길로 빠지게 만든다.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동정에서 나오는 자비는 인간의 중요한 덕목이지만, 경제 사회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수는 없다고 봤다. 그는 <국부론>을 통해 경제 사회 진보의 동력은 엄격하게 이기적 동기에서 행동하는 다수 대중의 이기심 충족을 위한 열망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복지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열반의 경제(니르바나 경제)’는 실현성이 없는 경제제도이다. 경쟁이 완전하고, 개인간에 재산을 재분배해도 재산이 줄어드는 사람이나 늘어나는 사람이나 모두 기분이 나빠지지 않는 경제, 니르바나 경제는 현실경제에선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효율이 극대화되고, 분배도 평등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열반의 경제는 이상에 불과할 뿐이다.
경영권 상속문제는 워낙 첨예한 사안이다. 상속세를 완화시키자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좌파 시민단체는 미국의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재산헌납 서약운동을 들고 있다. 미국 부시 행정부 당시 상속세 폐지 움직임이 있을 때, 버핏과 게이츠 등이 앞장서 반대한 점도 거론하고 있다.
하지만 편법 상속을 부추기는 상속 증여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손질해야 한다. 기업과 기업인들을 언제까지 탈법과 편법의 양산자로 만들 것인가?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어놓고 이를 강요하는 징벌적 조세제도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을 저해한다.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만 확산시킬 뿐이다.
정부와 재계,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기업과 재벌을 부정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투자와 일자리창출의 주체이자, 경제활력 회복의 견인차인 대기업과 오너들이 왕성하게 경영에 매진하고, 승계 숨통도 터줄 수 있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 매질만 하지 말고, 법을 지켜가며 경영권을 물려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게 최선책이다.
무거운 상속세를 부과해서 기업을 해체하거나, 기업심을 박탈하는 것은 암탉을 못살게 굴어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우매한 정책이다. 보수정부가 좌파시민단체의 반재벌논리에 편승하는 듯한 규제를 양산해서는 곤란하다. 닭장을 쾌적하게 만들어주고, 먹이도 지속적으로 줘서 암탉으로 하여금 씨알굵은 알을 낳게 만드는 게 현명한 정책이다. [데일리안 = 이의춘편집국장 junglee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