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2) - 탁월한 기업가 정신

자유경제원 / 2015-03-25 / 조회: 2,097       업코리아
자유경제원은 한국의 기업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시대를 이끌어간 기업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이야기를 경희대 경제학과 안재욱 교수가 정리했다.

  

탁월한 기업가 정신 

  
▲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해방 후 1951년 이병철 회장은 삼성물산주식회사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철이 부족한 일본에 고철을 모아 수출하여 많은 돈을 벌었다. 거기서 얻은 수익으로 홍콩 등지에서 비료와 설탕을 수입해 국내에 팔아 더 수익을 올렸다. 이병철 회장은 무역업을 통해 번 돈을 이용해 제조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직원들의 반대가 심했다. 돈을 잘 벌고 있는 무역업을 그만 두고 전쟁으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왜 제조업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했고 기술적인 문제도 안고 있었다. 잘못하면 한 번에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병철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이병철 회장이 지난 10여 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치밀한 조사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해방 전 정미소와 운수회사의 실패로부터 얻은 귀중한 교훈이었다. 그래서 그는 직원들을 동원해 각계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했다. 

사전조사 결과 수입대체 효과와 장래성이 있는 품목으로 종이, 페니실린, 설탕으로 압축되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설탕이었다. 설탕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것에 비해 하루라도 더 빨리 착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953년 4월 삼성물산주식회사에 제당 사무소를 설치했다. 회사 이름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로 정했다. '제일’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한국의 No.1 회사여야 한다는 이병철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이었다. 

그러나 공장 건립은 쉽지 않았다. 일본 제당업계는 강력한 라이벌을 견제하려 했고, 이승만 정부의 반일정책으로 일본으로부터 기계수입 허가를 받는 것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일본에서 기계를 들여왔지만, 기계를 조립할 수 있는 전문가가 없었다. 그리하여 공장장과 함께 기계를 판매한 '다나카기계’를 방문한 이병철 회장은 직접 기계와 기계운전, 공장 운영 등에 대해 공부하며 배웠다. 그리고 귀국 후 우리나라 기술자들을 데리고 기계를 조립해나갔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6,300킬로그램의 설탕이 처음으로 만들어져 시장으로 트럭에 실려 나갔다. 그날이 바로 1953년 11월 5일이었다. 이병철 회장에게 감격적이고 역사적인 날이었다. 

제일제당의 설탕 가격은 수입설탕 가격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수입설탕의 가격이 한 근에 300환, 제일제당의 설탕은 100환이었다. 제일제당이 설립되던 1953년 설탕 수입량이 23,800톤이었다. 수입가격은 톤당 35달러였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것이 제일제당 설립 1년 뒤에 51%로 떨어졌고, 2년 뒤에 27%, 3년째에 7%로 떨어졌다. 엄청난 외화가 절감되었다. 제일제당은 1955년 설비를 늘려 생산량을 두 배로 늘렸다.  

이병철 회장은 설탕 생산 2년 만에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위기가 찾아왔다. 1955년과 1956년 사이에 동양, 삼양, 대한 등 7개 회사가 설탕 생산에 뛰어 들어 들면서 공급과잉이 발생했다. 게다가 설탕에 대한 물품세가 3배나 올랐다. 소비가 확 줄었다. 도산하는 회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제일제당도 거의 도산직전에 몰렸다. 

이 경영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직원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그리하지 않았다. 1,000명에 이르는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는 회사가 어려워졌다고 가족 같은 직원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직원 수를 줄이는 대신 다른 방안을 택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밀가루 생산이었다. 그가 밀가루를 생산한다고 하자 제일제당 경영진이 반대했다. 당시 밀가루 시장 역시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영진은 제과업을 원했다. 과자를 만들면 설탕이 많이 필요하니 서로 도움이 될 것이고, 당시 과자를 만드는 회사들의 규모도 작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승산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회사가 궁지에 몰렸다고 제과업으로 손실을 메꾸는 것은 기업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러분 말이 맞습니다. 제과업은 우리가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살자고 그 작은 회사들을 죽여야 하겠습니까? 나는 돈이나 많이 벌자고 기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고요.” 

밀가루를 만들면 당장은 더 큰 어려움에 처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분명히 제당사업과 서로 도움을 주면서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병철 회장은 경영진을 설득하여 1957년 설탕제조설비에 제분설비를 더했다. 그리고 1958년부터 밀가루를 생산 판매했다. 첫해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1959년 우리나라 전체 밀가루 생산량의 약 1/4을 공급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병철 회장이 밀가루를 선택한 것은 당장의 이익을 고려하기 보다는 기업가로서 제일제당을 종합식품회사로 성장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병철 회장의 바람대로 제일제당은 국내최고의 식품회사로 성장했다. 

기업가 정신이란 바로 상업세계의 불확실성을 떠맡는 정신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은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기업가적 성향을 가진 사람은 불확실성을 이윤 기회로 포착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기회를 인식하는 것이 기업가의 정신이다. 성공적인 기업가는 다른 시장참가자들이 채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그러한 기회를 보는 것은 전형적으로 탁월한 상상력과 비전 그리고 창의성에 기인한다. 이병철 회장은 이런 능력을 갖춘 기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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