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뼈아픈 정부실패…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만든 ‘IMF 위기‘

자유경제원 / 2014-06-23 / 조회: 2,763       한국경제

[세계 경제사]  뼈아픈 정부실패…고비용·저효율 구조가 만든 ‘IMF 위기‘

입력
 
2014-06-20 19:02:35
 
수정
 
2014-06-20 19:02:35
 
지면정보
 
2014-06-23 S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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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18)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높은 임금상승률·노사갈등
채산성 악화로 적자기업 속출
금융기관 부실화까지 이어져
국가파산·외환위기 발생

환율 달러당 2000원 돌파
금리 年 30% 웃돌기도

환란은 이제 벗어났지만 정부의 규제 여전히 많아
경제위기는 아직도 진행형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비장한 표정의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 손에 무언가를 꼭 쥐고 있다. 자신의 차례가 돼 꺼내 놓는 것들은 모두 금붙이다. 결혼반지, 아기 돌 반지, 금두꺼비…. 1997년 이른바 ‘외환위기’ 때 나라의 빚을 갚자며 온 국민이 금모으기를 할 때의 장면이다. ‘나라사랑 금모으기 캠페인’에 참여한 국민은 350만명이나 됐고, 이 캠페인을 통해 3개월간 모인 금이 무려 227t, 금액으로는 20억달러어치였다. 이때 나왔던 구호 중 하나는 ‘장롱 속의 금 모아 나라경제 되살리자’였다. 경제 회생을 위해 온 국민이 발 벗고 나선 결과 3년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공식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외환위기 당시 환율은 달러당 2000원대를 돌파했으며, 금리는 30%를 웃돌았다. 두 배 이상으로 높이 치솟은 환율을 견디지 못한 많은 유학생은 귀국을 서둘렀다. 주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집값은 뚝 떨어져 집주인이 전세금을 내어주지 못해 세입자가 전세금 대신 집을 인수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보그룹을 시작으로 삼미, 기아, 진로 등 대기업들이 연쇄 부도를 내고, 많은 중소기업이 도산했다. 수많은 근로자가 실업자가 됐고, 서울역 등에는 노숙자들로 넘쳐났다. 외환위기는 한국이 겪었던 가장 극심한 경제위기였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한국이 1997년 경제위기를 맞은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주장이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한국 경제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 구조적인 문제가 경제위기를 촉발했거나, 최소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본다.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한국 경제의 기초는 튼튼하며,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고 정부가 호언장담했지만, 사실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경제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한국은 IMF나 세계의 신용평가기관에서 그 어떤 위험 경고도 받지 않았다. 이것이 정부가 경제의 기초가 건실하다며 안이하게 대처했던 원인으로 보인다. 통화와 재정정책도 비교적 건전하게 운용되고 있었다.

자본유입에 따라 해외부문에서 통화증발 요인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총통화증가율은 1990년대 후반 오히려 감소했다. 재정 역시 1993년 이후로 소폭이나마 흑자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제성장률은 1980년대에 비해 다소 둔화되기는 했지만 높게 유지되고 있었고, 물가도 안정돼 있었다. 경상수지 적자와 외채 관련 지표들도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외환위기를 맞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국내총생산 대비 경상수지 적자가 8~10%였으나, 한국은 1995년 2.0%에서 1996년 4.7%로 증가했을 뿐이다. 외채 비중도 다른 나라들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위기를 겪은 건 1987년 이후 높은 임금상승과 노사갈등으로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고착된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인위적인 성장정책과 시장개입으로 경제구조가 왜곡된 것도 원인이었다. 1990년대 중반 제조업 명목 임금상승률은 10%를 넘었다. 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적자기업이 속출했다. 부도업체 수가 1996년 1만1589개에서 1997년에는 1만7168개로 늘었다. 대기업을 포함한 기업 연쇄 도산은 부실채권을 증가시켜 금융회사 부실화를 불렀고, 금융회사 대외신인도는 떨어졌다. 종전엔 자동으로 이뤄지던 단기 외화차입금의 연장이 중단되면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시장과 기업에 대한 정부 개입과 규제는 필연적으로 정보의 문제를 일으킨다. 이는 자원배분의 왜곡과 자원 낭비로 이어진다. 정리해고 제한 등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는 1980년대 이후 세계가 글로벌 경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막는 족쇄가 됐다. 당시 발표된 보고서들에 따르면 근로자의 10% 정도가 과잉인력이었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와 여당은 1996년 12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 등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내용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만, 노동계는 총파업으로 맞섰다. 이듬해 1월 말까지 계속된 파업에 밀려 노동관계법 개정은 결국 무산됐다. 자율 구조조정이 안될 경우엔 시장에 의한 강제적인 조정만이 남게 된다. 그리고 강제적인 조정은 자율 조정보다 훨씬 더 혹독할 수밖에 없다. 이 노동관계법 개정의 무산은 경제위기를 막거나 최소한 완화시킬 수도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것과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

금리규제와 파산억제 정책들은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김으로써 기업 부실을 키웠다. 또 주인이 없는 은행에 대한 규제와 관치금융은 은행이 상업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운영되도록 만들었다. 은행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할 이유가 없었고, 신용평가에 의한 여신보다는 담보와 지급보증을 위주로 한 여신을 선호했다. 경쟁력도 낙후될 수밖에 없었다.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가 정부 주도 성장, 정부의 규제와 개입으로부터 탈피해 시장주도, 경제주체의 자율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부의 규제와 시장개입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외환위기를 불러왔던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잠재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공식적으론 종료됐지만, 실제로는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정부 주도가 아닌 시장 자율에 맡길 때 성공할 수 있다. 작은 정부-큰 시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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