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4) - 기업경영의 교과서

자유경제원 / 2015-03-26 / 조회: 2,471       업코리아
자유경제원은 한국의 기업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시대를 이끌어간 기업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이야기를 경희대 경제학과 안재욱 교수가 정리했다.

  

기업경영의 교과서 

  
▲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1968년 1월 1일 이병철 회장은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다. 한국비료사건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1년여 동안 조용히 자연농원에서 칩거하다가 회사로 돌아 온 것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복귀하자마자 개발부를 새로 만들어 '전자산업’에 대해 조사하도록 했다. 그의 특유의 경영방식에 따라 새로운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와 자료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는 흑백텔레비전 시대였다. 흑백텔레비전이라고 할지라도 매우 비싸 웬만한 월급쟁이는 구입할 엄두가 나지 않는 품목이었다. 또 세계 전자산업은 미국, 유럽, 일본이 주도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껏해야 외국산 부품을 들여와서 조립하는 수준의 기업들만 몇 개 있었다. 그래서 전자산업에 대한 비전이 그리 크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기술혁신과 대량 생산을 해 가격을 낮추고 수요를 창출하면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산요공장을 비롯한 일본 전자업계를 둘러보았다. 일본의 전자산업의 규모에 자극을 받은 이병철 회장은 산요공장보다 단 1평이라도 더 크게 공장을 짓도록 한다. 역시 임직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이병철 회장은 임직원들을 설득하여 수원의 매탄동에 14만 5,000제곱미터의 땅을 공장부지로 매입했다. 삼성이 부동산투기를 한다고 여론이 들끓었지만 이병철 회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1969년 12월 삼성이 50% 출자하고, 일본 산요전기가 40%, 스미토모상사가 10%를 출자하여 '삼성산요전기’를 설립했다. 

삼성이 일본 산요전기와 합작을 통해 삼성전자 설립을 준비하자 기존 전자 업체들이 대대적으로 반대했다. 삼성은 텔레비전과 라디오 생산량 중 15퍼센트만 국내에서 팔고 나머지는 모두 수출하겠다고 했지만 15퍼센트도 허용하지 말아야한다고 했다. 가뜩이나 좁은 시장에 삼성까지 들어오면 견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정부가 전자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생산물량 전부를 해외에 수출한다’는 조건 하에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허용했다. 이로써 1958년 금성사가 설립된 지 10여 년 만에 삼성이 후발주자로 전자업계에 뛰어들면서 금성(지금의 LG)과 피할 수 없는 경쟁 관계가 되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전자산업으로 뛰어들었지만 라디오, 세탁기,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에서 삼성은 항상 금성에 뒤졌다. 만년 2위였다. 항상 1등 제품을 만들고자 했던 이병철 회장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게다가 합작투자 했던 산요전기가 적극적이지 않았다. 텔레비전 공장을 짓는 데도 잘 협조하지 않고 기술제휴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조립한 제품에는 삼성이 아닌 산요전기 상표를 붙여야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이병철 회장은 1972년 텔레비전 공장 건설이 끝나자 산요전기의 투자 분을 모두 인수했다. 산요전기와의 합작을 청산하고 단독으로 텔레비전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했다. 그런데 이것이 아주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1973년 말 삼성텔레비전의 국내시판이 허용되면서 서서히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삼성은 다른 업체들이 흑백텔레비전 판매에 열중할 때 컬러텔레비전을 개발했다. 1974년 국산 컬러텔레비전 1호를 생산해나는데 성공했다. 컬러텔레비전을 생산했지만 정부는 계속 흑백텔레비전 방송을 고수했다. 그러다가 1981년 컬러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면서 삼성은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1984년 국내텔레비전 시장에서 처음으로 1위에 올랐다. 그 때 만들어진 컬러텔레비전이 '이코노빅’이었다. 그것은 절전형 프리볼트 텔레비전이었다. 1982년 보스턴 대학에서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를 받게 된 것도 미국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던 '이코노빅’ 때문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기업경영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기업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기업을 움직인다.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사람이다. 또 그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은 기업이다.” 그리하여 이병철 회장은 좋은 인재를 등용하는데 힘썼다. 그리하여 당시에 파격적인 사원 공개채용 제도를 실시했다. 사원 공개채용은 국내 최초였다. 그리고 사원선발 면접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본인이 직접 했다. 

“얼굴을 보고, 말 몇 마디 듣고 그 사람의 인품을 제대로 가려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나는 재기에 치우친 듯한 젊은이보다는 성실하고 온후한 인상을 주는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간다. 나는 채용기준에 있어 학력 50점, 인물에 50점씩 배정한다. 인물은 용모 단정하고 건강하고 능동적인 성격을 우위에 둔다. 이 점은 필기시험 성적에 치중하는 타사와는 다르다. 학과성적이 좋다고 해서 꼭 훌륭한 인재라고 할 수는 없다.” 
-<호암 어록> 중에서 

당시 친척들 중에 큰 사업을 하면서 자리 하나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친척들을 잔뜩 들여 놓은 회사치고 변변히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혈연, 학연, 지연을 배제하고 어디까지나 능력위주로 사람을 썼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은 송나라 역사를 적은 <송사>에 나오는 '의심 가는 사람은 쓰지 말고, 한 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는 말을 자신의 철저한 경영철학으로 삼았다.

이병철 회장은 좋은 인재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을 더욱 더 좋은 인재로 육성하는데도 정성을 쏟았다. 그는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부실경영자로 생각할 만큼 인재 양성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1974년에 인사고과제도를 체계화하고 1982년에 국내 최초로 그룹연수원을 만들었다. 

“국가발전이 탁월한 정치가에 달려 있다면 기업의 발전은 유능한 경영자에 달려 있습니다. 내 일생의 80%는 인재를 모으고 교육시키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키운 인재들이 성장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좋은 업적을 쌓는 것을 볼 때 고맙고 반갑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이병철 회장은 인재육성뿐만 아니라 인재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인재관리 요체는 신상필벌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공을 세운 사원에게는 상하를 막론하고 과감하게 경제적 보상과 파격적인 승진 혜택을 주었다. 이런 경영원칙은 열정과 야망이 있는 직원들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

“나는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모든 일은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출발했고 지금도 그 원칙을 일관하고 있다. 우리 직원들이 나를 생각하고 대접하고 있지만, 나는 인재라고 기억되는 사람을 그들이 나를 대접하는 것보다 수십 배로 더 생각해준다. 그런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놓고 그들의 장래와 생활안정을 보장한 후에 모든 일을 떠맡겨버리는 것이 바로 경영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즉 성실하고 책임질 줄 아는 사람, 더 욕심을 낸다면 급할 때 판단이 빠르고 부하들이 따를 수 있는 덕망까지 갖춘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위임해버리는 것이다.”
-1977. 5 <사보 삼성>에서 

기업의 궁극적 목표는 생존과 지속적 성장이다. 오랜 동안 계속 이윤을 얻지 못하면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만다. 그래서 기업은 이윤을 늘리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기업이 장기적으로 이윤을 늘릴 수 있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수입을 늘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용 절감이다. 

기업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가격이 오르는 경우와 판매량이 증가하는 경우다. 따라서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것이 수입을 늘리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가격을 올림으로써 수입이 증가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에 달려 있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그에 따른 소비량 변동이 크지 않을 경우에 수입이 증가한다. 한편 가격을 올리지 않더라도 판매량이 증가하면 기업의 수입이 증가할 수 있다. 판매량 증가 역시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소비자들이 많이 사주면 수입이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의 수입은 소비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소비자들이 그 기업의 제품을 반복적으로 구매해주며 구매를 늘릴 경우에만 기업의 수입이 유지되며 증가한다. 

그리하여 기업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첫째, R&D에 투자하고 품질관리를 통해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둘째, 고객에 대한 서비스 제공을 위해 종업원들을 교육하고 훈련하여 인력을 관리하며, 셋째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광고와 홍보를 통해 이미지 관리를 하고, 넷째, 디자인, 조직관리, 경영방법 등에서 혁신을 추진한다. 

또한 비용이 절감되면 이윤이 증가하기 때문에 기업 역시 비용을 절감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한다. 첫째, 값싸고 질 좋은 원자재를 구입하려고 하며, 둘째, 능력 있는 근로자를 고용하고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교육과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넷째, 비용절감을 위한 R&D에 투자한다. 

이병철 회장은 이러한 기업의 본질과과 원리를 통달한 기업가다. 그리하여 그는 기업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수입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발견하고 실행했다. 이병철 회장의 경영 곳곳에 이러한 원리들이 배여 있다. 많은 기업들이 그의 다양한 기업경영방법을 모방하며 따랐다. 그가 한국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도 크지만 한국의 기업세계와 기업문화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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