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 김성준 칼럼 > 보이는 손에 뺨 맞는 기분

자유경제원 / 2015-04-16 / 조회: 3,230       업코리아
   
 

가장 중요한 배움은 초등학교 때 이루어진다. 나쁜 짓 하지 말라, 국민의 의무를 다하라, 부모에게 효도하라,공중도덕을 지키라……. 이런 덕목들은 건전한 시민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핵심적인 가치들이기에 누구나 알아야 한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또 뭘 배웠던가. 아,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란 게 있으며 국가는 시장에 가급적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국가는 오직 공급자가 독점이나 담합을 해서 불법적인 이익을 취할 때, 혹은 환경을 오염시킬 때 등에만 개입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다시 말해, 경제주체가 나쁜 짓 하지 않는 이상 국가는 시장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정책들을 보면 ‘보이지 않는 손’은 정말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대신 ‘보이는 손’이 여기저기 난장을 부리고 있다. 단통법에 이어 도서정가제까지, 시장에 뻗치는 ‘보이는 손’ 의 매운 맛에 소비자는 뺨 맞는 기분이다. 두 방 연속으로, 맞은 데 또 맞으니 눈물이 핑 돈다.

단통법은 각 통신사 대리점의 할인폭을 일괄적으로 제한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통신사들이 기기별 보조금을 일제히 낮추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오히려 전보다 비싼 값을 치르게 됐다. 지난 11월 2일엔 일부 대리점이 추가보조금을 기습적으로 지급해 이른바 ‘아이폰6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말이 대란이지 정부의 간섭에 항거한 시장의 ‘반란’으로 비춰진다. 

도서정가제도 이와 비슷하다. 공급자가 판매상황을 감안하여 가격을 결정하던 기존의 방식, 즉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방식을 국가가 강제로 금지시켰다. 이제는 신간이든 구간이든, 팔리는 책이든 팔리지 않아 창고에 먼지만 쌓이는 책이든 10% 이상의 할인은 알 수 없게 됐다. 이 법안을 발의한 쪽에서는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출판업계가 고사 직전까지 가게 됐으며 책의 질적인 저하도 우려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질 좋은 양서가 무더기로 쏟아질 텐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면, 소비자들은 기존보다 더 비싼 책값을 얼씨구나 지불하며 책을 더 많이 구매할 텐가? 그래서 말라죽어간다는 출판업계가 비 온 뒤의 봄풀처럼 푸릇푸릇 새 잎이 돋을 것인가?

가뜩이나 우리나라의 출판시장은 외국에 비해 책의 다양성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하나의 책을 소장용 양장본, 값싸고 가볍고 실용적인 문고판으로 찍어내는 외국과 달리 서점에 가면 죄다 양장 아니면 반양장이다. 책 한 권에 만 원 하는 것도 찾아보기 힘들고, 조금만 두꺼워도 이만 원을 넘어 삼만 원까지 직진한다. 아이들이 주로 보는 참고서, 문제집은 또 어떤가. 수학 과외를 자주 하던 나로서는 새 교재를 살 때마다 젊은 나이에도 혈압이 올랐다. 문제집에 바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종이질이 너무 좋아 연필로 글씨를 적으면 되레 잘 적히지도 않는다. 반짝반짝 눈이 부셔 눈에 피로감만 더한다. 종이질은 턱없이 좋은 걸로 해놓고 가격은 만오천 원 이상 받는다. 과목 별로 학기 당 두 권씩만 사도 그게 얼마인가.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우리 출판시장은 이미 지나치게 비싼 가격으로 책을 공급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비싼 책, 비싸서 안 팔리는 책을 출판사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재고가 된다. 여기에 엉뚱한 비용을 들이느니 대폭 할인을 해서라도 판다면 소비자 입장에서는 싼 값에 책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국가가 이 메커니즘에 개입하려 하는가? 왜 이제는 심지어 도서관조차 할인을 못 받게 하여 대중의 독서의욕에 찬물을 끼얹으려 하는가? 책 좀 읽자고 그렇게 캠페인을 벌이더니 이 무슨 모순적인 정책이란 말인가. 

백 번 양보해서, 도서정가제로 출판업이 살아나고, 책이 질적으로 성숙한다면(그러기 힘들어 보이지만) 도서정가제에 찬성할 용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단통법에 이어 도서정가제에서도 나타나는 국가의 편의주의적 발상, 법률 만능주의에 단단히 시비를 걸고 싶다. 문제가 있으면 국가는 그것을 올바른 정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무조건 법을 만들어 금지시키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으로 해결될 게 아니다. 그런 식의 발상과 행정은 통제경제에서나 통할 법한, 극히 비효율적인 정책인 것이다.

툭 하면 꺼내는 변명, 즉 ‘서민을 위하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튀어 나왔다. 누구는 이 법안이 동네 소형 서점을 살릴 수 있다고 단언했다. 어느 유명 cf의 카피처럼 “단언컨대, 그건 아니올시다!”라고 말하고 싶다. 벌써 대형 인터넷 서점의 주가가 30% 급등한 것만 봐도 도서정가제의 수혜를 누가 보게 될 것인지는 자명하다. 소형서점은 더욱 말라죽고, 소비자는 허덕이고, 시장은 훼손된다. 법안 하나 냈다고 정치인이 어깨에 힘 줄 때, 서민은 등골이 휜다. 국가가 ‘보이는 손’을 마구 휘두를 때 시장은 그 손에 맞아 피멍이 든다. 차라리 낮잠이나 주무시라고 부탁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단통법에 이은 또 하나의 국가횡포, 도서정가제. 시장 위에 법이 있다는 그 오만한 사고방식에 오늘도 서민은 얄팍한 지갑을 도로 주머니에 넣으며 서점 앞에서 돌아선다.

  

김성준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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