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 안성민 칼럼 >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골리앗 규제가 아니다.

자유경제원 / 2015-04-20 / 조회: 2,997       업코리아
   
 

매달 3일, 8일이 되면 오산장에 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집을 나선다. 현금으로 가득 찬 부모님의 지갑을 보며 다 큰 아들놈에게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으레 신이 난다. 오산장은 구수하게 손님들을 부르는 골목 상인분들의 목소리와 온갖 음식 냄새로 뒤얽혀 사람을 신나게 한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변한 것이 있다면, 그들을 찾던 사람들과 주변 환경이다. 사람들과 부모님은 이제 필요에 의해 골목상가를 뒤지거나 복잡한 시장통을 돌지 않는다. 집 주변 곳곳 에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사방팔방 24시간 생필품을 판매하는 편의점이 들어섰다. 

역시다. 나의 시장은 내 어릴적 시장과 달라진 것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를 고수하고 전통을 고집한다. 그런데 이렇게 정겨운 골목시장이 이제는 환영 받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단다.

그들이 힘을 잃어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통시장이 변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유통기업이 운영하는 체인 형식의 슈퍼마켓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민국 유통업계의 내로라하는 큰 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슈퍼체인들을 개설하기 시작했으나 IMF 구제금융위기로 인해 이내 사그라들었다. 그 후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형마트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대형마트 부지 확보 및 출점이 점차 어렵게 되자 이를 극복하는 취지에서 홈플러스를 운영하는 삼성테스코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대형 슈퍼마켓 시장에 뛰어 들었고, 현재는 이마트 에브리데이, 롯데슈퍼라는 이름으로 기업형 슈퍼마켓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모체인 대형마트의 강력한 자본력과 유통구조를 이용해 값싼 가격과 가성비 높은 품질로 소비자를 응대했다. 

이런 유통업계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바로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유통시장의 활성화이다.온라인 쇼핑몰 해외직구는 지난해만 1조원을 돌파 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해외 직구가 980만건, 9억1100만 달러로 2010년에 비해 약 3년 동안 건수는 3배, 액수는 4배 이상 폭증했다. 무엇보다 낮은 배송비와 관세 때문이다. 유통의 "탈경계화 "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유통구조의 변화와 함께 소비자들의 성향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 집 안에 앉아 최상의 상품을 구매하길 바라고, 그들에게 특화된 상품을 원한다.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거대자본조차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이런 마당에 전통과 안락을 고집하고 시장의 니즈를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전통 시장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경제학상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원인이 대형마트와 변종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있다고 판단했다 . 

SSM과 영세상인들의 싸움은 마치 미사일을 가진 골리앗과 돌도끼를 든 다윗의 싸움 같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전쟁의 신 아테나는 다윗의 편인 것 같았다. 파리바게트, 뚜레주르 같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맹점에게 신규호점 억제, 거래제한 등의 규제를 가했다. 2012년 4월 22일, SSM의 타도를 외치며 법과 행정력을 동원해 출점을 제한하고, 월 2회 의무 휴업을 강행했다.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살린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규제로 인해 대형마트와 SSM 매출은 12년 4.4% 13년 8.4%나 급감했고,이는 연간 2조 이상의 매출감소로 이어졌다. 납품하는 중소기업과 농민은 직격탄을 맞았다. 마트 3사에서만 7000명의 일자리가 줄었다. SSM을 저격한 규제이니 기업형 마트들이 타격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정책의 방향과는 전혀 무관한 채소 등을 납품 하는 중소업체들은 매출 감소를 이기지 못하고 줄줄이 납품을 중단하거나 폐업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규제로 인해 생긴 빈틈을 규제를 받지 않는 해외 유통업체들과 기업형 중소 체인점들이 비집고 들어와 반사 이익을 누리고 있다. 이는 특히 외식사업에서 두드러진다. 카페베네,농심 등 대표적인 국내 외식 대기업들이 사업을 철수하거나 임원의 임금을 삭감하는 사이 마루가메제면, 갓덴스시, 코코이찌방야 등의 일본계 외식업체들이 공격적으로 그들의 점포 수를 늘리고 있다.

이런 자료를 보고도 영세상인들의 매출감소의 원인이 국내 기업형 대형마트의 증가에 있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과 경쟁자들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매출이 날로 감소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자명하다. 전통과 문화를 고수한다는 미명으로 시장의 논리를 거스를 순 없다.

생태계에서는 강력한 외부작용이 일어나면 예상치 못한 반발작용이 일어난다. 시장은 생태계와 비슷하다. 대기업을 규제한 정부와 언론의 지원사격은 오히려 영세상인에게 대형마트와의 이분법적인 경쟁구조를 부추겼다. 그들에게 지원한 예산은 변화하는 생태계에서, 정작 그들에게 필요한 그들만의 생존전략을 개발할 기회조차 뺏어간 것은 아닐까? 그들을 위하는 것은 강력한 규제로 그들에게 상대적인 이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시장을 왜곡하지 않고, 골목상권을 살리는 몇 가지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첫째로, 각 지역의 슈퍼마켓협동 조합들의 활성화와 물류센터 및 중형마트 운영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 슈퍼마켓들이 중소 유통물류센터를 짓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중동부 슈퍼마켓협동조합은 단연 우수 협동조합으로 손에 꼽힌다. 대기업 편의점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으며, 상품 수 또한 웬만한 중급 마트보다 많았다. 협동조합이라는 힘을 이용하면, 거래처와의 단가조절에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고, 조합원들의 출자를 통해 물류센터를 짓는 등 체계화된 운영으로 기업형 슈퍼마켓과 동등한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을 수 있다. 물론 동네 슈퍼가 밀집된 대도시 주변이 아닌 주로 땅값이 싼 외곽에 지은 데다,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에 곤혹을 치르고 있긴 하다만 이는 변화하는 유통업계에 맞춰 성장 하는 긍정적인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골목상인들의 협력과 협동을 통한 문화 콘텐츠 조성이다. 동네 주민과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은 몸짓이 크고 상품의 신뢰성을 1차 과제로 놓는 대형 마트와는 상대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다.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문화 콘텐츠 조성의 골자는 전통시장의 시스템과 비슷하다. 일정 반경이나 주민들의 생활터전을 중심으로 마을을 나누고 마을 안 상인들이 각각의 지역 위주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한다. 일정 시간이나 날짜마다 세일을 한다거나, 정부의 지원 하 특정 기간 동안, 상가 앞 일정 폭 이상의 인도는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 행사를 주최하는 등의 엔터테이먼트 요소를 가미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70년대 초반부터 골목 상권과 대형 상점 간의 문제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던 영국, 이탈리아, 일본 등의 국가들 역시 골목상권 보호의 차원에서 대형마트들을 규제하고, 프랑스의 경우 새로 입점을 하거나 규모를 확장하고자 하는 점포는 그 지역의 소매점주와 소비자, 정치인들로 구성된 지역구 역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하는 로와이에 법(Royer law)를 제정하는 등의 보호를 실행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측면에서의 지원도 현재에 와서는 실증연구 결과를 고용침체와 생산성 감소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적받고 있다. 

골리앗에게는 골리앗의 싸움 방식이 있고, 다윗에게는 다윗의 싸움 방식이 있다. 죽어가는 골목상권을 죽어 가도록 버려두자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형 슈퍼마켓에게 규제를 가하는 방식으로는 이미 돌아선 소비자들을 골목상권으로 돌릴 수 없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전과는 다르게 자생적 순환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일차원적인 재정적 측면의 지원이 아닌 안정화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다방면의 복합적인 케어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나는 기계적인 광고음보다 구수한 그들의 목소리가 좋다. 시장의 비린내가 좋고, 동네 의 정겨운 잔소리가 좋다. 올바른 정책과 지원으로 그들이 그들의 터전을 찾길 바란다.


안성민  
자유경제원 시장경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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