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공산주의 몰락예견, 자유와 재산권 강조했던 이승만

자유경제원 / 2015-03-25 / 조회: 2,591       미디어펜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1. 우남 이승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373만, 103만, 68만, 160만, 164만.

이는 특정 키워드로 구글검색을 돌린 검색결과다. 20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박정희, 이승만, 김구, 김일성, 김정일 등 각 단어로 구글검색한 결과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67년간 국부 이승만이 한반도에 끼친 영향력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지만, 60여 년이 지나 21세기에서 ‘우남 이승만’의 대중적인 입지는 박정희 김정일 김일성 보다 못하다.

그렇다면 학문적으로 우남 이승만에 대한 연구는 얼마나 이루어져 있을까.

  
▲ 1899년 대역죄(大逆罪)로 한성감옥에 수감된 이승만은 1904년 '독립정신'이라는 불후의 명저를 집필했다. 110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외교전략과 국가정신이라는 면에서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통해 제목 및 주제어로 이승만을 입력해서 찾아보니, 총 1220건이 나왔다. 학위논문 136건, 국내학술논문 522건, 단행본 514건, 연구보고서 48건이다. 박정희에 대한 연구 건수는 총 2047건, 김구는 743건, 김일성과 김정일은 각각 2197건, 2405건이다.

2015년 ‘우남 이승만’의 학문적 입지는 김정일, 김일성, 박정희의 절반에 불과하다.

현재 우남은 대중적 입지와 학문적 입지 모두 과소평가되어 있다. 우남에 대한 과소평가를 극복하고 우남의 입지를 널리 알리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분투 어린 과업은 우남 이승만에 대한 공부와 전파에 있을 것이다. 올해는 우남 이승만이 출생한 지 정확히 140년 되는 해다. 우남 이승만은 140년 전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 지금의 북한 해주시다. 이제부터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건물 짓기에 수고한 목수들이었다. 

2. 자유주의자 우남 이승만

(1) 자유를 파괴할 자유는 없다

자유는 우리가 그토록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해서 얻은 소중한 유산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전쟁과 경제적 궁핍이 있는 기간에도 손상이 되지 않은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했지만 자유에는 자유 그 자체를 파괴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산주의는 자유의 반대개념이며 모든 자유와 개인 및 단체를 즉시 파괴하기 때문에 한국에는 공산주의자가 될 자유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자유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 1960년 이승만 대통령 메시지 중에서 -

우남 이승만은 한국에 공산주의자가 될 자유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자유는 결코 없을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5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종북을 표방하는 세력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우남의 자유주의 사상과 명백히 대립하는 존재다.

지난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통해 우남의 자유주의(방어적 민주주의)를 몸소 실천에 옮겼다.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는 조선노동당이 제시하는 정치 노선을 절대적인 선으로 받아들이고 그 정당의 특정한 계급노선과 결부된 인민민주주의 독재방식과 수령론에 기초한 1인 독재를 통치의 본질로 추구하는 점에서 우리 헌법상 민주적 기본질서와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피청구인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민항쟁이나 저항권 등 폭력을 행사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전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모든 폭력적ㆍ자의적 지배를 배제하고, 다수를 존중하면서도 소수를 배려하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저촉된다.

- 2014. 12. 19.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 에서 -

(2) 노벨상 수상자 하이에크 보다 20년 앞선 우남의 선견지명

미제스가 아버지라면,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August von Hayek, 1899~1992)는 자유주의의 어머니라 할 수 있다. 하이에크의 대표 저서는 『노예의 길』이다. 『노예의 길』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견한 저서로 1944년 출간되었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을 통해 1930~1940년대 사회주의 공산주의 방식의 경제계획이 참혹한 실패로 끝날 것임을 예견했다.

그런데 우남 이승만은 『노예의 길』 출간 21년 전인 1923년에 이미 ‘공산당의 당부당’을 써서 공산주의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우남 이승만은 공산주의의 부당성으로 다섯 가지를 지목했다.

  
▲ 초대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제헌헌법에서 서구식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명문화하고, 재산권보호 등 시장경제발전의 토대를 쌓았다.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아 공업화에 투자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창조하는 데 밑거름역할을 했다. 

첫째, 재산을 나누어 가지자? 열심히 일한 자나 일을 하지 않은 자나 공평하게 나누어 갖게 되면, 모든 사람이 일을 하지 않고 거저 얻어먹으려는 자가 나라 안에 가득 차게 된다.

둘째, 자본가를 없애자? 경쟁이 없어져 상공업 발달이 어려워지고 물질적 개명이 중지된다.

셋째, 지식계급을 없애자? 인민의 보통 상식 정도를 높여서 지금의 학식으로 양반노릇 하는 사람들과 비등하게 되자 하는 것은 가하거니와, 지식계급을 없이 하자 함은 불가하다.

넷째, 종교를 혁파하자? 종교를 없애면 인류의 도덕상 폐해가 막대해 진다.

다섯째, 정부도 없고 군사도 없으며 국가사상도 다 없이 하자? 이에 대하여는 공산당 속에서도 이론이 많을 뿐 아니라, 지금 공산당을 주장하는 러시아만 보아도 정부와 인도자와 군사가 없이는 부지할 수 없는 사정을 자기들도 모두 안다.

우남은 1923년 공산주의 사회주의의 통제경제 방식이 실패로 끝나리라 예견했다. 이는 하이에크 보다 20여년 앞선 선견지명이다.

(3) 재산권을 소중히 여겼던 자유주의자 우남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저서 『법』에서 “국가가 시민 각자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지켜주는 일에 충실하다면, 그리고 시민들도 이 자유주의 원리를 받아들인다면 인간 사회는 평온과 풍요를 구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남 또한 대통령 재임 시절,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는 정신을 강조했다. 1952년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개혁을 단행할 때였다. 화폐 개혁 원안에는 “100 대 1환으로 통화단위를 내리면서, 통화량을 줄이기 위해 일정한도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2~3년간 사용을 동결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 미주이승만기념사업회가 김문수 전 지사 일행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김문수 페이스북 캡처 

하지만 원안의 해당 조항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피땀 흘려 벌어서 쓰지 않고 저축해서 모은 재산을 정부라고 해서 권력을 가지고 강제로 2년 또는 3년 동안 동결시켜 못쓰게 한다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은 “자본주의의 가장 좋은 점은 사유재산제도를 엄격히 보호해 주는 것이다”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국민의 재산사용을 마음대로 제한하면 누가 정부를 믿겠느냐”고 강조했다.

결국 ‘2~3년간 일정 금액 이상의 사용을 동결한다’는 조항은 백지화되었고, 화폐 개혁에 대한 긴급금융조치법안과 대통령긴급명령 승인만이 통과되었다.

헌법 제23조는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공익을 이유로 재산권을 제한할 경우에는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40~1950년대 온 국민에게 자유주의 민주주의 재산권 개념이 희박하던 시절, 한반도에는 ‘사유재산을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를 지닌 대통령이 있었다.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3월 26일 자유경제원 회의실에서 주최한 초대 대통령 이승만 탄신 140주년 기념 청년토론회 <청년, 이승만과 함께 자유주의의 날개를 달다>에서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가 경제진화연구회 청년위원 자격으로 발표한 발제문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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