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1) - 고독한 결정

자유경제원 / 2015-03-25 / 조회: 2,371       업코리아
자유경제원은 한국의 기업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시대를 이끌어간 기업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이야기를 경희대 경제학과 안재욱 교수가 정리했다.


고독한 결정  

  
▲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1983년 2월 일본 도쿄의 오쿠라 호텔.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 진출 여부를 놓고 며칠째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마침내 서울에 있는 중앙일보 홍진기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반도체 사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누가 뭐래도 밀고 나가겠다.” '도쿄 선언’이었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오늘날 삼성이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 세계 1위, 전체 반도체 시장점유율에서는 인텔에 이어 세계 2위인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고민이 많았다. 수많은 위기를 넘겨 왔지만 반도체 생산 한 개 라인을 건설하는데 무려 1조원이나 드는 사업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반도체는 바로 수익을 볼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고 잘못되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일본으로 오기 전 “돈벌이만 하려면 반도체 말고도 많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고생하고 애를 쓰냐고요? 반도체는 국가적 사업이고 미래 산업의 총아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고 온 터였다. 사실 한국을 떠나 올 때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이미 절반은 결심했지만 임원들의 반대도 많았고,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자 이곳을 찾았던 것이다. 오쿠라 호텔은 이병철 회장이 무언가 깊이 생각하여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찾는 곳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에 소위 꽂힌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 있는 휴렛패커드 의 컴퓨터 반도체 공장을 둘러 보고난 뒤였다. 컴퓨터 하나로 모든 일을 하는 휴렛팩커드 사무실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서 그것이 반도체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부를 창출할 미래의 먹거리가 반도체에 있다는 것을 통찰해 냈다.  

이병철 회장이 미국을 방문하게 된 계기는 1982년 3월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기 위함이었다. 미국 방문 동안에 많은 미국의 최고경영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의 실리콘밸리, IBM, 휴렛팩커드의 컴퓨터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이병철 회장은 반도체 사업 기획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반도체 중 메모리 분야는 일본이 미국보다 앞선다는 내용을 보고 반도체를 생산하기로 결심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일본이 미국보다 앞선 이유가 일본사람이 손재주가 더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손재주라면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도쿄 선언에 대해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다. 삼성이 64KD램을 개발하려면 적어도 20년은 걸릴 것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담담하게 반도체 사업을 추진했고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바로 그해 64KD램 개발을 완료했다.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개발이었다. 세상의 비웃음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2013년 현재 삼성이 보유하고 있는 세계 시장점유율 1위 제품은 모두 21개다. 메모리 반도체는 20년 이상, 플래시메모리는 10년 이상, TV 판매량은 8년 연속, 세계 LCD 패널 시장에서는 11년 연속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휴대폰 시장에서도 2012년 노키아와 애플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2009년 삼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전자 기업으로 등극하며 1위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전자업계를 제패해 오던 미국 HP(휴렛패커드)와 독일 지멘스는 2, 3위로 밀려났다. 삼성전자는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 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14 글로벌 100대 브랜드(2014 Best Global Brands)’ 세계 7위를 차지했다. 휴대폰 분야에서는 갤럭시 S와 노트, 기어 S, 기어 VR 등 스마트폰과 다양한 웨어러블 기기를 선보이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삼성이 이렇게까지 성장한 것은 이병철 회장의 덕만은 아니다. 그의 자리를 이어받은 이건희 회장의 공헌이 무엇보다 컸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 대에 삼성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병철 회장이 마련해 놓은 기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38년 3만원(지금 돈 약 35억 원 정도)의 자본금과 직원 40여명과 함께 대구시 수동(현 인교동)에 '삼성상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시작했던 삼성이 2013년 순이익이 221억 달러, 총매출액 3,049억 달러, 총자산 5,295억 달러, 자기자본 2,312억 달러, 임직원 수가 489,000명에 달하는 거대 기업으로 컸다. 전자, 비료, 유통, 항공, 정밀 등의 다양한 산업 육성을 통해 한국 경제를 견인하며, 현재 전자, 중공업·건설, 화학, 금융, 서비스 산업을 통해 70여개 국가, 500여개 세계 속 거점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했다.  

기업가의 결정은 고독하다.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때문이다. 상업세계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다. 그 만큼 위험이 따르고 자연과학의 세계와는 달리 규칙적인 함수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알려진 과학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결정하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사전에 아무도 알 수 없다. 자신조차 모른다. 다만 주관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예측할 뿐이다. 그것이 기업가이고 기업가 정신이다. 이병철 회장은 그 길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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