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복거일 "모든 지식은 하나로 연결됐죠, 우리의 길처럼…"

자유경제원 / 2014-05-16 / 조회: 2,016       한국경제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모든 지식은 하나로 연결됐죠, 우리의 길처럼…

 

복거일 씨와 불광천을 거닐다 정구학의 ‘사색의 길 따라‘

나는 지도 제작자
발견한 지식 꿰맞춰
세상의 모습 그리는 사람

작가 겸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씨(왼쪽)와 정구학 부국장이 불광천에서 홍제천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같이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정 부국장은 복씨의 가방을 들어줬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작가 겸 사회평론가인 복거일 씨(왼쪽)와 정구학 부국장이 불광천에서 홍제천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같이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정 부국장은 복씨의 가방을 들어줬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길. 우리가 나아가는 공간이다. 길을 걸으면 생각이 떠오른다. 매일 오후 똑같은 시간에 공원을 산책했던 이마누엘 칸트는 감성→지성→이성의 단계적 사고체계를 정리했다. 지성인과 명사(名士)들은 어떤 사색로를 걸을까? 그들과 함께 길(路)을 걸으며, 어떻게 또 하나의 길(道)을 깨닫는지 캐보는 기획을 시작한다. ‘걷기→생각하기→이끌어내기’ 탐험이다.

첫 번째로 소설가이자 자유시장경제 평론가인 복거일 씨(68)와 서울 불광천, 홍제천, 한강, 월드컵공원 주변을 같이 산책했다. 그는 간암에 걸렸는데도 치료하지 않고 집필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펴낸 자전적 소설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암에 걸린 주인공이 아내와 산책하는 내용이다. 소설과 똑같은 사색 루트를 봄볕이 따사로운 지난달 30일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동행했다.

▷이 길은 1주일에 몇 번 걷나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안식구랑 매일 나와요.(그는 불광천에서 가까운 수색에 산다) 안식구가 어지럼증이 있어서 혼자 내보내기 걱정돼서요. 물고기 산란철이라 저기 잉어가 많이 보이네요.(때마침 길이가 50cm쯤 되는 잉어 떼가 상류를 향해 펄떡펄떡 뛰고 있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별 변동이 없어요. 암이라는 걸 안 지 1년 반 됐죠. 치료받는 게 합리적인데 글쓰기랑 양립이 안 된다고 보고 치료를 포기했죠.”

▷오진 가능성은 없나요.

“폐결핵이나 암 초기라면 경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그 수준은 넘어서 이미 전이가 됐어요. 간에서 횡격막으로 옮아갔고, 폐에서도 반점이 하나 나왔어요. 아니 이미 암이 퍼졌는데 이게 암이 아니면…(허허).”

▷일반인이면 생명이 우선일 텐데요.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데 작가의 경우에는 다르죠. 일반 직장인과 달리 예술가는 작품을 하나 생산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예술하면서 사회적인 어려움이 참 많아요.”

▷경제적인 어려움인가요.

“경제적인 어려움만은 아니고, 사회가 어차피 권력이나 돈을 가진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가니까 소외되잖아요. 옛날에 엘리엇이 한 얘기가 있거든요. ‘예술가들이 정치를 했다면 다 출세했을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느끼는 모멸감이 대단하거든요. 그런 걸 견디려면 마음이 단단해야 합니다. 추리소설 작가 로스 맥도널드는 ‘예술은 약한 사람이 하는 놀이가 아니다(Art is not a game for weeklings)’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힘듭니까.

“예술가들은 나름대로 오만하죠, 이기적이고.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이거죠. 그 속엔 가족에게 주는 피해도 포함돼 있거든요. 모파상은 어머니를 굶기고, 처자식을 안 돌보고 작품을 쓰는 게 작가라고 했습니다.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자기와, 생활에서의 자기를 분리해야 하죠. 예술가로서의 자기를 추구하는 거죠. 약간 정신분열증적인 상태에 늘 놓여 있어요. 골치 아픈 존재죠.허허(웃음).”

▷애덤 스미스는 예술가들이 생전에 고생하지만 사후에 빛난다고 말했는데요.

“두보(杜甫)가 ‘이백을 꿈꾸다(夢李白)’라는 시를 통해 한 얘기가 있죠. ‘천추만세명 적막신후사(千秋萬世名 寂寞身後事·그대 이름은 천년의 가을 만년의 세월에 남겠지만, 몸이 사라진 뒤의 일이니 허무하도다)’ 으하하.(씁쓰레하게 길게 웃음)”

▷칼럼 소설의 사색의 바탕은.

“어렸을 때부터 느꼈어요. ‘세상의 지식이라는 게 다 일체성이 있다.’ 뒤에 알았는데 에드워드 윌슨(미국의 생물학자)은 ‘그리스 사람들은 모든 지식이 하나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어요. 제가 진화생물학을 공부하면서 사람의 지식만이 아니라, 여기 나무들(물가의 나무를 가리키며), 나무 속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들, 물고기를 포함한 모든 것이 지닌 지식들이 실은 하나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제가 발견한 게 아니고, 진화생물학이 얘기하는 거예요. 우리의 유전자가 실은 본질적으로 지식이라고요.”

▷40억년 전 지구가 만들어진 이래 진화했다는 거죠.

“지식이 응축된 거죠. 생명의 본질이 지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생물학자들이 최근 100년 안쪽에 발견했죠.”

▷진화생물학을 독학으로 공부했나요.

“예. 1970년 군을 제대하고 회사에 복직해서 스물댓 살 됐을 때 생물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 전에 물리과학에 심취했었는데 생명과학에 재미를 느낀 거죠. 당시에 다른 책이 없으니까 영어 원서를 읽었죠. (대전에 살 때)서울에 가면 명동 중국대사관 앞에 책방이 많았어요. 담뱃값 쌀값도 기억 못하는데 책값은 기억해요. 펭귄북스 문고판이 60원이었어요.”

▷호기심에서 사봤습니까.

“재밌으니까 사서 공부했죠. 하여튼 깨달은 거죠. 세상의 지식은 실재의 모형인데, 그걸 가장 압축한 게 지도다. 나는 지도 제작자다, 카토그래퍼(cartographer·15세기 리스본이나 16세기 암스테르담의 부두를 어슬렁거리며 먼 항해에서 돌아온 뱃사람의 얘기를 듣고 지도를 꿰맞춰 그리는 사람)다, 그런 생각을 한 게 20년 정도 돼요. 세상의 모습을 그리는 지도 제작자라고요.”

▷생물진화론에서 사회진화론으로 발전시켜, 시장도 자연선택된 진화의 지도라고 판단한 건가요.

“진화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생명체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죠. 그 뒤에 인류와 같은 고등생명체들이 만든 문화가 있는데, 문화를 진화의 속에서 받아들일 수 없나 해서 나온 게 문화도 진화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나아가서 세상의 모든 것이 진화한다, 왜냐하면 환경에 더 적응한 것들과 덜 적응한 것들이 있으면, 환경에 잘 적응한 것들이 더 오래 살고 자식들을 더 낳을 거 아니에요. ”

▷모든 게 진화한다고 보는거죠.

“생명현상뿐만 아니고 생명현상과 비슷한 문화도 마찬가지죠. 환경에 맞는 것들이 진화를 통해 퍼진다 이거죠. 예컨대 뭐가 유행한다면 소비자라는 환경에 잘 적응해서 퍼지는 거 아녜요. 시장에서 상품이나 아이디어가 소비자라는 환경에 적응해서 잘 퍼지면 히트상품이 되는 거고, 안 되면 실패하는 거죠. 기업도 마찬가지죠. 시장이야말로 진화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마당이라고 저는 늘 강조해요. 소비자 욕구를 잘 충족시켜서 시장경제가 번창한다고요. 그런데 우리 사회가 시장이 점점 작동하지 못하도록 돼 가요.”

▷생물의 종과 개체도 교환을 통해 진화했고, 시장경제도 교환을 통해서 발전했다는 거죠.

“맞아요. 비교우위를 통해 작용하는 겁니다. 사람의 일하는 방식도 진화해요. 기업도 일부만 만들고 나머지는 협력하잖아요. 진화는 협력과 교환을 통해 살아나가죠.”

▷과학소설에서처럼 사람이 영생하는 의학기술이 과연 나올까요.

“사람은 자식을 낳으면 노화되도록 설계됐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자식을 낳은 뒤에 늙어서 80, 90세가 되더라도 스스로 살고 싶죠. 노화방지 기술이 나오는 건 확실해요. 어떤 사람은 50년 안에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500년 안에 나온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면 후손이 폭증할 텐데.

“아서 클라크는 산아제한을 제안했죠. 영생한다고 모두 산다는 건 아니에요. 사고도 있고, 살인도 있으니, 보험의 대수방식을 대입하면 평균 6000년 정도라는 데이터가 나와요. 운이 좋은 사람은 100만년 사는 사람도 나올 수 있고. 태어나자마자 죽는 경우도 있겠지요.”

▷20~30년 뒤의 한국은 어떨까요.

“그건 예측이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경제현상은 임퍼스널(impersonal·비인간적)합니다. 생산과 소비는 사람 개개인 성격의 영향을 안 받아요. 반면 정치는 모든 것이 개인에게 달렸거든요. 퍼스널(personal)해요. 예측 불가능해요. 예컨대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세 사람이 뽑힌 순서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지 않겠어요.”

▷남북관계는 어떨까요.

“예측 못 해요. 북한의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체제가 통치자 성격에 따라 좌우되잖아요. 장성택 같은 사람도 죄인이 돼서 하루아침에 몰락하는데, 어떻게 예측해요. 제가 늘 하는 얘기가 경제학자가 선거 진영에 들어가면 그 선거는 진다고 말해요. 누구냐 하면 이회창 대통령 후보 때 첫 번째는 서상목 씨가 참모였고, 두 번째는 유승민 의원이 참모였잖아요. 둘 다 경제학자였죠. 제가 그때 안 봐도 ‘이회창 떨어진다’고 얘기했어요.”

동행 인터뷰를 끝내고 불광천의 밤길을 걸어가는 그는 지식의 통합이라는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지적 예술가였다.

정구학 편집국 부국장 c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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