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여, 복지 줄여 ‘감세의 선순환’… 야, 소비 진작 ‘증세의 선순환’
미국 신용등급 강등 사태가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간의 복지 포퓰리즘(대중 영합주의) 및 감세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다. 양측 모두 재정건전성 강화에 동의한다. 문제는 이를 위한 정책 방향이 정반대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과 “감세 철회나 증세를 통해 재정건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충돌하고 있다.
■ 정치권의 재정건전성 논란
미국발 위기를 보는 여야의 시각 차이는 뚜렷하다. 한나라당은 무상복지 정책을 차단하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위기를 막기 위해 감세 기조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각에 잠긴 오바마… 미국의 다음 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9일 대통령 전용헬기 안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헬기편으로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를 찾아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수행 중 탈레반의 공격으로 숨진 미 특수부대 네이비실 장병의 유해를 맞은 뒤 백악관으로 돌아왔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한나라당은 복지확대 정책들이 재정건전성에 타격을 준다는 논리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10일 YTN 라디오에 나와 미국발 위기를 언급하면서 “야당이 무책임한 무상복지 시리즈를 발표하는데, 그게 오히려 재정건전성을 위협한다. 여야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전 원내대표는 전날 자유기업원 주최로 열린 ‘그리스 국가부도, 그 원인과 교훈’ 토론회에서 “정치권이 당장의 표에 목을 걸고 복지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다면, 우리도 그리스와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생각은 다르다. 재정건전성 위기를 가져온 정부가 ‘이명박 정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긴급경제최고위원회의에서 “지난 4년간 이명박 정부에서 재정을 해친 가장 큰 장본인이 부자감세”라고 말했다. 이인영 최고위원은 “두 번의 미국발 금융위기를 접하면서 우리가 가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노선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시점이 됐다. ‘MB노믹스’는 어떤 면에서 미국보다 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에 집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감세선순환이냐, 증세선순환이냐
한국 국가채무는 올해 435조5000억원으로 2007년 299조2000억원보다 45.5% 급증했다. 2008년 하반기 발생한 국제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재정건전성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여야나 진보·보수 모두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재정건전성을 강화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시각차가 있다. 보수는 복지 분야 등 지출 증가를 최소화해 재정건전성을 높이고, 감세를 통해 경제주체들의 활동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감세의 선순환’을 얘기한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세입을 늘리는 것보다 지출을 줄이는 것이 투자·소비 증진 등 경기부양 효과도 크고 조세 저항 등 부작용이 적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에 호응한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감세 철회나 증세 정책으로의 전환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에 악영향을 준다”며 “재정건전성 강화는 불필요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는 세금을 늘려 복지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서민들의 소비를 진작시켜 경제를 살리는 ‘증세의 선순환’을 주장한다. 오건호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대기업들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갖고 있어도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인세를 깎아준다고 투자가 활성화될 리 없다”며 “최소한 다른 나라 수준으로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2008년 현재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5.7%)에 못 미치며 전체 30개 회원국 중 20위에 머물러 있다. 정부의 복지지출 비중도 국내총생산(GDP)의 7.5%로 OECD 평균(19.8%)에 비해 턱없이 낮은 최하위권이다. 낮은 조세부담률을 감안하면 한국은 증세를 통해 재정을 늘리고, 복지를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선진국들보다 많다는 것이 진보의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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