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이슈터치] 기업 사외이사로 몰리는 `관피아들`

자유경제원 / 2015-03-18 / 조회: 2,371       뉴스1

[이슈터치] 기업 사외이사로 몰리는 '관피아들'

(서울=뉴스1) 최명용 기자 | 2015.03.17 08:30:00 송고
2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47인 중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15.3.3/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퇴직공무원들이 기업 사외이사로 대거 몰리고 있다. 사외이사는 회사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사내이사 외에 외부전문가들을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하는 제도다.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견제장치다.

최근 사외이사를 보면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란 본래 취지보다 전직 관료를 통한 로비 창구로 보인다. 관피아를 없애고 김영란법으로 공무원 비리를 근절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공무원들은 사외이사라는 새로운 밥그릇을 찾았다. 행정부는 물론이고 국세청, 검찰 등을 막론한다. 나이 불문, 업무 연관성도 불문이다. 

검찰조사를 받는 기업들이 전직 검사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은 약과다. CJ오쇼핑은 김종빈 전 검찰총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 전 총장은 이번이 두번째 사외이사다. CJ대한통운은 최찬묵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최 전 부장검사는 이재현 회장 변호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사외이사는 나이도 가리지 않는다. 80세 고령에도 사외이사가 되는 경우도 있다. 농심은 강경식 전 재정경제원 장관 부총리를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당초 라응찬 신한지주 전 회장을 영입하려 했으나 위장치매 논란이 불거지면서 강 전 부총리로 변경했다. 강 전 부총리는 1936년생으로 올해 우리나이로 80세다. S-Oil은 초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김철수 전 장관을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김 전 장관은 1941년 생으로 75세의 나이에 최악의 위기상황에 빠진 정유산업을 관리·감독해야 한다. 

업무연관성도 따지지 않는다. 규제산업인 금융권은 금융위위원회 출신 고위관료를 영입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키로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 2010년에도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외이사를 지낸 바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재정경제부 제1차관과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금융위원회는 자산운용업을 포함해 금융업과 관련한 각종 규제를 만들고 감독하는 곳이다. 윤용로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삼성생명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린다. 증권사도 마찬가지로 금융위 출신 인사들이 대거 사외이사로 거론된다. 

대기업들의 전직 고위 관료 영입은 대세아닌 대세다. 현대자동차는 이동규 전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과 이병국 전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포스코는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사외이사로 모신다. 박 회장은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지낸 인물이다. 기아자동차는 이귀남 전 법무부장관을 비롯해 김원준 전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 국장을 사외이사로 재선임한다. 이귀남 전 장관은 2013년부터 GS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두산그룹은 전직 고위관료 집합소가 됐다. 한승수 전 국무총리,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병원 경총 회장,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이 모두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에 신규 선임된다. 박 회장은 포스코와 겸임, 김대기 전 실장은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를 겸임한다. 

사외이사가 되면 어느 정도 일을 하고 대우를 받게 될까. 주요 기업들은 대개 1~2개월에 한번씩 이사회를 연다. 사업보고서 승인이나 대규모 투자 집행 등이 이사회를 거쳐야 하는 안건이다. 여러 안건들을 한꺼번에 몰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이사회를 자주 열 필요는 없다. 이사회는 보통 오전 10시~11시경에 시작해 점심식사까지 하고 끝난다. 한번 이사회에 참석하면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외이사들이 받는 연간 보수는 4000만원~8000만원 정도다. 제한이 없어서 동종업종만 아니면 겸임도 자유롭다. 두곳에서 사외이사를 하면 억대 연봉 안부럽다.

박병원 경총 회장은 포스코 사외이사와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두곳에서 모두 사외이사가 된다면 연간 보수는 1억원이 훌쩍 넘는다. 포스코가 2013년 기준 사외이사에 지급한 보수는 7300만원, 두산인프라코어는 6100만원이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는 연간 8회, 두산인프라코어는 연간 10회 이사회를 열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이사회를 한다면 1년에 18번 회의에 참석하고 1억3400만원을 챙길 수 있다. 

이귀남 전 법무부 차관은 기아자동차와 GS 사외이사로 등재된다. 기아자동차가 2013년에 사외이사에 지급한 보수는 평균 8000만원, GS는 7200만원을 줬다. 기아차는 연간 6회, GS는 연간 9회 이사회를 열었다. 두 회사가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이사회를 연다면 이 전 장관은 1년에 15번 이사회에 참석하고 1억5200만원을 번다. 이사회 1건당 1000만원을 받는 셈이다. 김대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두산과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로 선임된다. 두 곳에서 받게될 보수는 1억3000만원에 육박한다. 

물론 열심히 살펴보고 경영진들을 제대로 견제하는 사외이사들도 많다. 전직 관료들의 노하우와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의 안건 가결 비율이 99%에 달하고 이사회를 통과해 처리된 안건들이 훗날 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스캔들로 비화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김영란법'이 막 통과된 직후 사외이사로 몰리는 관료들을 바라보는 뒷맛은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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