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논란 많은 등기임원 보수 첫 공개

자유경제원 / 2014-04-11 / 조회: 1,793       이코노미스트
Issue | 논란 많은 등기임원 보수 첫 공개
이재용(삼성전자 부회장)·정용진(신세계 부회장)·박현주(미래에셋 회장) 연봉은 오리무중
대기업 총수 최태원 301억원, 전문경영인 권오현 68억원 최고 보수 공개 피하려 등기임원 사퇴 더 늘 듯

연 5억원 이상을 받는 기업 임원의 보수가 처음 공개됐지만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 오너 중 상당수는 미등기임원이라 공개 대상에서 빠졌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


국내 기업의 등기임원 보수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5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토록 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각 기업은 3월 말 사업보고서를 공시하면서 개별등기임원이 지난해 받은 보수를 공개했다. 공개된 연간 보수는 급여와 성과급, 기타소득, 퇴직금 등을 포함한 액수다.

전체 대상자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은 사람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었다. SK이노베이션·SK C&C 등 4개 상장 계열사로부터 급여와 성과급을 합해 총 301억원을 받았다. 지난해 2월부터 복역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큰 액수다. 함께 구속 중인 동생 최재원 부회장도 SK네트웍스 등으로부터 총 38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SK그룹 관계자는 “최 회장이 받은 성과급 207억원은 2012년 실적에 따른 것인데 성과급 지급 시기가 지난해여서 액수가 과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며 “브라질 광구 매각 등으로 2조원대의 수익을 올린 점을 높게 평가 받아 기준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대기업 총수 중 두 번째로 많은 보수(140억원)를 받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0억원의 급여를 반납하고도 131억2000만원의 성과급을 받았다. 김 회장은 2월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직후 계열사 등기임원에서 물러나면서 급여를 모두 반납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101억3132만원),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96억4700만원)이 뒤를 이었다. 두 사람의 보수엔 퇴직금이 포함돼 있다.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각각 47억5400만원, 39억1000만원을 받았다.

전문경영인 중에서는 ‘삼성전자 CEO 3인방’이 가장 많은 보수를 받았다. DS(반도체 등 부품) 부문을 책임지는 권오현 부회장이 67억7300만원을 받아 1위에 올랐다. IM(IT·모바일) 부문장인 신종균 사장이 62억1300만원, CE(가전) 부문장인 윤부근 사장이 50억8900만원을 받았다. 신 사장과 윤 사장은 지난해 3월 등기임원이 돼 10개월치만 공개한 것이라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경영인 중 보수 상위 15위 중 퇴직금이 포함된 10명을 제외한 5명은 모두 삼성그룹의 현직 임원이다. 삼성을 제외하곤 LG그룹 등기임원의 보수가 비교적 많았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이 16억74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이 15억4400만원, 조준호 LG 사장이 14억6700만원을 받았다. 현대차나 SK 등은 전문경영인 등기임원의 연봉이 8억~10억원 수준이었다.


김승연 회장 성과급 131억 받아

금융권 현직 경영자 중에서는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이 28억870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평균 12억원 정도의 보수를 받은 4대 금융지주 회장보다 연봉이 높았다.

비은행권 중에서는 최치훈 전 삼성카드 사장(현 삼성물산 사장)이 28억33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현대카드에서 17억2500만원, 현대커머셜에서 8억8600만원을 받았다.

퇴직 인사 중에는 박종원 코리안리재보험 전 대표가 176억2573만원으로 가장 많이 받았다. 박 전 대표의 퇴직금은 159억원에 달했다. 구자준 전 LIG손해보험 회장이 퇴직금을 합해 54억2500만원을 받았다.

그동안 영업비밀로 간주된 임원의 보수가 공개되자 재계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그룹 총수가 재판 중이거나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았던 기업들은 부담이 더 크다.

기업들은 ‘왜 자꾸 기업경영에 부담을 주는 지 모르겠다’고 푸념하지만 임원의 도덕적해이를 차단하고,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보수 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게 사실이다.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도 보수 공개제도를 이미 도입했다. 미국은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임원 중 보수가 가장 많은 3명 등 5명의 보수를 공개하도록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일본 역시 1억엔 이상의 보수를 받는 임원에 한해 공개하고 있다.

“미등기임원까지 대상 확대하자”

일단 시작은 했는데 후폭풍이 만만찮다. 여러 면에서 손 볼 점이 많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우선 대상이 애매하다.

자본시장법상 공개 대상은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이다. 등기임원이나 미등기임원이나 이사회에서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건 마찬가지다. 법적 책임의 유무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연봉 공개가 부담스러워 상당수 대기업 총수들은 일부러 등기임원을 맡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이번 첫 보수 공개에서는 빠진 이름들이 제법 눈에 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이다. 이번 보수 공개에서 삼성그룹 일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보수(30억900만원)만 공개됐다.

이 부회장과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은 등기임원이 아니어서 대상에서 빠졌다. 이건희 회장은 2010년 이후 아무 보수를 받지 않는다는 게 삼성 측의 공식 입장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해 2월 신세계와 이마트의 등기임원에서 물러났다. 모친인 이명희 회장과 동생인 정유경부사장 등도 미등기임원이어서 공개를 피했다.

금융권에서는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의 보수가 궁금할 만하다. 미래에셋은 전 세계 12개국에서 약 63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권의 큰 손이다. 박 회장은 최대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59.8%)과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인 미래에셋컨설팅(48.6%)의 대주주다. 유일한 상장사 미래에셋증권의 대주주인 미래에셋캐피탈의 지분 48.7%도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지만 박 회장은 비상장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등기이사만 맡고 있어 연봉이 공개되지 않았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도 유사한 사례다.

보수 공개 부담에 대기업 총수들의 등기임원 탈출 러시도 이어질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 김승연 회장, 이재현 회장 등이 이미 등기임원에서 물러났고, 정몽구 회장 역시 현대제철 등기임원직을 내놨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도 상당수가 등기임원 사퇴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은 공개 대상을 ‘5억 이상 미등기임원’으로 확대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등기임원은 9명이지만 미등기임원은 1227명에 달한다. 현재는 연봉공개 대상이 단 4명(사외이사 제외)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1227명 중 상당수가 공개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공개 시점도 문제다. 연봉 공개의 기본 목적은 주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있다. 연봉 공개는 기업들이 주로 3월 말 발표하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는 주주총회(주로 2월 개최) 이후다. 주총에서 승인하는 안건은 등기임원과 사외이사, 감사위원 또는 감사에게 지급한 총 보수 한도액이다.

개별 임원에게 얼마가 어떤 근거로 지급되는지는 주총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주들이 혹 부당한 보수 지급은 없는지 따져보라고 만든 제도인데 정작 주총 이후에나 개별 보수를 알게 되니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구조다.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은 주총 이전에 별도의 보고서를 만들어 회사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들에게 알린다.

보수의 산정 근거나 기술 형태가 명확하지 않은 점 역시 논란거리다. 자본시장법은 구체적인 산정 기준 및 방법을 공개토록하고 있지만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기업별로 제각각이다. 삼성전자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권오현 부회장은 총 67억7300만원 중 급여로 17억8800만원, 상여금으로 20억3400만원, 기타근로소득으로 29억5100만원을 받았다.

상여금이 명절 상여, 목표인센티브, 성과인센티브 등으로 구성된다고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만 액수가 가장 큰 기타근로소득에 대해서는 임원처우규정(이사회 의결)에 따른다고만 기술했다. 급여도 아닌 인센티브도 아닌 기타근로소득이란 대체 무엇인지 일반 주주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다른 기업의 임원들은 대부분 기타근로소득이 0원으로 표시돼 있다. 이와 달리 현대차는 모든 보수를 급여로만 지급했다. 지난해 명절 상여금조차 받지 않았다는 얘긴지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대다수의 기업은 항목별 분류만 따르고, 지급 사유는 자체 규정 등 모호하게 표현했다. 명확한 기준과 기술 방법을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적자 상장사에 한해 공개해야” 반론도

임원 보수 공개의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성과급이나 퇴직금의 유무, 지급일자 등 따져볼 게 많은데 절대액만 놓고 순서를 매겨서는 안 된다”며 “보수 공개가 주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본 목적을 벗어나 마녀사냥으로 변질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4월 2일 자유경제원이 개최한 긴급좌담회에서 “임원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책임경영이 가능한데 건전한 기업가 정신마저 위축시킬까 우려된다”며 “적자가 발생한 상장사에 한해서만 공개하도록 하는 게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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