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 권혁철 칼럼 > 나라 망치는 포퓰리즘, 그리스 따라가는 한국

자유경제원 / 2015-03-03 / 조회: 2,058       업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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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철 칼럼 > 나라 망치는 포퓰리즘, 그리스 따라가는 한국
구창환 기자  |  koocc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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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01  17: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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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소장

그리스 급진좌파 시리자의 등장
 
2015년 1월 26일 그리스 총선에서 집권당이 패배하고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승리를 함으로써 그리스가 또 다시 세계 경제 불안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리자의 승리가 확실시 되자 시장은 요동쳤다. 그리스 주가는 하루에만 9.04% 대폭락했고, 국가 부도위험을 알리는 CDS 프리미엄1)도 76%로 폭등하며 디폴트 확률을 높였다. 이어 그리스 은행주가 추락했고, 뱅크런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시리자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대표는 '그렉시트(Grexit: 그리스의 유로존으로부터의 탈퇴)는 없다’고 밝혔지만, 그리스 경제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면서 세계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이미 그리스는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2,400억 유로(약 292조 원)의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디폴트 위기를 넘긴 바 있다.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이 파탄 난 그리스는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75%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 등이 구제금융을 하면서 방만한 공공부문과 과도한 복지의 개혁, 노동시장 유연화 등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또한 구조개혁만이 그리스가 정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겪어보았듯이 이 과정은 고통을 수반한다. 바로 이 틈새를 포퓰리스트들이 비집고 들어온다.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 역시 구제금융의 대가로 요구되는 긴축재정을 거부하고 유럽연합 등과의 채무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총선 승리가 확실시 되자 시리자 대표인 치프라스는 “그리스는 치욕과 고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들어섰다”는 연설을 하면서 구제금융 이행조건인 긴축정책을 폐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의 감정을 건드리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적인 발언이다. 그리스 국민은 긴축 철회, 빈곤층을 위한 팩키지 지출을 약속한 급진좌파 포퓰리즘 정당인 시리자를 선택한 것이다. 영국의 BBC는 “유럽 각국에서도 포퓰리스트 정당의 대약진이 예상된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동아일보 사설은 “민주주의의 패배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2)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우려하는 바대로, 우리는 이번 그리스 선거에서도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목격하게 된다. “민주주의 하에서는...표를 얻어 권력을 획득해야만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국가의 장래, 경제에 미치는 영향, 기업경쟁력과 일자리 창출, 궁극적인 효과 등에는 관심이 없다. 당장 내일 모레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치인에게는 당장 유권자들의 눈앞에 펼쳐 보여 줄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그것이 중장기적으로 자기파괴적이고 국가의 장래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 분명히 예상되는 것일지라도 그렇다.....정치인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오로지 당장의 선물을 주겠다는 달콤한 눈속임을 통한 '유권자 매수’이고, 유권자들에게는 그 달콤한 눈속임의 선물을 대가로 자신의 표를 팔고자 하는 욕망이 있을 뿐이다.”3)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유권자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퍼주기 경쟁’, '공짜 경쟁’이 일어나고, 급기야 감당할 수도 없는 '묻지마 복지’로까지 나아가게 된다. 그리스는 그 전형적인 사례를 잘 보여준다. 

국가부채 등이 그리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최근 포퓰리즘의 득세와 이로 인한 보편적 복지의 확대로 복지지출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고, 이는 이미 국가재정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작년에는 이미 보육재정의 부족 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의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위기는 먼 곳에 있지 않고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다. 그리스의 사태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리스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의 복지제도와 국가재정에 대해 점검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의 역사 및 일반현황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그리스는 서구문명의 발상지로 민주주의는 물론 철학과 정치학을 비롯한 학문의 태동지이기도 하다. 그리스는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비잔틴제국으로서 천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의 문화적, 군사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1071년 제국의 중심지인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지역의 상당 부분을 셀주크 터키에 빼앗겼고, 1204년부터 제4차 십자군전쟁 동안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15세기에 오토만제국에 의해 점령을 당해 많은 지식계층이 이탈리아 등 다른 국가로 망명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가 서유럽에 전파되어 서구사회의 르네상스를 이루는 역할을 하였다.

1820년대에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터키를 축출하고, 1828년 중앙그리스를 탈환하여 마침내 1830년 독립을 쟁취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는 공산주의와 반공산주의 진영 간의 내전을 겪으면서 경제가 황폐화되었다. 1974년에는 터키의 북키프러스 점령에 항의하기 위해 NATO에서 탈퇴하는 등 터키와의 긴장관계는 계속되고 있으며, GDP 대비 국방예산이 4.3%로서 EU 회원국 중 가장 많다.

1974년 군부독재가 종식되면서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체제가 확립되었다. 신민당은 중도우파, 사회당은 중도좌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에는 신민당이 집권에 성공했고, 이후 사회당과 정권을 주고받으며 15년 간 집권했다. 사회당은 1981년 정권교체에 성공해 처음 집권했고, 이후 정부를 구성한 기간은 22년이다. 2012년 총선에서 과반을 넘는데 실패한 두 당은 신민당 주도의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다가 이번 총선에서 시리자에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그리스의 2010년 기준 1인당 명목 GDP는 28,154 달러로 우리나라와 유사한 수준이다. 2010년 총인구는 1,100만 명, 그 중 생산인구는 500만 명으로 고용률이 낮으며, 임금근로자의 비율은 63.6%이다. 65세 이상 노인구성비는 2010년 18.3%이며, 2050년에는 32.5%로 우리나라 다음으로 고령화 속도가 빠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스는 1981년 EU에 10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2001년 유로존에도 가입하였다. 2004년 올림픽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2000년대 후반 심각한 재정 불안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최근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안정화 대책에 반대하는 과격한 시위와 정치 불안정으로 유럽은 물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등장했다. 


그리스 포퓰리즘의 등장과 확산 

그리스는 1929년부터 1980년까지 50여 년간 쿠데타와 독재, 내전 등 불안정한 정치상황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1인당 실질국민소득이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했고, 평균 경제성장률도 일본의 4.9%보다 높은 5.2%에 달할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다. 1981년 EU 회원국으로 가입할 당시 그리스 국가부채는 GDP의 25%, 재정적자는 3%에 불과했고, 실업률도 2~3% 수준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수개월 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이끈 사회당(PASOK)이 집권하면서 돌변하기 시작한다.

1981년 사회당 집권과 함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가 총리가 되면서 그리스의 포퓰리즘이 시작됐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총리에 취임하기 전까지 그리스 사회당을 창당하고 당수를 지냈으며, 1981년부터 1989년까지 8년 간, 그리고 1993년부터 1996년까지 3년 간 두 차례 그리스의 총리를 지내면서 그리스 포퓰리즘의 토대를 닦았다. 

1981년 총리에 취임하자마자 나온 그의 일성(一聲)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였다. 이에 따라 평균임금과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고, 의료보험을 전 계층으로 확대했다. 주요 기업들을 국유화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추진해 나갔다. 

  

<표: 주요 국가의 연금관련 지표 비교(남성, 평균소득자 기준, 2010년)

  
 


포퓰리즘은 또 이른 바 '연금천국’을 만들었다. 그리스 국민은 퇴직을 하면 자신이 받았던 최고연봉의 95%를 연금으로 받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은 59%이다. 근로자는 연금의 16%만을 부담하고 고용주가 28%, 그리고 정부가 나머지 56%를 담당한다. 그리스 전체 인구의 23%인 260만 명이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고, 국내총생산의 12%를 연금지불을 위해 사용한다. 힘겹게 일을 하지 않아도 많은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 사람들은 하루라도 빨리 퇴직하고 싶어한다. 조기퇴직에 따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완전연금이 지급되는 연금지급 개시연령이 57세(2010년 59세)로 낮기 때문에 연금수급시점 이후의 평균여명도 그리스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길 수밖에 없다. 그리스는 평균여명이 24년으로, OECD 평균인 18.5년에 비해 4~5년이나 길다. 일을 하고 연금을 부담하는 기간은 짧은 반면 조기퇴직과 높은 소득대체율, 긴 평균여명은 차세대에 전가되는 연금부담액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이른바 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경기침체나 인구감소 등으로 다음 세대가 부담하기 어렵게 될 경우 재정위기로 몰아가는 구조적인 원인이 된다.<표 참조>

노동조합의 힘을 빌리고자 정치인들이 노동조합과 결탁하였고, 이 과정에서 직종에 따라 노조가 해당 직군 종사자 수를 제한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구제금융 이후 정부가 실업률 해소 방안으로 업종 진입장벽을 없애기로 하자 택시노조 등 노조들이 파업 및 폭력시위를 벌이면서 개혁에 반대했다. 정치인들이 키운 노조의 힘은 막강하여, 개혁이 있을 때마다 개혁의 발목을 잡는 세력으로 등장한다. 앞서 민주주의의 취약점에서 언급되었던 바대로 정치인들이 시장 상인처럼 복지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아 표와 맞바꾸어 왔기 때문에 이들은 과도한 복지와 특권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이익이 침해되면 즉각 저항한다. 또 정치권도 복지를 흥정하여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편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최악으로 평가받는다. 엄격한 노동규제로 인해 기업 경영환경이 아무리 나빠져도 해고를 못하게 만들었다. 아무리 게으른 노동자도 해고하기 힘들다. 각종 허가를 받는 데는 긴 시간과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수많은 관청에 10여 차례 방문하는 것은 예사고, 간단한 회사 설립에만도 10개월이 소요된다. 토지 규제 역시 매우 까다로워서 개발사업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리스의 기업경쟁력은 바닥을 면치 못한다. 영국 컨설팅업체인 그랜트손톤이 36개국, 7,4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0년 국제 비즈니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그리스의 규제 수준은 유럽연합 평균치인 34%보다 훨씬 높은 57%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영세기업만 양산될 뿐, 성장하여 대기업으로 크는 기업이 나올 수 없다. 그리스 제조업체의 약 3분의 1이 고용인 10인 이하의 영세업체다. 독일은 4.3%, 덴마크 6%로 10% 미만이다. 영세업체의 비중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영세성은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쳐 전체 산업의 생산성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무분별한 복지정책과 함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확대했다. 관광 이외에 변변한 산업기반이 없는데다가 경직된 노동시장과 각종 규제로 인해 민간의 투자가 위축되고 일자리가 늘지 않자, 정부는 정부재정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고, 이렇게 늘린 공무원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지세력으로 활용했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면 새 정권은 자신들의 친인척과 지지세력들을 위해 새로운 공무원 일자리를 만들었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그리스에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존 인력을 줄이지 않은 채 주요 정치 지도자 측근과 이들의 가족과 친척들 수천 명을 정부 관료로 새로 채용하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4)

그 결과 인구 1,100만 명에 공무원이 98만 명이나 되고,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 간 공무원 수는 5만 명이나 증가했다. 이들의 임금 역시 해마다 5~7% 가량 증가해 왔다. 이들은 업무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거나 쇼핑을 해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제재를 받지 않았으며, 대부분 오후 2시면 퇴근하여 부업에 종사하고, 이렇게 부업으로 번 돈은 관행적으로 신고도 하지 않는다.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대부분 필요도 없는 일자리이며, 공공부문 종사자의 25%가 과잉인력으로 분류될 정도다. 그만큼 공공부문의 나태와 모럴해저드가 심각한 상태다. 일례로 그리스에는 이미 30년 전에 말라버린 코파이스 호수의 물을 관리하기 위해 관청이 설립됐고, 거기에 속한 공무원 30명에게 여전히 임금을 지급한다. 또 그리스 국립철도는 매년 1억 유로의 수입을 올리는 데 반해 직원 임금으로는 4억 유로를 지출한다. 

1980년 GDP의 29%였던 정부지출은 2009년 53.1%에 달하고, 그 중 75%가 공공부문의 임금과 복지지출로 나간다. 하지만 복지 수준은 오히려 열악하고 이에 따른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사회에 만연된 부패는 '파케라키(작은 돈 봉투를 의미)'라 불리는 뇌물로 상징된다. 공무원들의 부패는 앞서 언급했듯이 각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네야 한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12년 발표에 따르면 그리스 국민의 7.4%가 지난 1년 동안 부패를 신고했으며, 공공부문에 상납한 뇌물액이 약 5억5,400만 유로(약 8,3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돈 봉투가 오가는 행위는 그리스의 관행으로 굳어지게 됐고, 이 부패시스템은 사회전반에 파고들어 일반 가정에까지 만연됐다. 법률상 모든 수술이 무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정부가 의료 재정 지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국민들은 수술비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유기업원(현 자유경제원)에서 초청했던 그리스의 하치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일례로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1,500유로를 내야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10명이 함께 쓰는 열악한 환경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의료는 물론 교육에서도 '가욋돈 찔러주기’는 일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부실한 공교육의 보충을 위해 교사에게 별도로 돈을 내고 과외 수업을 받고, 교사들은 또 노골적으로 학생들에게 방과 후 돈을 내고 과외를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의 증가와 함께 큰 문제는 공공부문의 비중이 과도하게 높다는 것이다. 1990년까지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사업의 자산은 75%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는 이 비중을 50% 수준까지 감축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 비중이 여전히 높고, 아직도 민간부문이 많은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규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OECD는 판단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집권 초기 GDP의 25% 수준이던 국가부채는 집권 말기가 되면 80% 이상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런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에 열광했다. 이같은 포퓰리즘 정책과 포퓰리즘 정책에 열광한 국민들의 지지는 사회당 8년 집권으로 이어졌다. 그리스 사회당은 집권에서 물러났지만, 이후 그리스 정당들과 정치인들은 포퓰리즘의 위력을 실감했고, 경쟁적으로 복지포퓰리즘에 몰두했다. 예를 들어 2004년 총선 당시 신민당의 대표 카라만리스는 국가 개혁을 약속했지만 총리가 된 뒤 이를 저버렸다. 카라만리스 정부는 또 2009년 총선 직전에는 무려 1만개가 넘는 공직을 만들어내 친척들과 측근들에게 분배했다. 결국 그가 집권하는 동안 그리스 정부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복지지출과 공무원 임금 등에 돈을 펑펑 써댔지만 그리스의 조세부담률은 2011년 기준 20.4%로 한국의 24.3%보다도 낮다. 이는 세금을 걷는 것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세금 인상을 계속 미룬 탓이다. 이 역시 전형적인 포퓰리즘의 모습이다. 2010년 한 조사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국민 1인당 평균 세금납부액 8,300 유로보다 1.3배가 많은 1만600 유로를 각종 복지비용으로 지출했다. 국민 1인당 2,300 유로씩의 적자를 보고 있었던 셈이며, 재정적자가 불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2001년 유로존 가입 후 싼 금리로 들여온 자금은 그리스 포퓰리스트들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다. 재정적자가 엄청났음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가입 덕택에 금리가 대폭 하락하여 독일 금리 수준에 접근했다. 위기 시에는 유로존의 건실한 국가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암묵적 보증 때문이었다. 그리스는 그렇게 낮아진 금리로 국채를 발행해 정부지출을 더욱 늘렸고, 그 대부분은 '무상 복지’에 지출했다. 유로존 가입으로 약 10년 간 남의 돈으로 돈 잔치를 벌인 셈이다. 이런 돈 잔치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나타나고 세계 금리가 오르면서 막을 내린다. 

1980년 GDP의 25% 수준이던 국가부채는 2010년 초가 되면 140%에 이르고, 현재는 170%를 넘겼다. 실업률은 현재 25%를 웃돌고, 여의사를 비롯한 많은 여성들이 매춘에 뛰어들고 있다. 얼마 전까지도 그리스 현대 정치사의 거목으로 평가받았던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이제 그리스를 '유럽의 천덕꾸러기’로 전락시킨 원흉이 된 것이다. 

포퓰리즘 30년 만에 국가부채 위기로 몰리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에 대한 평가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는 처음에 위대한 정치인으로 평가받았지만, 30여 년이 흐른 지금에는 그리스를 망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포퓰리즘에 솔깃하는 정치인들은 이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단기간의 인기에 영합하느냐, 역사에서 나라를 망친 인물로 기록될 것인가. 그들은 종종 역사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그들이 진정 역사를 두려워한다면, 복지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쳐야 할 것이다.

1981년 시작된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포퓰리즘 정치가 그리스를 30년 만에 국가부채 위기로까지 내몰았다. 우리나라도 최근 급속한 복지의 확대로 복지지출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복지예산은 2006년 56조 원에서 지난 해 100조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115조 원을 넘기면서 9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반값등록금으로 인한 복지분야 고정지출이 올해만도 77조원을 넘는다. 반면 해마다 세수 부족은 계속되고 있다. 2012년 2조8,000억 원이던 세수부족액은 2013년 8조5,000억 원, 2014년 11조1,000억 원으로 매년 증가해 왔으며, 올해도 3조 원 이상의 세수 부족이 예상되고 있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나 연말정산 파동 등이 증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것이 세수 부족을 메꾸려는 '꼼수’를 부리다 나타난 결과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증세 없는 복지’ 약속은 그리스가 정치적 이유로 세금 인상을 연기하던 것과 다른가.

우리나라에서 복지포퓰리즘 정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라고 할 수 있을까.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실현, 그리고 10년 후 1999년 국민연금이 농어촌과 도시지역 모두를 망라하면서 전국민 연금시대를 연 시기부터를 포퓰리즘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가? 그런데, 서유럽 복지국가를 비롯한 그리스에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제도가 실시된 것은 복지포퓰리즘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의 일이라고 본다면, 전국민 의료보험과 전국민 국민연금 시대를 복지포퓰리즘의 시작이라고 보기는 무리다.

필자의 생각에 우리나라에서 복지포퓰리즘이 시작된 것은 2010년 교육감 선거 때이다. 이른바 '진보 진영’의 교육감들이 전면적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톡톡히 재미를 본 당시 민주당 등 야권은 무상보육, 무상교육,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등 소위 '3무+1반’을 내세우며 복지포퓰리즘에 기름을 끼얹었고, 이에 질세라 여당 스스로가 '반값등록금’ 논쟁을 재점화시켜 복지포퓰리즘의 불길에 태풍을 불러들였다. 이어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당시 후보자가 야당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보편적 복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복지포퓰리즘은 여야 구분도 없는 '퍼주기 경쟁’으로 치닫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나라 복지포퓰리즘의 시발점은 무상급식 논란이 일었던 2010년 지자체장과 교육감 선거가 치러진 해로 볼 수 있다. 이때부터 계산한다면 우리나라 복지포퓰리즘의 역사는 이제 겨우 5년 정도 되는데, 벌써부터 재정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셈이다. 

2010년부터를 우리나라에서의 복지포퓰리즘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본다면, 이제 5년이 경과되었고, 그리스의 예를 든다면 앞으로 25년 후인 2040년 경이 되면 그리스와 같이 복지포퓰리즘으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국회예산처가 최근 내놓은 '2014~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보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올해 37%에서 2030년 58.0%로 증가하고, 35년 뒤인 2050년에는 121.3%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2060년에는 그 비율이 168.9%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35년 뒤인 2050년 국가채무비율 121.3%는 현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채무비율과 비슷하거나 더 높은 수치다. 그리스는 재정위기가 시작된 2009년 이 비율이 115%였고, 현재는 175%까지 상승한 상태다. 국가채무 증가의 원인도 인구고령화에 따른 총수입 감소와 복지의무지출 등의 총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회예산처의 보고서는 현재의 복지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작성된 보고서다. 우리나라의 복지포퓰리즘은 이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여야 구분 없이 본격적인 복지포퓰리즘 경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며, 그럴 경우 재정위기의 시기는 더 빨라질 수도 있다. 앞으로 25년 혹은 늦어도 35년 후에는 그리스의 사태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의 포퓰리즘 정치에서 흥미로운 것은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 당시 총리였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뿌려 놓은 포퓰리즘의 씨앗이 30년이 흐르면서 무서운 가시덤불이 되어 그 아들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아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가 정권을 물려받을 당시 그리스는 파산 일보직전이었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그리스 정치평론가 니코스 디모우) 이러한 사실은 포퓰리즘과 과도한 복지가 당대에는 달콤한 유혹이겠지만, 결국은 1세대도 넘기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전가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가 만든 독약을 자식이 마시는 비극은 그리스 얘기가 아닌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다. 



1) Credit Default Swap. 부도가 발생하여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 
2) 동아일보, <구조개혁 거부, 정치실패 그리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 2015.1.27.
3) 권혁철, <민주주의, 복지, 그리고 사회주의>, [제도와 경제] 제7권제2호, 2013, p. 118.
4) 1993년 집권한 사회당은 당시 총리 비서실장에 총리 부인, 외무부차관에 총리 아들, 문화부차관에 총리 부인의 조카, 보건부장관에는 총리주치의를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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