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국사편찬위의 교과서팀‘은 총사퇴하라!

자유기업원 / 2011-10-20 / 조회: 1,352       올인코리아

좌익통일전선 따라가는 좌익수구파
 
김종일 올인코리아 네티즌 논설가 
국사편찬위 교과서팀, 전원 총사퇴하고 새 안 발표하지 마라!

87년 6월 항쟁이란 게 있었습니다. 신문을 통해보면 온 천지에 ‘김영삼’ ‘김대중’ 얼굴만 보였습니다. (조선일보 아카이브로 옛날 신문 한번 보십시오.) 그리고 ‘단신’으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 및 ‘민주 민중 통일운동연합(이하 민통련)’기사가 실렸습니다. 국민들은 ‘김영삼’ ‘김대중’ 이미지에 도취돼서 ‘대통령 직선제’를 원했고, 그리고 기독교적 생명존중 감정에 배치되는 박종철 고문치사에 분노했습니다. “그게 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게 ‘87년 6월의 진상’인 것으로 최소한 97년까지의 일반 국민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한 세대가 지나서 그들의 세상이 된 오늘에 학술논문 보면, ‘민중민주 민족해방 이데올로기’의 사령탑인 민통련이 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으며,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핵심이 민통련이랍니다. 87년 6월 항쟁은 민중민주 민족해방 혁명으로 성격이 규정돼 있는 거죠. 40대 이상이면 모두가 체험했을 시기입니다. 한국 사회에 학생운동권이 명문대학 중심으로 나오니, 명문대학 학연에 엮인 엘리트들이 운동권 주도에 묶여 한 마디도 못합니다. 일반 국민은 억울해서 죽겠습니다. 일반 국민의 대변자가 없습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 박원순씨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허구헌날 좌익기자들이 ‘중도층’ ‘젊은 층’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87년 6월에 은폐된 민족해방이데올로기의 사령탑 민통련에 해당될 급진 좌경세력이 박원순의 배후에 섰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그렇게 권력 잡고 세월이 흐르면 ‘강자’의 입장에 맞춰서 小說이 쓰여지고, 그것을 歷史라고 조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을 것입니다. 우익들만 중요하게 보는 박원순 배후의 급진좌격 극렬세력 문제가 국민 다수가 보는 언론엔 언제나 오르지 않는 점에서, 역사의 죄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87년 6월에 김대중 김영삼 뒤에 있던 민통련을 인식할 수 없던 이들이, 언론프레임에 의해서 국민의 주관적 자아 안의 허상을 통해서 지지했듯이, 한 세대가 지나서 또 똑같은 반응을 하려 하나 봅니다. 과연, 박원순을 향해서 기사 써주는 좌익기자들이 만드는 이미지가 박원순의 실체 이미지와 동일한가요? 87년 10월에 민족해방 이데올로기의 사령탑 민통련은 중대한 일을 벌입니다. 후보단일화입니다. ‘박원순 단일화’ ‘곽노현 단일화’의 원조이죠.

민족해방 이데올로기의 사령탑 민통련 앞에서 ‘민주정부’ 구호에 해당될 ‘노동자 계급 헤게모니’ 문제를 참 왼쪽으로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박식한 김대중은 압도적인 설명을 보입니다. 반면에 민족해방 이데올로기의 사령탑 민통련 앞에서 나왔으면서도 민통련 비위를 맞추는 내용을 70% 이상 말하면서도 끝내 ‘자유민주주의자’라고 두 번 이상 반복합니다. 후보 단일화가 누가 됐겠습니까? 민족해방 이데올로기 사령탑 안의 후보단일화 판가름하는 엘리트는 만장일치로 김대중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이재오씨의 [함박웃음]을 통해 당시의 풍경을 보면, 87년 6월에 ‘민족해방 이데올로기’라는 운동권 동심원 못지 않게 ‘지역주의’가 있었나 봅니다.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서 국회의원 공천 받고 싶은 게 민족해방 혁명보다 앞선 사람들이 꽤 됐나 봅니다. 꽤 많이 상심했나 봅니다. 민족해방 이데올로기 사령탑의 결정에 김영삼을 따르는 이들은 불복했습니다. (따를 이유도 없고 따라서도 안되지요. 이것도 일반 국민이 기억하는 80년대 후반과 다릅니다. 압도적 국민 의지를 김대중씨가 배반한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국민들은 김영삼씨가 민족해방 이념의 사령탑 안에서도 ‘자유민주’란 말을 두 번 되풀이 한 것에 그대로 꽃혔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노태우 씨도 낚였습니다!! 노태우씨는 최근 회고록을 통해서 김영삼을 좋게 본 것에 굉장한 후회를 했습니다. 이는 1880년대 개화파가 일본을 좋게 봤던 시대적 한계와 비슷했다고나 할까요? 김영삼씨가 당선되고 나서 했던 일련의 과정, 그리고 그것이 당시의 국민들이 거부감 느꼈던 김대중 정권에 어떻게 초석이 됐느냐 문제는,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죠. 2011년 입장에서 ‘후보단일화’ 자료집을 보면 ‘자유민주’라고 두 번 반복한 김영삼씨의 말보다, 민족해방 이데올로기의 사령탑 민통련 앞에서 김대중과 후보단일화할 만큼 70% 이상 요소에선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잘 보입니다. 이러한 현재적 감정으로 당시의 상황을 비판하면, 역사학에선 이것을 ‘시대착오주의’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뜻은 이겁니다.

김대중처럼 노동자계급 헤게모니를 잘 이해하는 민주정부(80대 이상의 6.25 참전세대는 그 말의 기원이 박헌영의 ‘인민공화국’임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김영삼씨는 그때 뭘 하셨을까요? 물론, 그 시기에 검증 가능하게 좌파편 든 김대중씨보다 낫겠지만,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책임은 잘못 아는 것 못지 않습니다.) 지향의 역사로 대한민국사를 전복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과 70% 이상은 공유하되 30% 미만 요소만 보수 국민 의중과 타협하는 김영삼을 추종하던 87년 10월 권력의 복제판을 하시려는 겁니까?

이태진 교수님처럼 ‘구한말’ 역사 전문가 앞에서 외람된 말이지만, 한국의 ‘대한민국 사상’에는 사회진화론과 어우러진 기독교 사상과 양명학 중심의 유교애국주의가 얽혀 있습니다. 1919년 3.1 운동 정신은 곧 헌병경찰 제도 하의 망국 노예로서 사는 삶의 떨쳐 일어나는 것이며, 구한말 만국공법 하에 인정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제 사회에 자신의 뜻을 떨치려는 입장이며, 이러한 열망은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 국제 사회(U.N)에 합법정부(LEGAL)정부로 인정 받아서 완수됐습니다.

김영삼 이후 북한도 유엔 가입했는뎁셔? 그것은 북한 김정일 공산정권이 글로벌 수준의 자유민주를 하는 것이 아니며, 반국가단체성이 해소된 게 아니고, 대한민국 합법정부를 봐서 해주는 국제사회 사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정부가 북한의 자유민주화를 포기하면 국제사회는 아마도 한국에 따라가겠죠. 구한말 미국이 일본 편 들자 민족이 일본에 식민지가 됐듯이, 똑같은 역사의 죄를 짓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겠죠.

김정호 자유기업원장님 뵐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사회과학자면서 한국현대사 공부 정말 안했다 싶습니다. 모든 사회과학은 자기 사는 환경과의 치열한 대화 속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의 대부분의 주장은 단순한 수입품이며 87년 이후 권력에 쉽게 접착할 테크닉만 보일 뿐입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장은 박정희를 높이사는 장하준에 ‘독재자’ 편든다며 공격했습니다. (이런 분이 아마도 ‘우등 우익’ ‘현명한 우익’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이끌어 온 쪽은 ‘영리’한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

1919년 3.1 정신의 실체는 망국노비가 된 비참한 심정과 같습니다. 구한말에 간절하게 바랬던 우리 사는 공간이 하나님 나라 되길 바란 감정과 같고요, 농촌 계몽 운동을 통해서 한반도 구석 구석이 국제 사회에서 동등하고 평등하게 인정 받는 나라가 되길 바랬던 마음과 같습니다. 건국은 했지만 6.25 전쟁 초래할만큼 나약했고, 좌익의 시위에 늘 휘청일만큼 구한말 저리가라로 약체 상황이었습니다.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나아가면서 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왜 그리 장년층은 반복해서 이야기할까요?

영화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3년’을 주장하며 울부짖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명성황후가 ‘러시아’와 ‘일본’의 등살에 쫓기면서도 체통을 잃지 않되, 미국 선교사 만나서 다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잘 사는 미국안에서 살 수있다면 하는 속내 표출 비슷하게, 논 크리스챤 군사문화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가 아니라 기독교 문화를 중시하는 생명중시의 자유세계 문명과 동등하게 살길 바랬던 것이, 반 백년을 넘어서 해소가 됐지만 아직은 해소가 된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 시대는 70년생인 제가 기억나는 한계성에 있습니다. 어린 시절 벌였던 모든 문화가 구한말 일제 기독교 독립운동 전통에 이어졌습니다. 그때 국산품 애호 운동 있었죠.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정신]에도 나왔고, 물산장려운동도 있었죠. 절제운동 문화도 있었죠. 당시에 생산물자 자체가 많지 않았기에 아껴쓰기 운동이 대대적이었죠. 가난해서 많이 배울 수 없었던 일반 국민들의 시야에선 적어도 ‘잘 살아 보세’ 하며 개인 스스로의 독립책임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훗날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된다고 꿈에라도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이병철, 정주영 전기를 읽으면 삼성과 현대기업은 국민경제에 기여한다는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수출중심 한국경제에 아무리 못해도, 양대 기업의 수출은 국내 총수요를 증진시키는 기여를 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구한말 ‘러시아’ 야욕과 그 계승으로서의 소비에트 코뮌과 그 부속물로서의 북한 공산당, 그리고 북한공산당과 일체가 돼 한반도 공산혁명을 완수하려는 남로당 전통이, 과연 독립운동 정신일 수 있을까요?

문화는 차곡차곡 쌓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명박정부도 사회주의 운동가 국가유공자를 사실상 인정했죠. 그러면서 이중적으로 건국 60주년 기념사업도 했습니다. 1987년 10월의 민족해방이데올로기 사령탑 민통련 앞에서 자유민주를 두 번 말하되 70%를 김대중과 호홉을 맞춘 김영삼 노선의 계승이 아닐까요? 민족해방 이념은 간단합니다. 남북한 좌익연대 앞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좌익말로 부르주아 국가)적인 모든 것은 해체되고 해소돼야 할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잘못 판단한 것의 교체 없이, 맨 꼭대기 상부층인 국사편찬위만 혼자서 바른 말 할 수 없을 것이라 마음은 먹었지만 참 충격이 크네요.

대한민국 보수 세력은 독립정신의 전통을 이어받았기에, 국가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특히 박정희 시대는 김일성의 남조선혁명론의 직접테러가 있었던 때죠. 제2의 6.25를 바라지 않는 일반 국민은 기꺼이 일정한 자유를 양보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사회를 이끄시는 그때 ‘아주 대단히 많이 배우신 양반님들’은 꽤 억압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라 봅니다. 잘하셨습니다. 잘 싸우셨습니다. 그래서, 개인의 인권을 소홀히 하는 그런 폐단을 잘 고치셨습니다. 많이 배우신 님들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중장년의 절대다수인 못 배우신 분들이 느끼는 감정은 죄악인가요? 조선닷컴 100자평을 보면 ‘독재’로 규정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분이 참 많습니다. 하기야 그러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우익 보수님들. 한 10년 뒤라면 다 저 세상 가지 않겠어? 뛰어 봤자, 10년이야!

1987년 이후 국가권력의 남용을 제한하기 위해서 ‘과잉금지의 원칙’이 적용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잉금지의 원칙’의 과잉 시대죠. 요전에 미국 법리 ‘명백하고 분명한 위험’이 법관의 주관적 소설 쓰기를 합리화한다고 했는데, ‘과잉 금지의 원칙’의 과잉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좌익의 탈법 행위에 권력이 좌파를 보호하려면 ‘법익비례의 원칙’을 말하면 무조건 다 됩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독립운동 정신과 대한국 국제 전통을 이어받아서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주는 입장입니다.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는 주체는 국가입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서울시가 인권을 한다지요? 학생인권조례도 역시. 헌법을 깨뜨리잔 소립니다.) 그런데 과잉금지원칙으로 국가가 하는 일 전부 손발 동동 묶어 버립니다. 여기에,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처럼 한국현대사에 지식이 거의 백지 상황인 분의 ‘하이에크’의 기계적 적용이 더해지면, 좌익의 집단 떼법 행위에 의한 국민의 인권 피해는 ‘민사소송’외에는 아무런 구제 길이 없어집니다. 말이 좋아 민사소송이지 민간 조직폭력배에 민사소송 걸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군사정부 때 많이 배우신 양반들이 느꼈던 전 세계 민주사회보다 현저히 뒤졌던 반민주 요소를 변명하려는 것 아닙니다. 군사정부 때 못 배우신 분 입장대로 ‘이대로 잘 살 수 있었어’를 주장하려는 것 아닙니다. 더더욱 분명한 것은 1987년 10월에 민족해방 사령탑에 70% 편승하면서 자유민주를 두 번 말한 김영삼에 묻지 마 편드는 입장으로서의 역사 쓰기는 더더욱 미래여서는 아니되죠. 결국 좌익 숙주 아니냐 좌익 편드는 것 아니냐는 실체를 막고 우리 보스는 아니야 하는 것은, 남미의 ‘마라도나 교’보다 더 쓰레기 저질 같은 심성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 예능과 스포츠가 잡신을 많이 만들었죠. 야구에서도 참 많은 신 만들고, 유재석도 유느님이랍니다. 방송과 언론이 반 기독교적 오만을 권장합니다.)

역사는 흐릅니다. 군사정부 때 분들 기득권자인 분 한 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박원순이 재벌 기업에 수백억 기부 받았다는 기사가 쉽게 올 만큼, 87년의 주역이 이젠 온 세상 천하를 관장하는 기득권자가 됐습니다. ‘민주주의’는 진전합니다. 멈추면 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1987년 이후에 ‘완전한 민주화가 됐다’는 식의 평가는 미래 역사에 죄를 짓는 권력 편승입니다. 5년 마다 바뀌는 역사여서는 아니됩니다만, 그렇다고 북한 공산집단에 줏대 없이 엉겨붙는 1987년 이후 권력의 최대공약수인 민족해방이념의 기본심성에 기초해서, 1987년 이전 역사를 무효화하는 상황이어서는 아니됩니다.

진실위원회라고 남아공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역사비평사’ 보면 독일 역사 연구 많이 했더군요. 동서독 역사 대립 문제와 같습니다. 김정일 독재를 심판하려는 ‘한국 법’과 ‘한국 역사’가 자유민주주의 입장에서 흔들리면 안됩니다. 딱 멈춰 서서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북한공산집단을 거역한 자유민주세력이 심판 받는 모습입니다. 저는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광고를 아주 싫어합니다. 김영삼 집권 이후에 “내 마음대로”란 키워드는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른 변이형이기 때문이죠.

그 이전은 뭘까요? 독립운동 33인 중 16인은 개신교이고 그런 하나님이고, 16인은 동학의 변천사인 ‘하늘님’이겠죠. (1분은 만해 한용운님) 동학 자체가 유교와 접촉점이 많았으니(유영익 교수 입장), 게다가 하이에크의 ‘자유헌정론’ 및 ‘법, 입법, 그리고 자유’에서도 드러나듯이 ‘떼법’에 입각해 자기 마음대로 입법하는 민중중심주의가 자유를 왜곡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이 아니라고요? 이태진 교수님! 그게 헌법 전문에 있다고요? 그러면 48년에 헌법 제정됐다고 말하며 국가권력의 시원적 창시로 보는 법학교과서는 전부 위증했습니까? 1989년 이후에 1년에 광주 청문회가 있었습니다. 일관되게 국가에 의한 피해자로 피해자 중심의 감성주의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4.3 항쟁(기억으로는 조선일보에 자주 기고했던 당대비평파)과 6.25 전쟁 피해자(리영희씨 중심) 문제가, 광주청문회 문법에 덧씌워졌죠.

과거사진실위원회는 ‘한국현대사’전체를 ‘광주청문회’문법에 씌운 ‘시대착오주의’의 악마주의 형태로, 사학과 나오셔서 안병욱 교수 밑에 줄 선 분들은 부자가 됐겠지만, 역사학의 사망을 말하는 것이죠. 역사학이 어디 토론 없이 자기가 신적인 사실 구현을 말합니까? 더군다나,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역사 틀을 깨뜨리는 재미로 사는 게 역사입니다. 한영우 교수의 역사학의 역사란 저작은 왜 나왔습니까? 역사책이 계속 다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영삼 노선 아니면 김대중 노선이어야 하고, 민족해방 민중민주 통일전선 안에서 서 있던 (미래 역사 기준으로는 X물 지경인) ‘민똥련’(아, 오타 수정 안하겠습니다) 중심으로 미래가 굳어야 합니까? 1987년에 민족해방 이념이 주인되는 선거다 한번도 허락받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선거 에 나경원 캠프처럼 알려준 적도 없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충분히 홍보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국가정체성과 방향이 허락 받지 않은 상태로 시간만 끌게 하고서, 보수 세력이 늙어 죽어서 저 세상 가기만 바라는 게 좌익입장입니다. 이렇게 보수 중장년 죽어서 보수가 함몰되는 게 ‘평화통일’인 거 맞죠?

군사정부란 철혈 성곽은 결국은 예수 믿는 성도들이 예수 믿는 장로는 국민을 속이지 않을 꺼야 하는 기대감에 쉽게 전복됐습니다. 이 상태를 10년 만 유지하면, 예수믿는 중년은 지옥가 같은 민족해방 중심사회 안에 영원히 사는 재앙을 맞이하겠죠. 그러나 저는 마지막까지 예수 믿는 정치인이 기독교 정신으로 바로 설 것이라 기대합니다.

국가권력이 과거에 남용됐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남용을 비판하는 차원의 민중권력 남용을 제어할 수 있는 대안체제 형성을 영원히 서지 못하게 하는 그런 술수, 그리고 그 효과를 비집고 좌익혁명 분자에 ‘유공자 자판기’가 되는 국가권력 문제를 비판하고 싶습니다. 역사는 군사정부 것도 아니고 민중민족해방혁명세력의 것도 아닙니다.

역사를 대한민국사 주류로 고칠 것입니다. 많은 이가 밑에서부터 고쳐 나가며, 다시 기대를 해야 할 것입니다. 민주사회라면 민중당으로 지지율 5%도 못 받으면서 한나라당에 줄 서서 권력을 차지하신 분들에 ‘부당이익 반환청구권’이 형성된다고 말해야 하겠죠. 국사편찬위원회 역사집필팀에 요구합니다. 꼭, 현 정권에 날라리 개정안을 제출해야 될 이유 없습니다. 좌익들은 전부 그만 뒀죠? 그만 두세요! 이번 안 발표하지 마시고, 행정 파행을 그대로 유권자에 선택 사항으로 남겨주세요.

좌파 정부 때 한 사립대학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공기관이 극좌익 이념을 선택했다고, 바른 말 하는 보수 세력을 불온 문서 집필자로 했답니다. 국사편찬위가 날리리 개정안을 끝내 제출해 버리면 역사의 죄를 또다시 짓게 됩니다. 운동권들에겐 유공자 자판기 역할도 되고, 언제나 민족해방 세력이 프레임 안에서 그저 제한적인 수준에만 만족하고 자유민주 원칙이 섰는지 안 섰는지 불분명한 개정안은 발표 하는 것이 역사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역사는 김대중, 김영삼 것이 아닌 하나님 것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을 지켜 주심을 믿습니다. 대한민국 보수세력이 강력하게 국사편찬위 한국사집필팀이 어떤 발표도 하지 않고 행정파행 상황으로 해단하길 강하게 요구했으면 합니다.

2011년 10월 20일
김종일 올림: http://allinkore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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