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경제민주화·무상복지…한국 민주주의는 `안녕`한가

자유경제원 / 2015-04-02 / 조회: 2,553       미디어펜
   
▲ 김우택 한림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기억하라. 민주주의는 결코 오래 가지 않는다. 낭비하고, 탈진해서 스스로를 죽인다.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그 어디에도 없다” -존 아담스, 1814

미국은 '발명된 국가’라고들 한다(Garry Wills). 그 발명자들 중 대표적 한 사람인 아담스 미국 2대 대통령이 꼭 200년 전에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지난 세기에는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가 자살하면서 히틀러의 나치즘이 등장했고, 민주주의가 자살할 시간조차도 얻지 못한 채 쿠데타의 희생물이 되곤 해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렵사리 명맥을 유지해오던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도 근년에 자살하면서 차베스식 사회주의 독재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가. 그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한 듯 하다.

민주주의 자살론의 원조는 플라톤

그런데 민주주의 자살론의 뿌리를 찾아 정치 사상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정체(politeia)론의 효시할 할 수 있는 플라톤의 『국가』가 그 원조임을 발견하게 된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最善者 정체’ 즉, '올바름’(正義; dikaiosyne) 혹은 '훌륭함’(德; arete)을 추구하는 현자(philosopher king)가 지배하는 국가이다.

그는 '최선자 정체’의 논의에 이어, 다른 네 가지 유형의 정체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최선자 정체가 쇠퇴하면서 훌륭한 자질의 후손 생산에 실패하면, 변질된 형태의 타락한 정체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첫 번째가 아직은 덜 타락한 단지 이성보다 열정이 앞서는 '명예지배 정체’(timokratia)이다.

승리와 명예에 대한 욕망이 지배하는 정체는 '돈에 대한 욕망’이 강한 소수 부자들이 지배하는 '과두 정체'(oligarchia)로 대체되고 그 정체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대립하면서 '민주 정체’(demokratia)가 등장하게 된다. '평등에 대한 욕구’에서 출발하여 관직도 추점으로 배정하는 민주정체는 방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자유에 대한 끝없는 욕망 때문에 '참주 정체’(tyrannis)로 넘어가게 된다.

플라톤 정체 론의 특징은 정체 분류체계와 정체 변천을 설명하는 동학(動學; Dynamics)에 있다. 첫째, 그는 정체를 일차적으로 바람직한 체제와 타락한 체제로 분류하고 후자를 다시 지배자(혹은 집단)가 추구하는 가치 또는 욕구에 따라 분류했다.

타락한 네 정체 중 덜 타락한 과도기의 '명예 정체’를 제외한 세 정체는 지배자의 수를 기준으로 한 분류로 이해될 수도 있다. 지배자가 한 사람인 '참주 정체’, 소수인 '과두정체’, 다수인 '민주정체’로 말이다. '명예정체’와 '최선자 정체’는 지배자가 한 사람일수도 소수집단일 수도 있다. 플라톤은 한 사람의 현자가 지배하는 '최선자 정체’는 '왕도정체’(basileia)로 소수의 현자들이 지배하는 경우는 '귀족정체’ (aristokratia)로 불렀다.

그러니까 각 정체의 질적 수준은 지배자의 수준과 일치하며, 지배자의 수준은 그가 추구하는 가치가 결정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현자’와 보통사람인 '민중’(demos)은 서로 배타적 부류이기 때문에 플라톤에 따르면 보통사람이 지배하는 민주정체는 결코 바람직한 정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정체 론과 현대 공공선택 이론

플라톤 정체 론의 두 번째 특징인 정체변천의 동학을 민주정체의 쇠퇴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민주정체에서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생겨난다. 첫째는 수벌(雄蜂; kephen)로 불리는 부류의 선동 정치가들과 그 아류들로 본성은 게으르고 낭비적이다.

이중에서 용감한 무리가 말하고 행동하면서 인도하면, 덜 사내다운 무리는 지원세력으로 행동한다. 그러면서 정체에서의 의사결정을 조종한다. 둘째는 대중과 구별되는 부자들로 수벌 부류들이 먹이 감으로 생각한다. 세 번째가 보통사람인 민중(demos)이다. 손수 일을 하고 정치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재산도 그리 만치 않은 사람들이다. 집회를 갖는다면, 다수이기에 주도권을 갖지만, 경제적 이득이 기대되지 않으면 집회를 가지려 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민주정체의 몰락과정이 수벌 부류가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아서 대부분은 자신들이 차지하고, 일부를 민중들한테 나누어 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시작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렇게 되면 부자들도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반격을 꾀할 것이고, 정치는 점차 혼란에 빠지게 된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쉽게 동요하는 군중(ochlos)을 거느린 소위 '민중의 지도자’라는 참주(tyrannos) 후보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상업경제에서 시작되어 시장경제의 발전과 함께 공진화해온 제도이다. /사진=연합뉴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플라톤의 민주주의 자살 모형에서 공공선택이론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논리구조를 만난다는 것이다. 맨서 올슨(Mancur Olson)은 1965년 출판된 『집단행동의 논리』에서 “집단 구성원의 수가 많으면, 그들이 공동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도록 만드는 장치가 있거나 또는 강제하지 않는 한, 합리적이고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그들 공동의 혹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을 것”임을 보인 바 있다.

광범위한 대집단의 구성원인 개인이 집단의 이익을 위해 행동에 나서서 사적으로 얻을 이익은 크지 않다. 따라서 합리적 개인은 남들이 나서기를 바라며, 자신은 무임승차하려 한다. 반면 소수로 구성된 이익집단에서는, 집단행동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했을 때 개인에게 돌아갈 이익이 크기 때문에 각 구성원들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선다.

플라톤의 모형에서 수벌 집단이 적극적 행동으로 민주정체를 타락시키는 정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무임승차 하려는 민중 개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이에 방조했기에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지난 십수 년간 우리나라의 수벌집단들도 경제민주화니 무상복지 시리즈니 하면서 플라톤 모형의 민주주의의 길을 밟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민주주의도 안녕한 것 같지는 않다.

역사에서 만나는 민주주의 자살 예방법

우리의 민주주의가 자살을 향한 길을 계속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은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길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자살하지 않은 민주주의를 발전시켜온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구상에서 200년이 넘는 민주주의 국가는 영국과 미국 둘 뿐이다.

의회주권을 확립한 명예혁명에서부터 치면 영국의 민주주의는 300년이 훨씬 넘고, 월폴(Robert Wolpole)내각 출범으로부터는 거의 300년이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새로 세워질 나라의 근본원칙,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정의하고 중앙정부의 형태를 정하는 헌법을 제정 선포하면서 시작한지 200년이 훨씬 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졌다.

성문헌법을 갖지 않은 영국의 경우, 그 민주주의의 장수 비결을 알려줄, 이견의 여지가 없는 공식문서를 거론하기가 어렵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헌법과 그 해설서라 할 수 있는 The Federalist Papers에서 장수 비결을 엿볼 수 있다.

미국 헌법을 초안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자치를 실현하려는 과거의 노력들이 예외 없이 전제정치로 끝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이 다수가 공공선에 반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부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침해하는 것 때문이라는 분석에서 나오는 결론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그 원인이 인간 본성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유의 제약 없이는 문제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다수의 횡포를 막으려면 권력의 집중과 비대화를 막는 장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첫째에서 나오는 처방은 참정권의 제한이었다. “대표 없는 과세 없다.”는 구호에서 출발한 미국독립이었기에,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졌다. 납세에 따른 선거권 제한을 철폐하는 수정조항 24조는 1964년에야 비준되었다.

두 번째에서 나오는 처방은 “공화제 정부에 가장 흔한 질병에 대한 공화제 처방”인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 독립된 사법부, 대의제였다. 만일 권력의 분리가 완전하면, 서로 간의 견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삼부 간에 권한의 중복이 있도록 했다.

입법부는 삼부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국민들에게도 가장 가까운 부서이기 때문에 둘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하원은 국민들의 당장의 욕구를 담아내고, 상원은 하원에서 통과시킨 법안들을 공동체의 관점에서 심사숙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종신직 대법관제로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했다. 법관의 독립성이 헌법과 개인자유 수호에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과연 이 두 가지로 민주주의 장수가 설명되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헌법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라는 의견이 있다(Albert P. Blaustein). 전 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미국헌법을 벤치마킹해 자국의 헌법을 만든 것을 일컫는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의 민주주의가 장수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나라의 헌법도 미국헌법과 같은 원리를 수용하여 외견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원리가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삼부가 있기는 하지만 삼권이 분립된 것은 아니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도 작동하지 않는다. 사법부의 독립도 말뿐 줄곧 정치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야당 대표가 여론투표로 법안을 결정하자는 판이니 대의제도 외형뿐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공화제 처방’보다는 참정권 제한 같은 자유의 제약이 영․미 민주주의 장수에 더 기여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정작 이들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따로 있는 듯하다.

그 첫째는 영국 민주주의 300년 동안 지난 반세기를 제외한 시기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시기였고, 미국은 제국주의적 대외 팽창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지금까지도 새 변경(New Frontier)을 말할 수 있을 만큼 광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이다.

이는 국내정치의 긴장 열기를 분출할 출구가 있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진취성, 개방성, 자기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해 자기이익보다는 공공선을 생각하는 덕성을 갖춘 지도자를 많이 배출하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요인 두 번째는 이 시기가 두 나라 모두 산업혁명을 이룬 시기였다는 점이다.

고도 경제성장 시기는 국민들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웬만한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덮고 지나갈 수 있게 만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자살모형의 제로섬 게임구도의 갈등이 설 자리를 잃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상업경제에서 시작되어 시장경제의 발전과 함께 공진화해온 제도이다. 영국과 미국 민주주의의 장수가 이 공진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자살의 길에서 벗어나 장수하려면, 민주주의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공화제 처방’의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처방은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로 열린 자유시장경제가 온전히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일 터이다. /김우택 한림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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