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사회적경제는 통제경제 변종이자 관치경제의 부활

자유경제원 / 2015-04-13 / 조회: 2,913       미디어펜
2014년 발의된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이번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사회적경제기본법은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사회적경제조직으로 규정하고, 정부가 이들 조직을 육성·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선진국에서는 협동조합 등이 민간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오랜 시간 활동해 왔고 제3섹터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서구 사회와는 다른 역사적 경험과 조건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경제는 서구 선진국에서도 아직 논쟁 중인 개념이다. 유사법인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아직 안착되지 않은 상태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유사법 간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에게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다.

졸속 입법 처리야 말로 국회의 무책임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사례다. 국가 재정 낭비 및 시간 허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의 실책을 짚어보고 사회적경제기본법의 민낯에 대해서 검토해야 한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 자유경제원, 한국협동조합연대,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사)행복세상, (사)민생경제정책연구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전국환경단체협의회, 자유교육연합 등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여야가 발의한 사회적경제기본법안의 내용을 검토하고 수정방안 및 법의 경제적 사회적 파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주관단체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어떻게 볼 것인가> 토론회를 10일 국회의원회관 2층 제7간담회실에서 열었다. 아래 글은 발제자로 나선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이 발표한 발제문 전문이다.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사회적경제는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의 변종이 되거나 관치경제의 부활을 의미할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일종의 원시적경제로 회귀하려는 원시사회 본능”이라며 강조했다. 5천만 국민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인간관계를 수백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원시공동체 시절의 ‘연대, 협동, 단결’ 등의 가치로 제단하겠다는 지적이다. [편집자주]

 

사회적경제와 자유시장경제 : ‘사회적경제기본법안’에 대하여

1.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의 주요 내용

“대한민국은 초고속 성장을 이루었다. 잘 살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양극화가 심해졌다. 이 양극화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붕괴시킬 정도로 심각하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붕괴를 막는 것은 시대적 과제이며,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한국경제의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경제의 체제개혁은 어느 방향으로?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인 국가의 복지, 자유시장경제의 성장으로는 부족하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사회적경제가 새로운 대안이다.”

“사회적경제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든 경제적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사회적 가치란 ‘빈곤을 해소하는 복지, 따뜻한 일자리, 사람과 노동의 가치, 협력과 연대의 가치, 지역공동체의 복원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선한 정신과 의지 등’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자생력이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된다. 이 자생력 없는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살아남고 지속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이다. 이 법안을 통해 ‘사회적경제조직의 설립, 경영의 지원 및 일자리 창출을 도모함으로써 양극화 해소, 건강한 공동체의 조성 및 국민경제의 균형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법안을 제안한 목적이다.”

이상이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의 간추린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세상의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이, 어떤 법안이나 정책의 의도와 목적이 선하고 훌륭하다고 해서 그것의 효과와 결과까지도 선하고 훌륭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심심찮게 목격하고 있다. 이미 200년도 더 이전에 애덤 스미스는 “나는 공공선을 위해 사업을 하는 척하는 사람이 이루어놓은 좋은 일을 결코 많이 알지 못한다.”고 일갈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은 어떤 특성들을 내포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런 특성들은 어떤 모습의 경제를 낳을 것인가? 사회적경제와 자유시장경제는 양립할 수 있는가?

2. ‘사회적’ 경제에서 ‘사회적’ 용어의 문제

근본적으로 ‘사회적’이라는 말 “그 속에는 자유주의에 대한 반감이 내포되어 있어, 자유주의는 수정되어야 할 대상이다. 또한 그 속에는 수정될 정치적 방향이 들어 있다. 그 어젠다의 성격은 유대감과 나누어먹기 등 소규모집단의 윤리를 요구하는 재분배의 성격이다. 성장보다는 분배가 사회적이고 자유보다는 평등이 사회적이라는 뜻이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의 관점도 마찬가지다. 자유시장경제체제, 특히 한국에서의 자유시장경제체제는 고도성장을 가능하게는 했지만, 양극화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고 비판된다. 자유시장경제체제는 한편으로는 빈곤을 낳고, 허접하고 차가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사람과 노동의 소외를 낳고, 협력과 연대를 사라지게 하고 경쟁만 부추기며, 지역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들의 정신까지 황폐화시킨다고 본다. 그래서 자유시장경제가 아닌 사회적경제를 통해 ‘빈곤을 해소하는 복지’ ‘차가운 일자리가 아닌 따뜻한 일자리’ ‘사람과 노동의 가치’ ‘협력과 연대의 가치’ ‘파괴된 지역공동체의 복원’ ‘사람들의 선한 정신과 의지’ 등 이른바 ‘사회적 가치’가 추구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사회적’이라는 용어에는 이미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내재되어 있다. 사회적경제는 좋은 체제라는 선입견이다. ‘사회적’이란 용어가 미신에 불과함을 통렬하게 지적한 『사회적이란 용어의 미신』. /사진=미디어펜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때 ‘사회적’이라는 용어에는 이미 ‘좋다’ ‘나쁘다’는 가치판단이 내재되어 있다. 사회적경제는 좋은 체제이고, 자유시장경제는 나쁜 체제이다. 나쁜 체제인 자유시장경제체제는 마땅히 개혁되어야만 한다. 법안에서도 “역사적 소명의식을 갖고 한국경제의 체제를 (사회적경제로) 개혁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 소명의식”까지 갖추고 사회적경제로 개혁을 한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이에크는 자신의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사회적’이라는 말을 일컬어 ‘족제비 같은 말(weasel word)’이라고 표현했다. 족제비가 알의 겉은 멀쩡하게 남겨두고 속의 내용물만 전부 빨아먹은 것을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수식하는 명사의 겉은 멀쩡한데 그 내용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사회적경제’에서 사회적이라는 말이 수식하는 ‘경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정치’가 차지할 것이다. 사회적경제에서 ‘경제논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정치논리’가 대신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정치권의 권력을 강화하고 정부가 큰 정부로 가는 길을 열심히 일조해 왔다.

이러한 정황은 법안 내용에서도 이미 파악될 수 있다. 법안에는 “정부는 사회적경제의 금융기반 조성과 사회적경제조직의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적경제 발전기금을 설치, 운영한다.”고 하면서 “기금은 기획재정부장관이 운용, 관리한다.”고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금줄을 정부가 쥐고, 자원배분의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대통령 소속의 사회경제위원회, 시도(市道) 사회적경제위원회를 조직하고, 전국민 지역단위, 업종 및 분야단위의 협의회회를 조직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적경제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자금과 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하게 될 것이다.

결국 사회적경제는 사회주의적 통제경제의 변종이 되거나 최소한 관치경제의 부활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3. 원시공동체에 대한 끝없는 향수의 문제

민경국은 ‘사회적’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경우들을 역사적으로 개관한 후 그 말은 크게 네 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왔지만, 그 의미가 무엇이든 간에 공통된 점은 다음과 같다고 하고 있다. “대규모의 인간관계, 즉 자생적 질서를 소규모 집단의 모습, 즉 자연적 질서에 접목하려는 시도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이라는 말 속에는 공동으로 달성할 정치적 목적과 그리고 이를 위한 유대감과 도덕성을 전제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의 출발점도 이와 다르지 않다. ‘구성원 상호 간의 협력과 연대’를 추구하고, ‘지역공동체의 복원과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고 있다. 이것은 5,000만 명의 국민이 살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대규모사회의 인간관계를 100명, 200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원시공동체 시절의 ‘연대, 협동, 단결, 공동체’가 강조되던 시절로의 복귀를 꿈꾸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는 원시적경제로 복귀하려는 경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원시공동체 시절에는 지역 구성원들간 공동의 이해가 존재할 수 있다. 경제활동의 패턴이 동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예: 마을 구성원 전체가 농민). 그래서 ‘공동의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따뜻한 복된 마을 공동체”(이른바 ‘따복마을 건설’: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의 대규모사회에서 이런 따복마을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지역 구성원이라고 해도 이들의 이해와 경제활동의 다양성으로 인해 공동의 이해를 도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아파트 윗층에 누가 사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사는 것이 현대 도시인의 인간관계다. 하물며, 시골의 작은 마을공동체도 아닌 대한민국 전체에 ‘협력과 연대’에 바탕을 두는 사회적경제를 이식시키겠다는 것은 화합불가능한 것을 서로 접목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 최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사회적경제기본법’ 처리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선포했다. /사진=연합뉴스

4. 지식인의 ‘치명적 자만’의 문제

사회적경제는 자생적 질서인 시장경제 대신에 대안적 자원배분을 선호한다. 즉 자생적 질서의 자리에 인위적인 자원배분 방식을 우선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빈곤해소, 따뜻한 일자리, 협력과 연대의 가치 등 사회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 관료들을 비롯한 그 어떤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로 이루어진 어떤 조직이 갖고 있는 능력과 정보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주장이다. 이러한 인간의 결함을 보완하여 정보가 전달되고 수집되고 가공되고 활용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시장인데, 그 시장을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니 대단한 ‘치명적 자만’을 부리고 있는 셈이다.

5. 1차원적 시각의 문제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의 출발점 중의 하나는 자유시장경제에서는 협력과 연대가 배제되고 경쟁만이 강조된다고 하는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를 통해 사회적 가치인 ‘협력과 연대’를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시장경제를 경쟁만이 지배하고 협력과 연대가 배제된 비정한 시스템으로 보는 것으로서, 시장을 매우 단편적이고 1차원적으로만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는 상품의 공급자나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만, 의도하지 않았지만 타인이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점을 밝혔다. 시장경제에서의 성공은 바로 타인이 원하는 것을 가장 잘 제공한 사람에게 내리는 상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협력과 연대의 산물이다. 비록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통해 자연스럽게 협력과 연대가 이루어진다.

또 다른 예는 레오나드 리드(Read)가 쓴 『나는 연필입니다 I, pencil』이다.

“나무, 아연, 구리, 흑연의 복합체로 만들어진 간단한 제품인 한 자루의 연필이 탄생되는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묘사한 글이다. 예를 들어 나무의 경우 그것을 심고 가꾸는 과정, 잘 자란 나무를 베어 통나무 상태로 철로를 통해 제재소로 운반되는 과정, 제재소에서 연필 두께의 판자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포함된다. 그리고 각 과정에는 또 그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도끼와 톱 등의 도구를 만든 사람, 또 그들이 작업할 때 식사를 준비해 주는 사람, 그 식량을 생산한 사람 등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재료 중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수입도 해야 한다. 외국인의 노동과도 협력하지 않으면 한 자루의 연필도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다. 이렇듯 얼핏 간단해 보이는 한 자루의 연필을 만드는 일에도 수 백명 혹은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의 협동, 수 개국의 협동이 있어야 가능하다.”

눈에 보이는 협력과 연대, 누군가의 지시와 명령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협력과 연대만을 파악하고,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광범위한 시장에서의 협력과 연대를 보지 못하는 1차원적 시각이 문제의 발단이다. 그러다보니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협력과 연대를 무시하고 그 대신에 인위적으로 협력과 연대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6. 정부와 정치권의 권력 확대 욕구의 문제

사회적 서비스, 사회적 일자리, 사회적경제는 정부나 정치권이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고 이들을 통제하고자 하는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해 준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에도 나와 있듯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각하며, 이것은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주장된다.

그리고 마치 법칙과도 같이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더욱 중요시된다고 주장된다. 예를 들어 저출산의 문제를 보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이 사람으로 넘쳐난다’며 대대적으로 산아제한정책을 펴던 것이 국가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인이 멸종된다’며 출산장려정책을 펴고 있다. 인구가 너무 많으니 줄여야 한다면서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가 거꾸로 인구가 너무 적어진다면서 늘려야 한다면서 권력을 휘두른다. 이래서 권력을 늘리고, 또 저래서 권력을 늘린다. 명분만 있으면 늘어나는 것이 정부와 정치권의 권력이다.

결국 사회적경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경제가 정부와 정치권으로 하여금 시장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개입과 인위적인 자원배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하고, 정부의 몸집을 불리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사람과 집단에게 특혜를 제공하기 위한 훌륭한 명분을 제공하게 된다.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정부와 정치권의 권력확대를 위한 그럴듯한 통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7. Let it Be! No Touch!

이윤보다는 구성원들 또는 집합적 이해를 위한 목적의 활동, 1원1표가 아닌 1인1표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이윤의 분배에 있어서 자본보다는 사람과 노동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조직을 만들고, 이 조직을 통해 이른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국가이며, 따라서 사회적경제조직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해당 개인과 조직의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이다.

그런데, 시민사회에서 그런 조직을 만들고 그런 가치를 추구하는 것과 정부가 그것에 대해 지원하고 개입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안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에 여러 기관을 만들고 자금을 투입하고 각종 지원책을 통해 정부 주도로 사회적경제를 실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국가가 시장을 대신해 인위적인 자원배분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이고 비정상적인 사회적경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렇게 해서 인위적으로 육성되는 사회적경제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사회적경제’가 아니다. 즉 사회적경제는 이윤추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시장과 구별되고,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와 협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공공부문과 구별되지만, 이 법안에서 말하는 사회적경제는 후자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적경제라고 보기 어렵다. 다시 말해 사회적경제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개입은 ‘사이비’ 사회적경제로 변질되게 한다는 뜻이다.

   
▲ 사회적경제에는 정답이 없다. 사회적경제는 수행하는 주체와 개인마다 경우가 다르다. 이에 관하여 정부 및 국회가 사회적경제기본법안 같은 입법을 통해 인위적으로 개입하려 한다. 이는 정부 및 국회의 선호에 따라 한 쪽에는 특혜를 주고 다른 쪽에는 징벌을 가하면서 경쟁을 왜곡하는 격이다. /사진=연합뉴스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그것이 한국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 될 수 있는 지 등등에 대해서는 평가하는 사람의 관점과 경험과 이해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어질 수 있다. 정해진 정답이 없다는 말이다. 이럴 경우 어떤 게 맞는 것인지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각자의 자율적인 선택에 따라 ‘해보도록 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즉 그것이 자유시장경제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우리 사회의 문제의 해법이 거기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윤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경제조직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자신들이 믿는 바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해서도 각자 책임을 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 혹은 조직의 파산과 시장에서의 퇴출 등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어느 것이 우리 사회에 적합한 것인지는 그 경쟁의 결과가 알려줄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사회적경제 기본법안 같은 것을 통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한 쪽에는 특혜를 주고 다른 쪽에는 징벌을 가하면서 경쟁을 왜곡하는 일과 같다. 이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런 일을 무리 없이 할만큼 전지전능하지도 않다.

사회적경제조직들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경제 활동.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라(Let it Be!). 그리고 정부는 사회적경제와 관련해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손을 떼라(No Touch!). /권혁철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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