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는 여도 야도 없다. 특히 정국운영에 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요즘의 행태는 자신의 정체성을 내던진 것은 물론이고 ‘복지 종결자’의 모습까지도 보인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고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물결을 따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정치인들은 ‘죽은 물고기’들이고, 정치권은 지금 이런 ‘죽은 물고기’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이 와중에도 ‘죽은 물고기’이기를 거부하는 용기 있는 정치인들이 있다. 시류에 편승하는 ‘죽은 물고기’가 아닌 ‘살아 있는 물고기’만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물결이 거세다. 포퓰리즘이라는 물결이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를 두고 “‘보편적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래서일까? 어떻게든 그 ‘흐름’에 올라타려는 정치인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좌파 포퓰리즘은 악, 우파 포퓰리즘은 선?
명색이 집권여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공개방송에 나와 “대기업 하면 떠오르는 말은 착취”라고 말했다. 난 처음 그 뉴스를 접했을 때, 민노당 이정희 대표가 한 말인 줄 알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우파 포퓰리즘 (인기영합)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얘기가 더욱 걸작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반값 등록금’과 서민복지 확대, 전·월세 상한제, 비정규직 대책 등은 모두 헌법적 근거를 두고 있는 좋은 우파 포퓰리즘이다. 민주당의 ‘무상 시리즈’처럼 국가재정을 파탄시키는 나쁜 좌파 포퓰리즘과는 다르다.”
반값등록금은 ‘좋은 포퓰리즘’이고, 무상등록금은 ‘나쁜 포퓰리즘’이라니, 그런 논리가 도대체 어떻게 성립하는 건지 모르겠다. 반값등록금이나 무상등록금이나 그야말로 ‘오십보 백보’ 아닌가. ‘우파 포퓰리즘’이건 ‘좌파 포퓰리즘’이건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들도 그다지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한나라당이 복지를 얘기하면 좌클릭,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대정신이 없고 역사인식이 비틀어진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국민적 요구를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것 자체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기반한 정치 포퓰리즘이 아닌가 되묻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아예 “국민이 요구하는 만큼 복지 확대를 위해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세상에, 국민이 원하는 만큼이라니! 단언컨대 국민은 ‘무한대의 복지’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그 사람은 그 요구를 감당할만한 화수분이라도 갖고 있다는 얘기인지…. 요즘 유행하는 말로 ‘복지 종결자’라고나 할까.
당의 정강정책은 치장용인가
정강정책 전문(前文)에서 “집단이기주의와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에 맞서,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국민통합,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한 대장정에 일로매진한다”고 선언하고 있는 집권여당의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 모양이다.
야당이 보기에도 기가 막혔는지 민주당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금년 1월 우리 민주당이 3+1 보편적 복지정책의 하나로 발표했다. 그때 한나라당이 뭐라고 그랬나. ‘이건 망국적 정책이다, 그리고 세금폭탄이 쏟아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4․27재보선이 끝나면서 한나라당은 표심(票心)을 찾아서 아침저녁으로 진보․보수를 넘나들고 있다. 감세(減稅)철회, 아동무상복지에 이어서 이번에는 반값등록금까지 민주당의 복지정책을 따라하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한나라당은 포퓰리즘도 아니고 표(票)퓰리즘”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그래도 한나라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그런 한나라당을 보면서 문득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말이 생각난다. “죽은 물고기만이 물결을 따라 흘러간다.”
포퓰리즘이라는 물결을 따라 정신없이 흘러가는 정치인들은 바로 ‘죽은 물고기’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정치판은 그 ‘죽은 물고기’들로 가득하다. ‘죽은 물고기들의 사회’라고나 할까.
그래도 ‘죽은 물고기’이기를 거부하는 정치인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주민투표를 무기로 포퓰리즘의 대명사인 무상급식에 저항하고 있다. 야당은 이를 두고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복지전쟁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대권놀음”라고 비난한다. 그러면 또 어떤가? 너도 나도 포퓰리즘, 아니 표퓰리즘으로 흐르는 시대에, 그에 맞서는 것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려는 정치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쾌한 일이다.
지난 7월5일에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포퓰리즘·세금낭비 입법 안 하기 서약식’이 있었다. 자유기업원 등이 주도한 이 운동에 40명의 국회의원이 동참했다(그 중 한 명은 나중에 서약을 철회했다. 현재는 39명 동참).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강길부, 강석호, 권경석, 권성동, 김금래, 김선동, 김성회, 김세연, 김영선, 김정권, 나경원, 나성린, 박상은, 박준선, 배은희, 성윤환, 손범규, 신지호, 심재철, 여상규, 유일호, 유재중, 윤영, 이경재, 이두아, 이명수, 이상권, 이은재, 이종구, 이철우, 이춘식, 임동규, 전여옥, 정양석, 조전혁, 주호영, 진성호, 차명진, 최연희. 이들은 ‘죽은 물고기’이기를 거부한 ‘용기 있는 사람들’이다.
‘죽은 물고기’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전설에 의하면 거센 강물을 헤치며 거슬러 올라간 물고기는 등용문(登龍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이 문마저 뛰어넘으면 용이 되어 승천하는 것이다.
마거릿 대처도, 로널드 레이건도, 1960~70년대에는 내내 시류를 거스르는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역사에 무시할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반면에 그 시절 시류에 따라 움직였던 고만고만한 정치인들은 지금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고 있다. 오늘날 포퓰리즘이라는 도도한 물결을 거스르는 ‘거사’에 동참한 용기 있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미래의 용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
자유기업원(www.cfe.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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