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대우그룹 창업자 김우중 (10) - 정치 리스크를 외면한 대가는 컸다

자유경제원 / 2015-03-30 / 조회: 2,467       업코리아
자유경제원은 한국의 기업가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첫번째 기업가는 대우그룹 창업자 김우중이다. 자유경제원 최승노 부원장이 정리하였다.

  

정치 리스크를 외면한 대가는 컸다 

   
▲ 대우그룹 창업자 김우중

당대 최고의 전략가였던 칭기즈칸은 전술에 능수능란했다. 이길 것 같지 않으면 얼른 후퇴했다. 바람처럼 쳐들어가고 불리하면 순식간에 도망쳤다. 야구에서 투수는 늘 직구로만 승부하지 않는다. 정면 승부보다 헛스윙을 유도하기도 한다.

김우중은 성공을 눈앞에 두고 후퇴해야 하는 상황을 맞는다. 쉽지 않은 결정의 순간이다. 더구나 역사에 유래가 없는 세계경영이 완성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현실이 답답하고 밀어붙이고 싶었을 것이다. 너무 억울한 일이지만 참아야 했다. 참고 다음 기회를 다시 찾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설마 그렇게 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던 정치인들과는 너무도 달랐다. 경제와는 달리 정치의 세계에서 그것도 자신을 적대시하는 세력에 대해 우직함을 드러내는 것은 그렇게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대우가 직격탄을 맞은 건 역설적으로 그의 세계경영이 너무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등하자 국내 대기업 중 외화 자산이 유난히 많았던 대우는 1997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8조 5천억 원의 환차손을 입었다. 국가신용등급이 여섯 단계나 떨어지면서 세계 곳곳에 가장 많은 사업장을 갖고 있던 대우는 해외 채권자로부터 상환 압력도 가장 심하게 받았다.

1997년 아시아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겪는다. 우리나라도 정부의 외환금융정책의 실패로 국가부도위기에 몰린다. 또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 이 험난한 파도를 넘어야 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김우중은 내부 보다는 외부 리스크에 몰입해 있었다. 그의 해법은 더 올바른 선택이었고, 뛰어났다. 하지만 정부는 그의 의견을 외면했다. 지금 뒤돌아봐도, 외환위기를 초래했던 정부가 우왕좌왕하며 우리 경쟁력을 스스로 무장해체시킨 점이 드러난다. 역사가 늘 진보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명분에 고착되어 있었고, 관료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몰두해 있었다.

대우를 붕괴시키겠다는 정부의 속내가 1998년 7월 22일 발표된 회사채 발생 제한조치로 드러났다. 정부의 의중을 간파한 노무라 증권은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그렇게 시작된 금융시장의 압박은 대우의 자금난을 불렀고 결국 김우중은 1999년 봄에 백기를 듣다. 전 재산을 담보로 내놓고 유동성 자금을 요청한다. 하지만 대우는 결국 1999년 10월 워크아웃에 들어가 그룹 해체를 맞았다. 

당시 필자는 30대 그룹의 재무제표를 분석해 '한국의 대규모기업집단' 보고서를 매년 출판하고 있었다. 노무라 보고서는 필자의 책에 들어있는 자금사용 내용에 관련한 표를 인용하며 대우 부실의 증거로 삼았다. 하지만 그 표를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이었다. 결국 필자는 대우그룹 자금난 관련 기자회견장에 나가 의견을 진술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당혹스런 일이었다.

IMF 외환위기 최대 희생양은 대우였다. 왜 정부는 대우를 해체했을까. 김우중은 자신의 장기였던 국가 지도자와의 교류에 문제가 없었다. 김대중과 여러 차례 독대할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김대중 정부를 뒷받침하는 세력은 생각이 달랐다. 김우중의 독대도 그들에게는 화나는 일이었다. 해체해도 시원치 않을 재벌의 오너가 자신들을 제치고 대통령과 독대하는 것에 못마땅해 했다.

공권력을 이용한 재벌해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IMF라는 특수 상황에서 재벌을 사회의 공적으로 몰아 해체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쌓기는 어렵지만 허무는 일은 순식간이다. 김대중은 1998년 5월 11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죽일 기업은 죽이고 살릴 기업은 살리겠다.”고 선언했다.

김대중 정부에는 김태동처럼 재벌해체를 획책했던 세력이 득세했다. 그들은 재벌해체에 열을 올렸다. 동물의 세계에서 볼 수 있듯이 한 번 생채기가 나면 순식간에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대우는 공격적인 경영으로 자금순환이 빡빡한 상태였다. 당시 30대 그룹을 재벌의 범주로 봤지만 가장 상징적인 존재는 역시 5대그룹이었다. 그 가운데 대우가 재벌해체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그들에게는 우리 삶의 터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내 것도 아니고 새로 만들면 그만이라는 무지가 자리했다. 기업은 계획하고 명령하면 언제든지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치열한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산업화를 깔봤다. 민주화만이 모든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았다. 산업화 없는 민주화는 불가능하고 모래성임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기업은 지식의 유기적 복합체다. 역사가 있고 노하우가 녹아있다. 대우라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 유산을 파괴하는 일은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것처럼 무지한 일이었다. 자학이 지나쳐 스스로 날개를 꺾어 버리는 우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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