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재벌 개혁](7) 전문가 좌담 “지분구조 이용한 총수일가 사익추구는 경제 효율 저해”

자유기업원 / 2012-02-13 / 조회: 1,341       경향신문

ㆍ“공적 감독과 주주대표소송 등 사후 규제 더 강화해야”

경향신문이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6층 인터뷰실에서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개혁에 대한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에는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정책연구실장,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좌담은 산업부 김준 차장의 사회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전문가들이 지난 7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 개혁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왼쪽부터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 정책연구실장,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 “정치권 진정성 없어 재벌개혁에 실패… 초지일관 자세 필요”

위평량 = 재벌의 공과에 대해 우선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한국이 국민소득 2만달러를 기록하고,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재벌의 역할이 일정 부분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 성장의 이면을 봐야 한다. 재벌 초기부터 특혜와 특권, 반칙으로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국민경제 차원의 인위적 자원배분으로 비효율성의 심화, 정경유착 관행 등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희생은 노동자가 져야 했다. 국세청의 통계를 보면 1999년과 2009년의 소득 수준을 비교할 때 1999년 상위 20%와 하위 80% 해당자 1인당 평균소득 격차는 18.9배였으나, 2009년에는 45.2배로 확대됐다.

최승노 = 한국에서 재벌이라 불리는 글로벌 기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한국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기업 매출의 80% 이상을 해외 소비자에게 의존한다. 그래서 우리 경제 규모에 비해 재벌의 규모가 크다고 비판받게 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세계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로 등장해 일본의 소니 등을 제치며 최고의 기업이 되다 보니 내수기업과의 격차가 커졌다. 내수가 정체돼 있고, 수출기업이 커진 것을 양극화라고 보는 것은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임원혁 = 재벌을 가족 중심의 기업집단이라고 정의하자. 이렇게 볼 때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재벌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재벌이라는 특별한 형태가 이 성장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재벌의 공과를 따져볼 때 일단 시대를 나눠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한국의 경우 경쟁적인 세계 시장에서의 성과에 기초해 지원이 제공되던 1960년대와 달리, 1972년 8·3 사채동결 조치 이후 중화학공업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정부가 주요 사업을 재벌에 나눠줬다. 전체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도 1970년대에 거의 3배 늘어나면서 국민들도 경제력 집중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경제력 집중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일반 집중이다. 기업, 시장 단위를 넘어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의미한다. 일반 집중이 높은 것과 정치적 영향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실제 실력 경쟁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과를 좌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시장 집중이다. 시장 단위로 보는 집중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쟁 정책으로 다룰 수 있는 부분이다. 셋째는 기업 단위에서의 지배권의 집중이다. 재벌 규모가 커지고 피라미드, 순환출자 등으로 중층적인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소액의 자본으로 전체 기업집단을 지배하게 됐다. 실력에 기초해 경영이 이뤄져야 하는데 세습형태로 계승이 되고, 증여세도 내지 않는 등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 효율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황인학 =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집약적으로 성장을 이룬 드문 성공 사례다. 이 성장의 주역은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성공한 기업의 모습이 오늘날 기업집단이다. 정부의 특혜 지원 결과로 오늘의 재벌이 생겼다고 하는데, 기술과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현대가 완성차,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에는 모두들 말렸다. 한국 경제의 성장과 대기업 조직의 형성 과정에서 기업가정신의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과장된 측면이 있다. 기업패권론이라는 가설이 있다. 기업이 이미 확보한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기득권을 더 늘리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일반 집중의 측면에서 경제력 집중도는 장기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여야 한다. 그러나 한국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도 통계적 검증 결과, 경제력 집중은 단기 변동은 있어도 계속 증가하고 있지 않다. 기업패권론 가설이 틀린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경제력 집중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독일, 영국, 대만보다 높은 건 아니다.

위평량 =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다. 최근 재벌의 대주주 190명의 부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면 상당한 집중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29개 기업집단의 특수 관계자 190명이 계열사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 회사기회 유용 등의 방법으로 9조9588억원의 재산을 증식했다. 그리고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의 위반도 문제지만, 재벌대기업 중심의 법 체계에 따른 중소기업들의 불리한 구조의 근원, 재벌총수들의 불법적인 부의 이전과 다양한 법위반행위 등에 대해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 과연 이걸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최승노 = 재벌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깨끗한 기업문화를 가진 조직이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정도로 경쟁력이 높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선진화된 시스템을 전파하고 전문가를 양성해 낼 수 있었다. 기업은 매일매일 소비자로부터 선택을 받는다. 수많은 선택의 결과로 대기업이 나온다. 재벌은 많은 소비자가 선택한 결과이지, 권력이 아니다.

임원혁 = 한화 김승연 회장의 사례로 재벌의 사회적 영향력을 이야기해 보자. 횡령, 배임 혐의로 기소된 탓에 한화의 상장폐지 얘기가 있었다. 한국거래소에서 긴급회의를 열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이 내용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지 않았던 것 같다. 법치는 법 앞의 평등이 기본이 돼야 한다. 하지만 재벌 총수가 불법행위를 저지른 경우 경제적 영향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론이 크게 다루지 않은 건 광고 수입, 재벌의 영향력 등의 측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재벌의 영향력은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크다. 이 때문에 단순히 소비자의 선택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황인학 = 문어발식 사업확장에 대한 비판도 사실관계를 따져봐야 할 일이다. 관련 다각화는 좋고 비(非)관련 다각화는 나쁘다고 하는데 경영 컨설턴트라면 몰라도 정책적 관심사안일 수 없다. 예전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도 ‘문어발이 한 발보다 낫다’는 논문이 있었지 않은가. 게다가 대규모 기업집단의 전문화율(평균 특화율)을 보면, 하나의 주력업종이 그룹 전체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대 그룹의 경우 2001년에 37%였던 것이 2011년에는 55%까지 올라갔다. 계열사 수가 늘었다는 것으로 문어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달리 크게 보면 전문화되는 쪽으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위평량 = 최근 10년간 40대 그룹이 신규 출자해 계열사가 증가한 것을 조사해봤더니 70%가 제조업, 광공업보다는 각종 물류, 유통, 도소매, 음식료, 숙박 등 기타 서비스업이었다. 그리고 40대 국내 재벌의 실질자산증가율은 지난 10년간 평균 12.3%에 달하고, 계열사 증가율은 연평균 7.4%가 증가해 704개에서 1554개로 늘었다. 특히 30대 재벌의 계열사 증가분 가운데 총수 일가 소유지분율이 20%를 넘는 회사의 84.5%가 도소매, 음식료, 부동산 및 숙박 등과 기타 서비스업으로의 진출이 이뤄졌고, 이들 재벌 총수 일가가 운영하는 회사가 같은 재벌그룹 계열사의 경영성과보다 더 우월한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재벌 일가의 빵집, 커피, 순대 등 서비스업으로의 진출은 이미 10년 전부터 누적돼 온 것이다.

최승노 = 재벌은 자신의 분야에 집중해 경쟁력을 높일 필요도 있지만, 다른 분야로 계열사를 확장해야 고용을 창출할 수 있다.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서비스업, 농업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 대기업이 들어가서 경영노하우, 높은 수준의 생산방식을 접목해 새로운 생산방식을 만들어내야만 경제가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임원혁 = 재벌가 딸들 문제는 지엽적인 측면에서 제기된 것이다. 업종을 정하는 건 기업가가 자기 책임하에 하는 것이다. 1980년대를 되돌아보면 중소기업 고유업종을 선정해서 대기업이 못 들어오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호된 업종은 별로 발전하지 못했고 대기업의 진출은 막았지만 결국 수입품에 시장을 잠식당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재벌이 부당한 방법을 써서 신규기업이 치고 올라올 가능성을 차단하느냐, 재벌이 동네 상권과 공생할 여지는 없느냐 등이다.

위평량 = 분명한 것은 재벌 규모가 커지면서 일반 중소기업이 계속 축소된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 산업 토대가 튼튼해지고 재벌 시스템으로 진행되는 거대한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 철강제조(현대제철, 현대하이스코)-자동차부품(모비스, 위아, 카스코 등 13개 계열사)-물류(글로비스) 및 건설(엠코)-완성차(현대기아차)-할부신용판매(현대캐피탈, 현대카드)로 연결되는 것이 이른바 수직계열화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수직계열화가 현대기아차그룹 차원에서는 바람직하겠지만, 국민경제 차원에서 볼 때 물류, 건설, 부품 등을 반드시 현대기아차가 모두 운영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임원혁 = 한국은 고용에서 자영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6%다. 제조업에 양질의 일자리가 있어도 연공서열 임금 체계 때문에 50대 중반이 되기도 전에 밀려나서 퇴직금을 가지고 자산투자를 하기보다 빵집, 치킨집을 영세하게 운영한다. 이 문제는 단순히 영세 업종에 대한 보호라는 시각에서 접근하면 풀리지 않는다. 이 문제를 풀려면 양질의 일자리에서 조기에 퇴직하지 않도록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 기울기가 평평해져야 한다. 최근 임금피크제 등이 도입됐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경력이 단절되지 않고 퇴직한 뒤에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재취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도 재원을 확보해 지원해야 한다.

황인학 =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은 일단 경영전략적 판단 사항이다. 정책적 관심사는 대기업의 포트폴리오 변화가 경쟁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하는 일이다. 경쟁과 소비자 후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검토 없이 사전에 차단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간 것이다. 한국 산업구조의 문제점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중소기업이 너무 많고 중견기업, 대기업은 너무 적다는 데 있다. 중소기업 보호가 아니라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정책의 중심이 바뀌어야 한다. 중소기업 밀집도가 다른 나라보다 높은 한국에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커나가야 한다. 되레 중소기업 보호책이 많아서 여기서 안 나가려고 하는 측면도 있다.

 
(왼쪽부터)위평량·최승노·임원혁·

▲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
“중소기업 육성이 투자 증가로 이어져 일자리도 늘어나”
▲ 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정치권 정책실패 재벌에 떠넘겨… 기업 통제는 오만”
▲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실장
“위임받은 경영권 재산권과 혼동해 규제 요구 나와”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산업구조 변화로 낙수효과 감소… 압박 만이 해법 아냐”

위평량 = 경쟁력이 없는 중소기업을 보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일정한 보호를 해줘야 하는 부분은 있다. 미국, 일본 등도 초기에는 중소기업 보호를 위해 매우 강한 보호정책을 취했고, 그런 제도가 관행으로 정착돼 이제는 그렇게 강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일자리 창출의 측면에서 중소기업이 우월하다는 것이 증명되면서 선진국들은 주로 금융 측면 등에서 지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재계는 재벌에 대해 사전 규제는 할 수 없고, 사후 규제로 가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주주대표소송, 증권거래집단소송, 이중대표소송 등 사후 규제는 잘 안되고 있다. 이러한 사후 규제적 법적 장치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안이 제안되면 재벌그룹과 전경련 등으로부터 강한 압력이 들어와 결국 법 개선안이 무산되기 일쑤다.

임원혁 = 이 부분과 관련해 핵심적으로 봐야 할 것은 ‘터널링’ 문제다. 지분율은 높지만 수익이 낮은 사업이 있고 그 반대인 사업이 있다고 치자. 총수 일가의 이해에 맞도록 시장가격과 괴리된 가격으로 후자에서 전자로 상품을 조달하게 된다. 일가의 지분이 낮은 쪽의 이윤을 편법으로 지분이 높은 쪽으로 빼돌리는 것이다. 이게 터널링이다. 이런 부분에 대응하기 위해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전규제로서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이 논의됐다. 이것을 하다 보니 선의의 규제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결국 공적인 감독을 세게 하면서 사적으로 피해를 보는 주주들, 이해관계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선행 조치 없이 2009년 출총제가 폐지됐다. 지금까지 증권 관련 집단소송이 딱 1건 있었다. 공적 감독도 사실 강화된 게 없다. 결국 공적 감독과 사적 구제는 강화된 게 없는데 출총제 폐지의 부작용이 크니 사전 규제를 부활시키자는 상황이 된 것이다.

최승노 = 재벌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느 분야에나 문제는 늘 있을 수 있다. 재벌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반기업 정서만을 야기할 뿐, 기업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한국 기업은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오너경영을 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는 가족 경영 방식을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한국에서 오너 체제는 우리 현실에 적합한 지배구조이다. 재벌을 효율성의 측면에서 바라봐야지, 명분론에 얽매여 공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하지 않은 소모적 논쟁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임원혁 = 경영권과 재산권을 혼동해선 안된다. 경영권은 재산권이 아니고 주주들이 위임한 것이다. 오너경영인이든 전문경영인이든 경영권은 위임받은 것이다. 재벌구조에서 흔히 일어나는 게 상장사, 비상장사를 엮어서 아들한테 비상장사의 주식을 사도록 하고, 비상장사 쪽으로 일감을 몰아줘서 가치를 높인다. 고정된 자산을 물려주는 게 아니다. 또 아까 언급한 터널링의 문제도 있다. 결국 분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효율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지분구조의 차이를 이용해서 총수 일가가 사익을 추구하고 경제 전체의 효율을 저해하는 것을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황인학 = 가족이 지배하는 대기업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외부주주와 지배주주 간의 대리 문제가 크게 발생해서 피라미드 출자구조의 기업집단은 문제가 있을 거라고들 했는데, 이들 학자조차도 가족지배그룹의 경영성과가 더 높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임원혁 = 오너경영 자체를 배제하는 건 아니다. 다만 일정 부분 부작용이 일어나는 부분에 대해 구제수단, 감독수단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도가 지나치니까 출총제와 같은 사전 규제 이야기가 나온다. 기업구조를 볼 때 어느 것이 절대선이고 어느 것은 절대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이든 기업 차원이든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활동을 어떻게 수행하고 실력에 따른 평가와 보상을 어떻게 가져가는지가 중요하다.

황인학 = 기업집단의 효율성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내부통제·보상 시스템이다. 1920년대 GM과 듀퐁에서 제너럴 오피스(General Office)를 만든 이후 많은 사업을 하는 대기업이라 해도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조직 혁신이 일어났다. 예전의 그룹 비서실, 구조조정본부 또는 그룹 기조실은 사실상 미국 대기업의 제너럴 오피스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주주권,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도 낮고, 이사회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을 때 구조본이 기업규율상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한 셈이다.

최승노 = 재벌이 일자리 창출을 못한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자고 한다. 모순된 비판이다. 기존의 사업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자동화, 기계화, 세계화의 추세를 고려하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재벌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열사를 만들고, 새로운 분야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평량 = 재계가 투자를 규제했다고 할 때 가장 대표적인 게 출총제다. 학계에서 발표되는 학술논문은 출총제로 인해 투자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2007년 이후 대폭 완화된 출총제는 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집단에 속한 자산 2조원 이상인 계열사는 순자산의 40%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한다. 당시 11개의 출총제 대상이 있었는데 그룹 전체적으로 순자산 대비 평균 19.36%밖에 출자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말해 나머지 약 80%는 순자산에 대비해 추가적으로 출자할 수 있었다. 재벌들은 출자규제가 이후 이어질 수 있는 신규투자를 억제한다고 했지만 이 숫자만 봐도 출총제를 한다고 투자를 못하는 건 아니다.

임원혁 =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비교 우위에 있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숙련된 기술을 지향하는 진보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대기업, 중소기업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 일자리 창출은 제조업의 고용 비중이 줄어들어 다른 데서 만드는 걸 생각하는 게 빠르다. 사회적인 부분, 준공공적인 부분에서 일자리가 나와야 한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그쪽 수요는 많다. 가족 내에서 임금을 받지 않고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장화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

최승노 = 정부가 기업을 만들겠다는 시도는 늘 실패한다. 민간이 만든 일자리여야 장기적으로 유지 가능하다. 세금 지원을 통해 생존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일이 아니다. 선거철을 앞두고 기업 때리기는 정치인들의 단골 메뉴가 되고 있다.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재벌에 떠넘기는 것은 정치세계의 오랜 관행이다.

위평량 = 정치는 결국 국민의 표를 의식하는 건데 한편으로 일반 시민들이 재벌에 대한 문제를 느끼기 때문에 정치권이 반응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는 정치권이 진정성 있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느냐이다. 지금까지 그 진정성이 없어 재벌개혁에 실패했다고 본다.

임원혁 = 재벌개혁이 이슈가 된 이유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의 실망스러운 결과 때문이다. 이 정책의 기본적인 기조는 재벌이 불편하지 않도록 규제를 빼줄 테니 투자, 고용을 열심히 해서 사회적 책임을 해달라는 일종의 거래관계로 보인다. 이게 제대로 되려면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이 있어야 하지만, 일반 국민들이 느낄 수 있는 효과는 없었고 빈부격차는 확대됐다. 조세부담률도 떨어졌다. 21%에서 19%로 2%포인트 떨어졌는데 이게 20조원 정도다. 해마다 20조원을 사회통합에 초점을 맞춰 썼다면 이렇게 반감이 크진 않았을 것이다. 경제력 집중에 대한 문제의식은 1970년대부터 있어왔고, 법 앞의 평등이 개선됐지만 여전히 국민이 가진 평등의식과 현실이 괴리가 있어 이슈로 계속 잠복해 있는 것이다.

황인학 = 여야 할 것 없이 재벌개혁을 말하는 특이한 한 해 같다. MB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차별화되는 전략을 쓰려는 정치적 판단으로 보인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처음부터 어색한 측면이 있었다.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기업들이 힘들게 경쟁하도록 ‘마켓 프렌들리’를 지향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반기업 정서를 키우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별개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반기업 정서에 편승하려는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에 대한 합당한 비판을 하는 소금 역할을 넘어 아예 소금국을 끓이자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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